[72호] ZOOM 1 | 바뀐 무대, 바뀌는 음악: 케이팝 공연산업의 확장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게시일 20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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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영토는 언제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위에 놓여 있었다.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음악 방송이나 라이브 무대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뮤직뱅크(Music Bank)〉나 〈엠카운트다운(M Countdown)〉 등 케이팝만을 위해 마련된 전용 플랫폼을 주요 무대로 삼았다. 그곳에서 팬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지만, 아이돌은 카메라를 향한 채 사전에 정해진 안무와 표정으로 무대를 채워나갔다. 케이팝은 현실의 음악이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그 바깥과는 다른 결로 존재해 왔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경계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 케이팝은 더 이상 자신만의 무대에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음악 생태계로 나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세븐틴(SEVENTEEN)의 도겸과 승관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Pentaport Rock Festival)에는 QWER이 출연하는 등 장르 기반 페스티벌에 아이돌이 참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코첼라(Coachella), 롤라팔루자(Lollapalooza),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와 같은 글로벌 메가 페스티벌은 더 이상 케이팝에게 낯선 공간이 아니다. 특히 블랙핑크(BLACKPINK)와 트와이스(TWICE)는 각각 코첼라와 롤라팔루자의 헤드라이너로 서며 세계 무대에서 케이팝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줬다.이러한 흐름은 케이팝산업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케이팝 무대와 문법이 재편되고 있는 지금, 케이팝은 어떤 방식으로 '공연'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산업과 문화 전반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 코첼라의 블랙핑크, 롤라팔루자의 트와이스 
(출처: YG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테인먼트) 
 

1. 자유와 우연의 미학

케이팝의 무대가 장르와 지역을 넘어 확장되면서 그것이 마주하는 환경적 조건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제 아이돌은 철저히 통제된 스튜디오 대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취향도 다양한 대규모 관객 앞에 서게 됐다. 그곳에는 응원법을 공유하는 충성스러운 팬덤도, 장르에 대한 사전 이해를 갖춘 청중도 없다. 설계된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케이팝의 기존 문법은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더 이상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해지는 것이 이른바 '자유와 우연의 미학'이다. 페스티벌과 대형 투어 무대는 더 이상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이 아니라, 그 순간의 공기와 관객의 반응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열린 무대이다. 하마구치 류스케(Hamaguchi Ryūsuke)의 영화 〈우연과 상상(Wheel of Fortune and Fantasy)〉은 일상에 스며든 작은 우연이 마법 같은 치유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페스티벌 무대에서도 통제되지 않은 요소들, 예를 들어 그날의 날씨, 관객의 반응, 즉흥적인 멘트와 애드리브 등이 어우러지며 그날, 그 자리에서만 가능한 단 한 번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연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각이 생겨난다. 

예컨대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올해 코첼라 무대를 떠올려볼 수 있다. 평범한 후드 하나만 걸친 수수한 차림, 거뭇한 수염이 그대로 드러난 꾸밈없는 모습, 마이크와 의자 하나뿐인 단출한 무대, 자유롭게 움직이며 편안하게 노래하는 몸짓과 표정까지. 전통적인 헤드라이너 공연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비버의 진솔한 태도를 도드라지게 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관객을 감동시켰고 그를 2026 코첼라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비슷한 사례로 한국에서는 2017년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백예린의 〈Square〉 공연을 예로 들 수 있다. 야외 무대 특성상 음향 상태도 좋지 않은 데다 비바람이 심하게 불고 번개까지 치는 최악의 날씨였지만,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환하게 웃으며 노래하는 백예린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레전드 라이브'의 대표격으로 회자된다.
 


2017년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백예린의 〈Square〉 공연 모습 
(출처: 유튜브 계정(@cyidra)) 
 
 

반면 속눈썹 하나, 옷깃 하나까지 철저히 다듬고 무대에 오르는 케이팝은 오랫동안 정교한 통제의 미학 위에 구축되어 왔다. 안무, 표정, 심지어 보컬 애드리브마저 사전에 계획하는 케이팝의 철학은 높은 완성도를 보장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연성과 즉흥성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한다. 이러한 구조는 페스티벌 무대가 요구하는 현장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케이팝의 강점이었던 완벽한 일관성이 오히려 라이브 환경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산업의 고도화가 만들어낸 극단적인 구조화와, 공연 환경의 특수성이 요구하는 탈구조화라는 두 가지 상반된 힘이 동시에 작동하는 국면에서, 케이팝은 그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2. '공연에 적합한 음악'을 찾아서

이러한 상황을 업계도 모르지 않는다. 많은 기획사들이 기존 방식만으로는 확장된 무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연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트와이스 등 최근 해외 페스티벌에 출연한 아이돌의 무대를 보면, 기본적인 군무는 유지하되 세세한 안무나 제스처에는 즉흥적 변화를 허용하고, 관객과의 상호작용도 사전에 설계된 연출이 아니라 현장의 흐름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적어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무대에서는 아이돌이 어느 정도 능동적인 퍼포머로 나서게 된 것이다. 

국내 무대에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었던 라이브 실력 역시, 해외 무대 비중이 늘면서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소속사들도 보컬 트레이닝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이는 불특정 다수 앞에서 오로지 개인의 역량으로 호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해외 무대에서는 국내 음악방송에 만연한 립싱크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탄탄한 기본기로 라이브에 강한 엔믹스(NMIXX),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 등이 유독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음악적 측면의 변화다. 수만 명 규모의 야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관객을 단번에 반응시키는 사운드는 무엇일까? 우선 공간을 채우는 저역 중심의 사운드, 구체적으로는 드럼과 베이스의 중요성이 커진다. 동시에 글로벌 청중에게 친숙하면서도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으로 직관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힙합(hip-hop)과 EDM(Electronic Dance Music)은 여전히 유효한 선택지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BLACKPINK)를 비롯해 스트레이키즈(Stray Kids), 엔하이픈(ENHYPEN), 에이티즈(ATEEZ) 등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주요 그룹들이 이 계열의 사운드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장르들은 이미 대형 무대에서 검증된 공연 친화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공연 문화의 확산에 발맞춰 새로운 장르들이 대안으로 발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근의 케이팝은 테크노(Techno)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테크노는 4/4 박자의 반복적 구조와 물리적인 저역의 진동을 핵심으로 하는 전자음악 장르로, 대형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체감될 때 그 청각적 쾌감이 배가된다. 1980년대부터 클럽과 페스티벌 환경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해온 테크노는 잠시 소강기를 거치기도 했으나, 2020년대 들어 다시 글로벌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케이팝 역시 이러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2024년 에스파(aespa)의 〈Whiplash〉와 르세라핌(LE SSERAFIM)의 〈CRAZY〉는 테크노와 하우스를 결합한 테크 하우스 사운드를 내세우며 기존의 팝 문법을 클럽 지향적 리듬으로 재구성했고, 블랙핑크는 〈뛰어(JUMP)〉를 통해 하드 테크노에 가까운 강도 높은 사운드로 페스티벌을 겨냥했다. 
 

 


블랙핑크가 2025년 공개한 디지털 싱글 ‘뛰어(JUMP)’의 앨범커버와 자켓 이미지 
(출처: YG 엔터테인먼트)

 
 

하이브(HYBE)는 최근 몇 달간 소속 걸그룹인 캣츠아이(KATSEYE), 르세라핌(LE SSERAFIM), 아일릿(ILLIT)의 신곡을 모두 테크노 계열로 채택하고 하드 테크노(hard techno), 하드스타일(hardstyle) 등 세부 장르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 코첼라에서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캣츠아이의 〈PINKY UP〉 무대는 대형 라이브 환경에서 테크노가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을 보여준 사례였다. 장르적 실험 자체는 케이팝에 늘 있어왔지만, 이번 테크노 열풍은 그 목적이 '공연 적합성'에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드럼 앤 베이스(drum and bass), 저지 클럽(jersey club) 등 빠른 BPM의 브레이크비트(breakbeat) 계열 장르나 레게톤(reggaeton), 브라질리언 펑크(Brazilian funk)처럼 드럼의 질감이 강한 중남미 장르들이 케이팝 안에서 활용되어 온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2026년 코첼라 무대에서 하드테크노 장르의 신곡 공개한 캣츠아이 
(출처: 하이브(HYBE)-케펜레코드(Geffen Records)) 

 

 

요컨대 오늘날 케이팝의 음악 제작은 더 이상 음원 소비만을 전제하지 않는다. 이제 제작자는 '어떻게 들리는가'를 넘어 '어떻게 체험되는가'에 답해야 하며, 변화된 공연 생태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장르적 재편과 사운드 재구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3. 그럼에도 로컬리티를 지켜야… ‘K를 붙여야 산다’  

그렇다면 케이팝은 글로벌 확장을 위해 어디까지 변형되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해외 관객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케이팝 본연의 정체성을 과도하게 희석시키는 선택은 장기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 대중음악은 이미 다양한 문화권의 장르와 감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국가와 언어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배드 버니(Bad Bunny)가 스페인어로 노래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처럼 글로벌 무대, 특히 수십에서 수백 명의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메가 페스티벌은 더 이상 균일한 취향의 장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한 다양한 문화가 나란히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각국의 로컬리티는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고유하고 매력적인 자원으로 활용된다. 

최근 한국 문화예술계의 최고 히트작인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역시 공통적으로 한국의 로컬리티를 전면에 내세웠다. 〈오징어 게임〉은 전통 놀이와 한국 사회의 정서를 서사의 중심에 배치했고, 〈케데헌〉은 케이팝산업 자체를 이야기의 핵심 화두로 삼았다. 세계 시장을 의식해 로컬 요소를 걷어내기보다 오히려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를 단순한 오리엔탈리즘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해다. 핵심은 특수한 소재를 보편적 감정으로 번역해내는 감각에 있다. 〈오징어 게임〉 속 달고나 뽑기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외국인에게 낯선 놀이지만, 그 안에 담긴 긴장과 경쟁, 어린 시절의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케데헌〉 역시 상처를 극복하고 나아가는 고전적인 성장 서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재는 로컬리티에 기반하되, 감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형태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빅뱅의 대성이 올해 코첼라에서 선보인 〈한도초과〉와 〈날 봐 귀순〉 무대는 좋은 사례다. 대형 스크린에 '안녕하세요 대성입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말이 그대로 떠오르고, 한국 트로트가 캘리포니아에 울려 퍼지는 장면은 순응적 현지화로 대표되는 과거의 전략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대성의 유쾌한 무대 매너와 풍성한 편곡이 직관적인 흥을 자아내며 미국 관객들을 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리듬과 선율 그 자체의 쾌감을 통해 로컬리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음악과 공연만의 힘을 느낄 수 있다. 
 

 


2026년 코첼라에서 트로트 무대를 선보인 빅뱅(BIGBANG)의 대성 
(출처: 유튜브(@coachella))


 

4. 맺으며

이제 케이팝은 특정 소수 팬덤만이 향유하는 마이너 문화를 넘어 범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장르로 자리잡았다. 최근 미국의 인기 래퍼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과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는 〈KPOP〉이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했다. 이는 케이팝이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문화적 기표로 기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핑크펜서리스(pinkpantheress)나 언더스코어스(underscores) 등 해외 아티스트들이 에프엑스(f(x)), 샤이니(SHINee) 등의 케이팝 트랙을 샘플링하며 케이팝으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기도 했다. 케이팝이 글로벌 음악 생태계 안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 안착한 케이팝은 더 넓은 무대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를 위해서는 달라진 환경에 맞춰 퍼포먼스와 음악을 유연하게 조정하며 세계의 문법에 발을 맞추는 한편, 케이팝이 지닌 로컬리티를 매력적으로 다듬어 고유한 자리를 지키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에 맞추는 것과 세계를 끌어들이는 것, 이 두 방향의 전략을 균형 있게 활용하며 케이팝이 확장된 무대 위에서도 자신만의 좌표를 잃지 않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TEL 02 3150 4818/4821
FAX 02 3150 4872
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현지, 김정현
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5월 22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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