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후반 중국·대만·홍콩 등 동아시아 중화권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케이팝은, 2012년 〈강남스타일〉과 2017년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ard Music Awards) 수상을 계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20년대로 들어서며 케이팝은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글로벌 음악산업 내에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록, 팝, 힙합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자적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상’을 수상한 방탄소년단(BTS)
(출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최근 10여 년 동안 케이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변화하는 미디어 트렌드와의 높은 친화성이다. 케이팝산업은 이를 일찍 인식하고, 미디어 특성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음악과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구축해 왔다. 케이팝 1세대부터 이어진 ‘포인트 안무’는 인상적이면서도 따라 하기 쉽다는 특성을 보인다. 이는 짧은 영상과 챌린지·바이럴이 중심이 된 오늘날의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의 미디어 환경과 잘 맞아떨어졌다. 케이팝 업계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해 포인트 안무를 강화하고 다양한 채널로 확산시켰으며, 이는 2010년대 후반 이후 케이팝의 급격한 인기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2023~2025년을 거치며 케이팝의 생산·유통·소비 방식은 빠르게 변화했고, 케이팝을 단순히 한국 음악이라는 국가적 범주로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케이팝에 대한 국내외 인식의 괴리, 비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그룹의 잇따른 등장, 그리고 이로 인한 ‘K’의 의미 재구성이 그것이다.
먼저, 케이팝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 차이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케이팝은 미국 흑인 음악, 힙합, R&B, 전자 댄스 음악(EDM), 제이팝(J-Pop) 등 다양한 글로벌 음악 요소를 한국적 맥락 속에서 결합하며 발전해 왔다. 이러한 결합을 통해 케이팝은 한 곡 안에서 여러 장르를 혼합하는 '장르 뒤섞기', 반복적인 후렴을 통해 중독성을 강화하는, 이른바 ‘후크송(hook song)’ 전략, 안무와 무대 퍼포먼스가 먼저 기획된 후 거기에 맞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선 안무 후 음악' 제작 방식 등의 스타일을 확립하며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해외 작곡가·프로듀서와의 적극적인 협업, 그리고 이를 체계화한 글로벌 송 캠프(song camp) 운영을 통해 케이팝은 국적을 초월한 제작 방식을 구축했다.

YG 엔터테인먼트가 공개한 송 캠프(song camp) 시스템 다큐멘터리
(출처: YG 엔터테인먼트 공식 유튜브 계정(@YGEntertainment))

SM 송 캠프(song camp)에 참여한 스웨덴 작곡진
(좌측부터 니클라스 야렐리우스 페르손(Niklas Jarelius Persson), 니노스 한나(Ninos Hanna))
(출처: SM 엔터테인먼트)
한편, 글로벌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그중에서도 스포티파이·유튜브 뮤직을 중심으로 한 유통·소비 환경의 재편은 케이팝의 음악 장르적 특성에도 상당한 변화를 초래했다. 글로벌 음악 플랫폼이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와 구별되는 핵심 요소는 ‘알고리즘 기반 음악 큐레이션’이다. 이는 이용자의 청취 이력과 장르·아티스트 선호도 등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개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음악을 자동으로 추천하는 기능으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기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폭넓은 수용자층을 확보했다. 그 결과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은 현재 음악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케이팝이 알고리즘 기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의 최대 수혜 장르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2010년대 중반 글로벌 수용자에 의해 재발견된 일본의 시티팝(City Pop), 그리고 같은 시기 세계적으로 부상한 라틴팝(Latin Pop)·아프로비츠(Afrobeats)와 함께, 케이팝은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플레이리스트(playlist) 중심의 청취 환경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기록한 장르이다. 이들 장르는 ‘비서양·비영어권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주변부 음악 장르의 세계적 성공은, 알고리즘 큐레이션 중심의 글로벌 음악 플랫폼이 전 세계 수용자의 취향을 재구성하고 보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노출 기회를 확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케이팝은 비서양·비영어권 음악 전반에 관심을 갖는 글로벌 수용자의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 시티팝·라틴팝·아프로비츠 등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싱글 〈Swim〉을 아프로비츠 스타일로 리믹스한 방탄소년단, 아프로비츠·레게톤 등 글로벌 인기 리듬을 꾸준히 도입해 온 르세라핌(LE SSERAFIM), 시티팝 스타일의 한국어 노래로 활동한 일본인 가수 유키카(YUKIKA)와 시티팝을 적극 시도한 원더걸스 출신 유빈, 그리고 라틴팝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지역에서 인지도를 높인 몬스타엑스(Monsta X)·모모랜드(Momoland) 등을 들 수 있다.

방탄소년단이 공개한 의 리믹스 앨범 5번 트랙에 <SWIM with j-hope(Afrobeat Remix)>가 담겨있다.
(출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국내에서 케이팝은 여전히 한국어 가사, 한국인 멤버, 전통문화 요소의 포함 여부 등 ‘가시적인 한국성(韓國性, Korean-ness)’을 기준으로 정의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따라 케이팝의 인기는 곧 한국 문화에 대한 인기로, 그 국제적 성공은 ‘한국 문화의 승리’로 수렴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해외에서는 케이팝을 특정 국가에서 생산된 음악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넘어, 퍼포먼스 중심의 제작 방식, 기획사 주도의 체계적인 연습생 발탁·훈련 시스템, 팬덤 기반의 산업 구조, 독자적 미학의 의상·안무·뮤직비디오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독립적인 글로벌 음악 장르이자 산업 모델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그 결과, 힙합이 미국 흑인 문화에 기원을 두면서도 오늘날 전 세계가 공유하는 글로벌 장르로 자리 잡은 것처럼, 케이팝 역시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과 음악적·시각적·문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면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만들고 향유할 수 있는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2024년 블랙핑크 출신 로제와 브루노 마스(Bruno Mars)의 협업곡 〈APT.〉는 음악 스타일과 영어 중심의 가사 면에서 글로벌 팝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케이팝의 맥락에서 소비되며 큰 성공을 거뒀다. 2025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삽입곡 〈Golden〉 역시 한국 케이팝산업의 직접적인 기획·제작 범주 밖에서 탄생한 콘텐츠임에도, 국내외에서 자연스럽게 케이팝으로 수용되며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의 대표 민요 〈아리랑〉을 앨범 타이틀로 내세운 방탄소년의 2026년 컴백 앨범 또한 대표곡 〈Swim〉을 비롯한 수록곡 대부분이 영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편곡에 참여한 인력의 상당수도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케이팝이 ‘한국에서 생산된, 한국인이 한국어로 부르는 음악’이라는 지역 문화적 개념을 넘어, 특정한 제작 방식·산업 구조·음악적·시각적 미학을 공유하는 글로벌 문화산업 모델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의 케이팝은 음악적 특성에 국한되지 않고 산업 시스템, 생산 방식, 팬덤 문화까지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문화 현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2025년 빌보드 결산 ‘글로벌 200 1위’와 ‘HOT 100 9위’에 오른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출처: 더블랙레이블)
‘비(非)한국인 케이팝 그룹’의 등장 역시 케이팝의 의미 변화와 확장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다. 일본인으로만 구성되어 주로 일본어로 노래하는 걸그룹 니쥬(NiziU), 그리고 백인·흑인·인도계·히스패닉·동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민족적 배경의 멤버들로 이루어져 영어로 노래하는 미국의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국이 아닌 자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자국 수용자와 글로벌 수용자 모두에게 제이팝(J-Pop)이나 미국 팝이 아닌 케이팝 그룹으로 인식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케이팝의 ‘K’가 더 이상 가수의 국적이나 인종·민족적 특성에 기반하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한 제작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 한국·동아시아·글로벌 미디어산업이 상호 연결된 산업 네트워크, 그리고 한국적 특수성과 글로벌 보편성을 아우르는 문화적 서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케이팝 내의 이러한 변화는 한류와 K-컬처의 미래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한류는 '한국 문화 콘텐츠의 해외 확산', 즉 한국 문화콘텐츠가 해외 시장에 진입하여 경제적 이익과 국가 인지도를 동시에 제고하는 문화·산업 현상을 지칭해 왔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수록곡 〈Golden〉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 음악·문화산업과의 직접적 연계성이 희박한 해외 제작 콘텐츠조차 한류의 일부로 수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류가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 글로벌 공동 제작·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유통과 소비·문화적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6년도 코첼라 무대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를 부른 캣츠아이(KATSEYE)와 헌트릭스(Huntr/x)
(출처: 유튜브 캡처(@kpop_triangle))
따라서 케이팝의 'K'는 고정된 한국성의 표현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적 혼종성과 다양성을 포괄하는 유연한 개념으로 다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케이팝은 출발부터 미국·일본·유럽 대중음악의 영향을 적극 수용하여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한 음악으로 발전해 왔다. 문화적 다양성과 개방성은 케이팝의 개성과 경쟁력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으며, 케이팝의 세계화가 심화한 현시점에는 글로벌 제작 네트워크와 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한국의 지역적 특수성을 유지하는 균형적 전략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케이팝, 그리고 한류는 더 이상 국가 중심 개념으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글로벌 문화산업 속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며 재구성되는 유동적인, 그러면서도 여전히 핵심적인 한국성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개념이 정의되어야 한다. 케이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일반적인 영미 팝 및 다른 글로벌 음악 장르에 대해 케이팝이 가지고 있던 차별적인 요소는 바로 그것이 기존의 글로벌 음악과는 ‘다르다’라는 것이었으며, 이 '다름'은 음악이나 비주얼, 퍼포먼스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닌 한국어 가사와 음악 속에 담긴 전통적·현대적 한국 정서,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적·문화적·사회적 맥락 위에서 형성된 케이팝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는 케이팝을 다른 글로벌 음악 장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부각했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2020년 초반 방탄소년의 영어 싱글
그러나 글로벌 보편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특유의 한국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는 단순히 ‘케이팝은 한국의 것이기에 한국적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라는 당위성이나 소위 ‘국뽕’에만 기반하는 주장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케이팝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케이팝과 글로벌 팝 음악을 차별화하는 ‘K’ 요소의 존재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스스로 K를 떼어내는 것은 케이팝이 갖고 있는 비교 우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무장 해제를 단행한 채 글로벌 음악 장르와 경쟁하겠다는 선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케이팝 속 한국성, 즉 ‘K’를 유지하는 것은 문화 정체성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익성 측면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17.12.10.). 방시혁 “K팝 고유가치 지킬 것"…방탄, 해프닝 아닌 모델 되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581286
이경미 (2025). 플랫폼 알고리즘 기술이 매개한 데이터화된 문화적 경험.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이규탁 (2020). 『갈등하는 케이, 팝』. 서울: 스리체어스.
이선희·정주원 (2023. 11.07.). [단독] 방시혁 “K팝에서 K를 떼야 산다…이대로면 성장 한계 명확”. 《매일경제》. URL:
https://www.mk.co.kr/news/culture/10868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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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5월 22일
E-ISSN 2714-0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