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호] ZOOM 3 | AI 시대 공영방송의 새로운 딜레마: 창작의 민주화와 기술 권력의 재편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게시일 2026.07.20
  • 0

1. 서론: AI는 방송 제작의 도구인가, 권력 구조의 변화인가

생성형 AI의 등장은 방송 콘텐츠 제작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방송 제작은 작가, PD, 촬영감독, 편집자, 음향감독, CG 아티스트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협업하는 고비용·고숙련 노동 체계 위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생성형 AI는 기획, 대본 작성, 이미지 생성, 영상 합성, 음성 제작, 자막 번역, 후반 작업까지 제작 전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 보조 수단이 아니라 방송 제작의 구조와 권력 관계를 재편하는 핵심 변수로 등장했다.

국내 공영방송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KBS》는 2025년을 'AI 방송 원년'으로 선포하고 뉴스, 애니메이션, 재난방송 등 제작 전반에 AI 활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MBC》는 AI 전략 자회사 도스트일레븐(DOST11)을 통해 영상 분석, AI 기반 CG, 더빙, 제작 자동화 솔루션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AI가 방송사의 미래 전략에서 주변적 기술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방송 원년’을 선포하고 AI방송혁신자문위원을 위촉한 《KBS》
(출처: 《KBS》)

 

문제는 이 변화가 단순한 제작 효율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는 제작비와 기술 장벽을 낮추어 더 많은 창작자가 콘텐츠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분명 ‘창작의 민주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 모델, 데이터, 클라우드 인프라를 보유한 글로벌 기술 기업에 대한 의존이 심화될 경우 창작 권력은 방송사나 창작자에게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플랫폼 권력으로 집중될 수 있다. Poell 등(2022)은 문화 생산이 플랫폼 인프라, 시장, 거버넌스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는데, 생성형 AI 시대에는 이러한 플랫폼화가 제작 단계 자체로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AI 시대 공영방송의 핵심 질문은 단순히 ‘AI를 활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공영방송은 AI를 통해 어떤 창작 생태계를 만들 것인가’이다. AI가 창작의 문턱을 낮추는 기술인지, 아니면 공공 미디어의 제작 주권을 약화하는 새로운 권력 장치인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2. 본론

2.1 생성형 AI와 창작의 민주화:국내 공영방송의 AI 콘텐츠 실험
 

생성형 AI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공공 콘텐츠 제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기존 방송 제작은 장기간의 제작 기간과 높은 인력·비용 구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교육, 역사, 지역 문화와 같이 공공적 가치가 높지만 상업성이 낮은 콘텐츠는 지속적인 제작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영상 생성, 이미지 구현, 음성 합성, 자동 편집 등의 기술을 통해 이러한 제작 장벽을 낮추고 있다.

국내 공영방송의 실제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대표 사례는 《KBS》가 2025년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송한 〈전설의 고향: 구미호〉이다. 이 작품은 《KBS》의 대표적인 고전 콘텐츠를 생성형 AI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한 사례로, 단순한 디지털 복원을 넘어 AI가 기획과 시각적 구현 과정에 적극 활용된 국내 공영방송의 대표적인 AI 콘텐츠 실험으로 평가된다.

 


《KBS》 〈전설의 고향: 구미호〉 프로그램 소개 페이지
(출처: 《KBS》 공식 홈페이지)


 

《EBS》는 AI를 공영 교육 콘텐츠 확대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2026년 봄 개편에서는 생성형 AI를 제작 전 과정에 도입한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을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 동서양의 고전을 AI 영상과 음성을 활용해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형식으로 구현했다. 또한 〈AI 인물 한국사〉는 기존 인형극 〈위인극장〉의 형식을 AI 기술로 재해석해 한국사의 주요 인물을 새롭게 구현했으며, 〈AI 드라마–부활수업〉과 〈AI 드라마–청소년 문학관〉 역시 AI를 활용해 역사와 문학을 새로운 영상 언어로 전달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사례는 AI가 단순히 제작비를 절감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하는 교육·문화·역사 콘텐츠의 범위를 확장하는 공공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BS》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프로그램 소개
(출처: 《EBS》 공식 홈페이지)


 

2.2 제작 효율성의 이면: 노동 재분배의 역설
 

AI로 인한 제작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노동 환경의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I는 노동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구조를 재배치한다. 하나의 업무가 사라지는 대신, 한 명의 제작자가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기획자는 프롬프트 작성자가 되고, 편집자는 AI 결과물의 검수자가 되며, PD는 연출뿐 아니라 데이터, 저작권, 윤리 판단까지 관리해야 한다.

Lee(2024)는 생성형 AI 시대의 문화 노동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가 인간 창작의 독점성을 흔들면서 문화 노동은 더 이상 ‘창의적 노동’이라는 낭만적 개념만으로 설명될 수 없게 됐다. 창작자는 AI를 활용해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노동이 데이터화되고 자동화 시스템에 흡수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점에서 AI가 가져오는 효율성은 ‘노동 재분배의 역설’을 낳는다. 제작사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만, 남아 있는 인력은 더 복합적인 업무와 책임을 떠안게 된다. 특히 방송 제작 현장에서는 속도와 정확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AI가 초안을 만들 수는 있지만, 오류 검증, 맥락 판단, 윤리적 책임은 여전히 인간 제작자의 몫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생성형 AI가 미디어와 문화 산업에서 직무 노출, 기술 수요, 노동 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AI 도입 논의가 단순한 생산성 향상 담론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제작 노동의 지속 가능성과 직무 재교육 문제까지 포함해야 함을 보여준다.

2.3 창작 권력의 이동: 방송사에서 플랫폼, 다시 AI 기업으로
 

이러한 노동의 재배치는 창작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방송 시대에는 방송사가 편성권과 제작 인프라를 바탕으로 콘텐츠 생산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OTT와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유통 권력은 방송사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이제 생성형 AI 시대에는 창작 도구와 데이터 인프라를 보유한 AI 기업이 제작 단계의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변화는 ‘누가 콘텐츠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누구의 기술과 데이터로 콘텐츠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시킨다. 창작자가 AI 도구를 활용해 더 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도구가 특정 글로벌 기업의 모델과 규칙에 의해 작동한다면 창작의 조건은 여전히 외부 플랫폼에 의해 결정된다. 즉 창작의 민주화와 기술 의존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Fieiras-Ceide 등(2022)은 유럽 공영방송사들이 추천 알고리즘, 뉴스 자동화, 제작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AI를 실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AI 전략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 미디어의 가치와 연결되어야 한다. AI가 시청자 맞춤형 서비스와 제작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알고리즘 편향, 데이터 의존, 편집 책임의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은 AI를 도입할 때 기술 기업의 솔루션을 단순히 구매하는 수준을 넘어, 공공 미디어의 가치에 맞는 자체 기준과 운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영방송은 제작비를 줄이는 대신 창작 인프라의 통제권을 외부 기업에 넘겨주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2.4 신뢰성의 문제: AI 시대 공영방송의 핵심 가치
 

AI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그럴듯하게 생성하는 ‘환각(hallucination)’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학습 데이터의 편향이나 출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언론과 방송이 자체 개발한 AI가 아니라 해외 기업이 만든 범용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델의 학습 데이터와 판단 기준이 외부에서 결정되는 이상, 오류가 왜 발생했는지, 언제 수정될지를 국내 언론사가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위험은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한 이후에도 국내 다수 매체가 그를 ‘전 대통령’로 잘못 지칭한 기사를 대거 내보낸 사건이 있었다(《EBN》, 2025). ChatGPT 등 해외 생성형 AI가 기사 초안 작성 단계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만들어냈고, 검토 과정에서도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언론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모델의 오류를, 그에 상응하는 자체 검증 체계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이는 AI의 환각 문제가 해외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외부 기술에 의존하는 국내 언론 현장에서도 이미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송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제기된다. AI가 뉴스 원고 작성, 영상 생성, 음성 더빙 등에 활용될 경우 잘못된 정보가 대량 생산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공영방송은 단순히 빠르게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적 미디어이다. 따라서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표시, 인간 편집자의 최종 검증, 데이터 출처와 저작권 확인 절차가 필수적이다.

결국 AI 시대 공영방송의 경쟁력은 기술 도입 속도가 아니라 AI가 만든 정보를 얼마나 책임 있게 검증하고 사회적 신뢰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AI는 공영방송의 제작 역량을 확대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최종적인 진실 판단과 공적 책임은 여전히 인간 제작자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결론: 공영방송의 미래는 AI 기술이 아니라 AI를 다루는 철학에 달려 있다

생성형 AI는 공영방송에 새로운 가능성과 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AI는 제작비와 기술 장벽을 낮춰 더 많은 창작자가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교육, 지역, 다큐멘터리, 문화 다양성 콘텐츠처럼 시장 논리만으로는 충분히 제작되기 어려운 영역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다. 이 점에서 AI는 분명 창작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AI는 동시에 창작 권력의 새로운 집중을 낳을 수 있다. 방송사가 제작 인프라의 중심이었던 시대를 지나, OTT 플랫폼이 유통 권력을 장악했고, 이제는 AI 모델과 데이터를 보유한 기술 기업이 창작의 조건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AI 플랫폼이 창작 도구와 데이터 흐름을 통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AI 시대 공영방송의 과제는 AI를 얼마나 빠르게 도입하는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AI를 어떤 원칙과 가치 아래 사용할 것인가이다. 공영방송은 제작비를 절감하되, 공공성과 다양성을 약화하지 않아야 한다. 기술을 활용하되, 기술 기업에 창작 주권을 종속시키지 않아야 한다. 효율성을 높이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재배치를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콘텐츠 생산 속도를 높이되, 정보의 신뢰성과 검증 책임을 놓지 않아야 한다.

결국 AI 시대 공영방송의 새로운 딜레마는 ‘창작의 민주화’와 ‘기술 권력의 재편’ 사이에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길은 AI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공영방송은 AI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되, 그 과정에서 신뢰성, 투명성, 책임성, 문화 다양성이라는 공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미래 공영방송의 경쟁력은 더 많은 AI 기술을 보유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AI가 만든 결과물을 인간이 어떻게 해석하고, 검증하고, 공공적 의미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AI가 제작의 문턱을 낮추는 시대일수록 공영방송은 창작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공영방송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공적 미디어로 남을 수 있다.

 



 

* 참고문헌
우준형 (2025). 트럼프가 '전직 대통령'?…국내 언론 무더기 오기 충격. 《EBN》. URL: https://www.e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58818
Crawford, K. (2021). Atlas of AI: Power, Politics, and the Planetary Costs of Artificial Intelligence.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Chow, P.-S. (2020). Ghost in the (Hollywood) machine: Emergent applications of artificial intelligence in the film industry. NECSUS: European Journal of Media Studies, 9(1), 193–214.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ILO) (2025). Generative AI and the Media and Culture Industry. Geneva: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Kofler, I., Moussaoui, M. E., & Jamet, R. (2024). AI’s influence on the creative and cultural industries. Im@go: A Journal of the Social Imaginary, 23, 291–312.
Lee, H.-K. (2024). Reflecting on cultural labour in the time of AI. Media, Culture & Society, 46(6), 1312–1323. https://doi.org/10.1177/01634437241254320
Poell, T., Nieborg, D. B., & Duffy, B. E. (2022). Platforms and Cultural Production. Cambridge: Polity Press.
Bender, S. (2024). Generative AI, the media industries, and the arts. Media Practice and Education. Advance online publication. URL: https://doi.org/10.1080/25741136.2024.2355597


 



  






 

TEL 02 3150 4821
FAX 02 3150 4872
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김정현 문화교류연구센터 연구원
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7월 22일
E-ISSN 2714-0431 


 

목록으로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