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영상 콘텐츠 전반으로 확장되는 한일 공동제작의 패러다임 변화가 보이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영화산업이 새로운 생존 경로를 모색하는 지금, 이 같은 전략적 연대는 글로벌 시장 진출 가속화와 제작 기반 다변화를 위한 실질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공동제작은 단순한 자본이나 창작의 결합이 아니다. 투자·제작 시스템의 차이, 상이한 행정 절차, 그리고 상대국의 현장 문법을 모두 체화한 전문 프로듀서 자산의 부재 등 구조적 간극은 생각보다 깊다. 이에 본고는 K-콘텐츠의 외연 확장과 일본 IP의 글로벌 확장이 맞물려 양국의 협력이 한층 심화하고 있는 지금, 이 국경 없는 연대가 침체된 영상산업에 던지는 가능성과 과제를 살펴본다.
지난 7월 2일, 오구리 슌(Oguri Shun)과 아오이 유우(Aoi Yu)가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재팬 오리지널 시리즈 〈가스인간〉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됐다. 〈고질라(Godzilla)〉의 창조자 혼다 이시로(Honda Ishiro) 감독이 연출했던 특수촬영 영화 〈가스인간 제1호〉(1960)*를 리부트한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공개 전부터 큰 화제였는데, 함께 주목을 받은 것이 각본과 총괄 프로듀서를 한국의 연상호 감독이 맡았다는 점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이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하며 널리 알려진 감독으로, 그가 일본의 대표적 특수촬영 IP에 참여한다는 사실도 화제성을 높였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経済新聞)》 역시 ‘《TBS》와 도호가 한일 협업으로 실사 작품, 노리는 것은 해외’라는 제목으로 이번 도호의 리부트뿐만 아니라 CJ ENM과 일본 《TBS》의 영화·드라마 공동제작, 나아가 지방 방송국 간 협업까지 다뤘다. 이처럼 한일 공동제작은 양국 미디어산업의 구조적 변동을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과거 국지적 교류에 머물렀던 협업은 글로벌을 향한 전략적 동맹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1960년 일본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도호(東宝)에서 제작한 특수촬영 영화
한국 정부는 영화진흥위원회 2026년 지원사업에 ‘영화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을 신규 도입했고 일본 역시 영상산업진흥기구(VIPO)가 ‘Japan Drama First Look: Co-Pro Pitch’를 통해 국제공동제작 지원을 본격화하고 있다. 공동제작이 더 이상 예외적 이벤트가 아니라 양국이 각자의 산업 과제를 풀기 위해 선택하는 제도적 경로가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가스인간> 제작진
(좌측부터 오구리 슌, 총괄 프로듀서와 각본의 연상호 감독, 연출의 가타야마 신조 감독, 아오이 유우)
(출처: 넷플릭스)
스튜디오드래곤과 《TBS》가 제작한 〈첫사랑 DOGs〉(2025)는 일본 지상파 드라마 최초로 한국 《tvN》에서 동시 편성되며 양국 동시 방영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CJ ENM JAPAN과 스튜디오드래곤이 기획·제작한 일본판 〈내 남편과 결혼해줘〉(2025)는 일본 구글 '2025년 올해의 검색어' 드라마 부문 1위에 오르며 흥행을 기록했다. 용필름, CJ ENM STUDIOS, 용필름 재팬이 공동제작한 일본 넷플릭스 재팬 오리지널 시리즈 〈로맨틱 어나니머스〉(2025)는 글로벌 TOP 10에도 진입했는데, 해외 시청자 리뷰에서는 K-드라마와 J-드라마 요소의 결합을 고유한 매력으로 평가하거나, 범아시아적 드라마라는 통합된 인지 단위로 수용하는 양상이 관찰된다. 일본에서 5월에 개봉한(한국 8월 개봉 예정) 영화 〈도쿄 버스트: 범죄도시〉(2026) 역시 일본 관객 사이에서 원작인 한국의 〈범죄도시〉 시리즈에 대한 리스펙트와 함께 일본 액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되살렸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첫사랑 DOGs>, <로맨틱 어나니머스>, <내 남편과 결혼해줘>, 〈도쿄 버스트: 범죄도시>
(출처: 《TBS》, Netflix, CJ ENM, KADOKAWA)
이 흐름은 산업구조 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출범한 CJ ENM, TBS 홀딩스, U-NEXT 홀딩스 3사의 합작법인 스튜디오모노와(StudioMonowa)는 기획, 제작, 유통, IP 확장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계해 나갈 계획이다. 사명 역시 일본어로 사람, 이야기를 뜻하는 もの(모노)와 조화를 의미하는 わ(와)를 결합해 한일 양국의 콘텐츠를 하나로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공간(Studio)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일 협력은 이제 '같이 한 편 만들어보자'가 아니라 'IP를 어떻게 함께 개발하고, 어디에 유통하며, 사업화까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했다. 이 지점에서 한일 공동제작을 영화만으로 한정하기보다, 드라마와 OTT 시리즈, 예능까지 포함한 '영상 콘텐츠' 차원에서 보는 편이 현실에 더 가깝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대표 미식가 2명이 서로의 맛집을 오가는 먹방 토크쇼가 시즌 6까지 이어지고 있고(〈미친맛집〉), 양국 예능인들이 매주 함께 게임을 하며(〈닥치고 한일전〉), 양국의 가요를 각자의 언어로 부르며 대결하는 음악 프로도 있다(〈2026 한일가왕전〉). 한일 협업은 영화, 드라마, 생활 문화 예능을 가리지 않고 확장 중이다. 양국의 장르적 색채가 어우러진 블렌딩 텍스트의 신선함을 즐기는 수용이 존재하며, 원작 IP가 타국의 정서와 결합해 완전히 다른 연출 문법과 만남으로써 단일 국가에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넓은 창작적 지평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이 선명해질수록 이 흐름을 산업적으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함께 보인다.

《MBN》<2026 한일가왕전>, 넷플릭스 <미친맛집>, 《KBS Joy》 <닥치고 한일전>
(출처: Wavve, 스튜디오모닥, 《KBS N》)
스튜디오모노와는 자본금 12억 5000만 엔(출자총액 25억 엔), 출자비율 CJ ENM 51%, 《TBS》 40%, U-NEXT 9%로 지난 5월 설립됐다. 판권 거래나 프로젝트성 중심이었던 양국 콘텐츠 협력이 2020년대 초반 OTT 플랫폼을 매개로 공동제작이 늘어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기획 초기부터 지분과 역할, 유통 경로를 함께 설계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협력의 깊이가 달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CJ ENM의 과반 지분 구조에 대해 양사 간 글로벌 제작 역량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의 결과라는 시각이 있으며, U-NEXT의 9% 소수 지분에 대해서는 단기적 실적 견인 효과보다 향후 전개될 장기적 기여도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결국 이 합작법인의 성패는 서로 다른 제작 문화와 시장 논리를 가진 세 회사가 하나의 기획 구조 안에서 지속 가능한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스튜디오모노와(StudioMonowa) 설립을 위한 체결식
(좌측부터 《TBS》 아베 류지로 대표, CJ ENM 윤상현 대표, U-NEXT 츠츠미 텐신 대표)
(출처: CJ뉴스룸)
양국 정부 모두 국제공동제작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움직임은 분명하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는 2026년 주요 업무 계획에서 발표한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한 국제공동제작 제도 신설을 실행했고, 2025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3년까지 콘텐츠 해외 매출 20조 엔 목표를 제시하면서 국제공동제작을 주요 수단으로 명시했다. 다만 이러한 노력이 현장에서 더 빠르게 체감되려면 실무 인프라의 정비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실제 시장 진입 단계에서는 양국의 엄격한 행정 절차가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경우, 스타트업 비자 취득에만 약 6개월이 소요돼 은행 계좌 개설이나 매출 발생 등 본격적인 사업 전개가 연쇄적으로 지연되는 사례가 나타나며, 한국 역시 제도 정교화로 인해 과거와 같은 해외 진출 지원 체제의 즉각적인 설립이나 실행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경을 넘는 사업의 실무 인프라를 콘텐츠 업계의 사업 속도에 맞게 정비해 나가는 일은 어느 한쪽만의 과제가 아닐 것이다.
인재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5 엔터테인먼트·크리에이티브 산업 전략 5개년 액션플랜」에서 글로벌한 식견과 어학력을 갖춘 프로듀서·감독 육성의 필요성을 짚었고, 공익재단법인 유니재팬(UNIJAPAN)은 해외 연수 프로그램과 체재형 기획개발 훈련 등을 포함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 필름프론티어(Film Frontier)를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와 유니재팬이 공동 주최하는 ‘한일 글로벌 프로젝트 기획개발 워크숍’이 매년 지속되고 있으며, 2025년에는 다국적 영화인이 2인 1조로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글로벌 공동제작 워크숍이 신설됐다. 이처럼 인재 양성의 토대가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나, 상대국의 계약 관행과 제작 문법을 체화한 프로듀서가 두텁게 존재하지 않는 한 프로젝트마다 관계를 새로 쌓아야 하는 비효율이 반복되기 쉽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실무 경험이 축적되는 장기 트랙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양국 모두에 의미 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2025 한일 글로벌 프로젝트 기획개발 워크숍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처럼 현장의 인재들이 축적하는 경험과 더불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환경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협업의 시너지는 더욱 안정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 저마다의 산업 관행과 문법이 있는 두 나라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만큼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제도적 마찰 비용을 완화해 주느냐, 그리고 그 지원이 일회성 보조금이 아니라 기획·법무·피칭·유통 컨설팅까지 묶는 축적 가능한 산업 인프라로 설계되느냐가 향후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한일 공동제작은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나 한류의 외연 확장을 단숨에 해결할 만능 해법이 아니다. 다만 한국이 투자 경색과 유통 구조 재편 속에서 K-콘텐츠의 제작 기반과 글로벌 외연을 동시에 넓혀야 하고, 일본 역시 자국 IP의 확장을 위해 콘텐츠의 기획·제작 역량을 끌어올리려는 지금, 양국의 협력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 가운데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양국이 공유하는 문화적 근접성과 산업적 보완 관계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국경을 넘는 이 협업은 동아시아 영상산업에 열린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일 공동제작을 상징적 우호의 언어로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실제 성과를 만들었고 어떤 지점에서 협상이 어려워지는지를 차분하게 축적하는 일이다. 그 축적이 쌓일 때 한일 공동제작은 일회성 화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영상산업의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류지현 (2026). 트랜스내셔널 문화창조산업: 한국 OTT 시장의 국제공동제작 동향과 한일공동제작 유형.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6권 3호, 497-513.
映像産業振興機構(VIPO) (2025.09.26.). 韓国コンテンツ振興院(KOCCA)東京・大阪ビジネスセンター長インタビュー<第一弾東京ビジネスセンター長編>韓国コンテンツの最新動向や日韓のコンテンツ産業が直面する課題と将来の展望. URL: https://www.vipo.or.jp/interview/list/detail/?i=4298#link05
日本経済産業省 (2025). 「エンタメ・クリエイティブ産業戦略 ~コンテンツ産業の海外売上高20兆円に向けた5ヵ年アクションプラン~」. URL: https://www.meti.go.jp/shingikai/mono_info_service/entertainment_creative/pdf/20250624_1.pdf
《日本経済新聞》 (2025.10.12.). TBSや東宝が日韓タッグで実写作品、狙うは海外. URL: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UC293DU0Z20C25A7000000/
Jihyun, RYU (2026). Evolving International Co-productions in the Korean OTT Market: A Focus on Korea-Japan Co-produced OTT Original Content.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Society. Toky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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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7월 22일
E-ISSN 2714-0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