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AI 사용과 AI 생성물에 대한 거부감이 낮은 나라로, 한국 콘텐츠산업 전반에서 생성형 AI 도입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여전히 AI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우세하며, 이는 케이팝처럼 글로벌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산업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낳고 있다. 뮤직비디오와 앨범 비주얼에 사용된 AI는 ‘환경오염’과 ‘진정성 훼손’라는 두 축에서 비판받는 한편, AI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그룹의 경쟁력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또한 번역과 자막 영역에서는 AI 도입으로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문화적 맥락을 놓친 오역과 논란도 함께 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대시보드 데이터를 통해 AI 사용에 대해 한류 수용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반응 속에서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케이팝 업계 사례를 중심으로 탐색해 본다.
* 초성퀴즈 정답 : AI 슬랍(Slop)
한국은 전방위적으로 AI 사용 및 AI 생성물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낮은 나라이다. 한국인의 약 16%만이 AI의 일상적 사용 확대를 부정적으로 느끼며(Pew Research Center, 2025), 이러한 높은 긍정률을 반영하듯 한국 사회 일상에서는 AI를 활용한 서비스나 생성물을 정말 쉽게 마주칠 수 있다.


특히 콘텐츠산업에서는 생성형 AI 도입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콘텐츠 제작이나 창작, 사업 기획 등 다양한 주요 업무에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2026)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기준 콘텐츠 관련 회사 중 32.1%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도입하고 있었으며, 그중 62.7%가 콘텐츠 제작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방송 및 영상 산업군의 경우 그 비율이 87%까지 증가하기도 했다. 반면 다른 나라, 특히 영미권에서는 AI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반적으로 우세하며(YouGov, 2025), 일상 속 AI 사용 증가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우려는 한국 콘텐츠 업계의 현황과 맞물려 해외 수용자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AI 사용은 다양한 콘텐츠와 비주얼 자료가 대량으로 빠르게 생산·소비되는 케이팝 업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뮤직비디오나 음반 표지, 로고 같은 주요 비주얼 요소부터 공지용 이미지까지, 소셜미디어에서는 AI를 활용했거나 활용을 의심받는 케이팝 콘텐츠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에는 크고 작은 비판이 항상 따라붙으며, 흔히 ‘AI 슬랍(AI slop, AI로 대량 생산된 저품질 콘텐츠를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등장한다.

1-1. 케이팝 창작물 속 AI 사용 비판의 맥락
실제 댓글을 살펴보면 AI 사용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나뉜다. 첫째는 환경오염이다. 팬들은 AI 서비스 운용에 대량의 전력과 물이 필요하다는 점에 근거해 AI 사용 콘텐츠를 환경오염 및 자원 착취와 결부시켜 비판한다. 둘째는 소속사의 투자 부족과 예술적 ‘진정성(authenticity)’ 하락에 대한 우려다. 이 맥락에서 팬들은 소속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실제 인력(VFX 전문가 외주, 사내 디자이너 등) 고용 대신 기계 생성물로 자리를 값싸게 채운다고 비판하며, 이 과정이 참여 아티스트의 생계와 창작 행위의 진정성 자체에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은 에스엠, 하이브처럼 예산을 크게 운용할 수 있는 대형 소속사를 대상으로 할 때 특히 두드러졌다.
두 맥락 모두 AI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댓글 창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1-2. AI 사용/미사용을 둘러싼 이중잣대
반대로, AI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장점이자 경쟁력으로 부각되는 경우도 있다. 코르티스(CORTIS)의 <티엔티(TNT)>나 미야오(MEOVV)의 <띠로리(DDIRORI)> 뮤직비디오가 대표적인 예시다. 두 뮤직비디오는 언뜻 AI를 활용한 듯한 비주얼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500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촬영했거나(코르티스), 대형 세트에서 프레임 속도 변화와 로토스코핑 등 촬영 기법(미야오)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팬들은 커뮤니티에서 위와 같은 제작 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며 아이돌 그룹의 ‘예술적 진정성’을 설파하곤 한다. 다만 이러한 대규모 인력이나 세트 운용은 애초에 막대한 자본을 전제로 하며, 하이브(HYBE)나 더블랙레이블(THEBLACKLABEL)과 같은 대형 소속사에 종속적인 시도라는 점은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AI 사용에 대한 비난이 실사용에 대한 부정적 감정보다는 팬덤 간 다툼에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잦았다. 반대로 AI를 사용한 콘텐츠더라도 수용자의 취향에 맞거나 팬덤 내 2차 창작물인 경우 큰 비판 없이 긍정적으로 소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걸그룹 르세라핌이 올린 귀여운 AI 강아지 안무 챌린지 영상에 대부분의 팬들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남겼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비판하며 한 팬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콘텐츠 창작 과정의 AI 활용과는 다소 다른 맥락이지만, 다국어 번역 및 자막에서의 AI 사용 역시 편리성과 오역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AI는 다국어 자막 제작을 한층 쉽고 빠르게,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이 직접 검토해 만들던 자막에 비해 맥락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오역이 늘어나는 부작용도 함께 낳고 있다.

특히 팬번역(fan-sub)을 해오던 팬들 사이에서 이러한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됐다. 원래 팬번역은 두 언어(한국어와 번역 대상 언어)와 번역 대상에 대한 정보 모두에 능통한 사람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여기서 ‘대상에 대한 정보’는 다차원적인 맥락 정보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 국적의 아이돌이 함께 등장하는 영상이라면, 두 인물의 출신 국가·지역에 대한 배경지식은 물론 인물 간 ‘관계성’까지 알아야 오역 없이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AI의 등장으로 언어와 문화적 맥락,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도 손쉽게 음성을 추출하고 자막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원래는 사람의 판단을 거쳐 걸러졌을 내용이 필터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소셜미디어가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AI 자동 번역 기능이 일으키는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아이돌이나 작품에 대한 오해를 낳는 수준을 넘어 훨씬 심각한 차원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엑스(X)(구 트위터)에서 불거진 동아시아권과 브라질 간 ‘미백’ 관련 이슈가 대표적이다. 동아시아인이 '밝은(bright)' 피부색을 가질 수 있다는 한국어 표현이 포르투갈어로 자동 AI 번역되는 과정에서 '백인(racial white)'으로 오역되며 인종적 논란을 낳았다. 엑스(X)가 지난 4월부터 모든 게시물에 전면 자동 번역을 도입하면서, 이러한 오역과 그로 인한 논란은 더욱 빈번하고 강도 높게 반복되고 있다. 엑스(X)가 케이팝을 비롯한 글로벌 한류 팬 절대다수가 이용하는 플랫폼인 만큼, 이러한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 보완 조치가 시급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흐름 속에서 AI 사용이 가져오는 긍정적·부정적 영향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춰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팬들이 AI 콘텐츠에 보이는 거부감은 단순히 사람이 만들었는가 AI가 만들었는가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 제기는 좋아하는 대상을 응원하는 행위가 자원 착취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는 불편함에서 비롯되며, 예술성 저하에 대한 우려는 애정을 쏟는 창작물이 값싸게 대체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결국 팬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 편히 좋아할 수 있는 상태, 즉 소비 행위 자체가 불편한 윤리적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요구는 다소 모순적인 지점을 내포한다. 팬들은 일상적으로 AI 추천 알고리즘이나 AI 기반 팬캠 편집, 2차 창작물을 큰 거리낌 없이 소비하면서도, 정작 아티스트의 공식 콘텐츠에 AI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는 AI 기술 자체에 대한 전면적 거부라기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는 공식 콘텐츠를 환경이나 노동, 예술적 진정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싶다는 선별적이고 정서적인 요구에 가깝다. 따라서 케이팝 업계가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과 번역·자막 작업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AI 사용 범위와 목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용자와 소통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AI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산업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이상, 관건은 이를 거부하느냐 수용하느냐가 아니라 팬들이 죄책감이나 불편함, 오해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응원할 수 있는 방식을 함께 만들어가는 데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Pew Research Center (2025). How People Around the World View AI. URL: 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25/10/15/concern-and-excitement-about-ai/
YouGov (2025). English-speaking Western countries more negative about AI than Western Europeans. URL: https://yougov.com/en-gb/articles/53654-english-speaking-western-countries-more-negative-about-ai-than-western-europeans
한국콘텐츠진흥원 (2026). 2025년 4분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 URL: https://www.kocca.kr/kocca/bbs/view/B0158949/201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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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7월 22일
E-ISSN 2714-0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