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호] ZOOM 1 | 왜 우리는 덕질하는가 – 정동이 정념이 되고, 정념이 삶의 방식이 되는 과정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문화교류연구센터 게시일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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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덕질'을 시작할까? 우연히 본 한 편의 영상 때문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이나 한 번의 공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처음의 설렘은 어떻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애정이 되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일까? 이 글은 문화기호학의 관점에서 순간적인 감각의 움직임인 정동(affect) 이 지속적인 정념(passion) 으로 발전하고, 다시 소비와 실천을 거쳐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살펴본다. 최근의 한국 케이팝 팬 연구를 바탕으로, 덕질을 단순한 취미나 소비가 아니라 개인의 가치와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새롭게 이해해 보고자 한다.
 

1. 덕질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사람들은 ‘입덕'을 한순간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덕질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고 관계가 쌓이면서 삶의 일부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우연히 본 한 편의 무대 영상에 마음을 빼앗긴다. 처음에는 ‘노래가 좋다’거나 ‘춤이 멋있다’ 정도의 가벼운 호기심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공연을 찾아가고, 같은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대상은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흔히 ‘입덕’이라고 부른다. 이제 ‘입덕’은 케이팝 팬덤을 넘어 하나의 일상어가 되었다. 하지만 왜 입덕하게 되는지, 그리고 처음의 설렘이 어떻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애정으로 발전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연구는 그동안 팬덤을 플랫폼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설명해 왔다(Jenkins, 1992; Duffett, 2013). 물론 이러한 환경은 팬덤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팬덤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 출발점은 언제나 한 사람의 마음이다.

 


공연을 통해 아티스트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경험하는 팬들
(출처 :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촬영)
 

2. 감정과 정념은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모두 ‘감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문화기호학에서는 이 마음의 움직임을 조금 더 세밀하게 구분한다. 처음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시선이 머물고, 자꾸만 생각나고, 다시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아직 이름 붙일 수는 없지만, 분명 마음이 움직인 상태이다. 문화기호학에서는 이러한 아직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움직임을 ‘정동(affect)’이라고 부른다.

반면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애착이 생기고, 그 관계가 일상 속에 자리 잡으면 그것은 더 이상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다. 좋아하는 대상은 나의 시간과 행동, 나아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문화기호학에서는 이처럼 지속되고 조직된 감정을 ‘정념(passion)’이라고 부른다(Greimas & Fontanille, 1991). 쉽게 말하면 정동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라면, 정념은 ‘그 마음이 삶 속에 자리 잡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팬덤은 바로 이 정동이 정념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현상이다.

 

3. 입덕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필자는 한국 케이팝 팬 309명을 대상으로 입덕 계기와 팬 활동의 변화 과정을 조사했다. 이 응답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낀 점은, 팬들이 처음부터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입덕의 가장 강력한 계기는 음악, 춤, 외모, 무대, 뮤직비디오와 같은 감각적 매력이었다. 실제 조사에서도 ‘음악이 좋아서’, ‘아티스트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춤이 좋아서’와 같은 응답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입덕이 대개 이성적 판단보다 감각적 매혹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노래가 좋다’, ‘무대가 멋있다’, ‘계속 보게 된다’는 정도의 느낌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은 점차 멤버의 성격과 가치관, 성장 과정, 팬들과의 관계로 확장된다.

팬들은 공연을 보고,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고,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대상과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 간다. ‘처음에는 음악이 좋아서였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라는 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다른 팬들과 공유하고,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공감과 연대를 경험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하나의 정념으로 조직되기 시작한다(전형연, 2026). 그래서 입덕은 어떤 사건이라기보다 하나의 과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팬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입덕’한 팬들이 케이팝 아티스트 ‘지드래곤(G-DRAGOAN)’의 생일 팝업에 참여한 모습
(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문화교류연구센터 류아진 연구원)

4. 왜 우리는 기꺼이 시간과 돈을 쓰는가?

팬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은 종종 소비에 머문다. 앨범을 여러 장 구입하고, 콘서트에 가고, 굿즈를 구매하고, 스트리밍과 투표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고 묻는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팬들의 소비는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이 정념으로 발전한 이후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었다.

같은 앨범을 구매하는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공연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방식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팬들과 함께 참여하는 하나의 문화적 실천이다. 몰입 단계의 팬들 역시 단순히 ‘재미있어서’ 팬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케이팝 문화에 빠져 있고,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팬덤을 통해 소속감과 정체성을 경험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팬 활동은 취미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즉, 팬덤의 소비는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하고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행위다. 팬들에게 소비는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기호학자 장 마리 플로슈(Jean-Marie Floch)는 소비를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설명한 바 있다(Floch, 1990). 팬들의 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팬들에게 소비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계와 가치를 표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실천이다.

 


케이팝 아티스트 '플레이브(PLAVE)'의 앨범 포토카드, 카페 방문, 굿즈 인증 사진
(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문화교류연구센터 류아진 연구원)

5. 덕질은 어떻게 삶의 방식을 바꾸는가?

팬 활동은 언젠가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팬덤의 경험은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일부 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팬덤을 떠났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팬 활동이 끝난 뒤에도 그 경험은 삶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 결과, 팬덤 이탈의 주요 이유는 단순히 ‘더 이상 유행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티스트의 부정적 언행, 범죄나 사회적 논란, 신뢰의 약화, 심리적·시간적 제약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팬덤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윤리, 관계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전형연, 2026). 다시 말해 팬은 단순히 좋아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좋아했던 관계가 더 이상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을 때 떠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이탈은 팬덤의 실패라기보다 정념의 재배치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팬 활동을 통해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고, 누군가는 영상 편집이나 디자인을 배우게 되었다. 또 다른 사람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감을 얻거나 새로운 공동체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팬덤의 경험은 특정 가수를 좋아하는 일을 넘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경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필자의 후속 연구에서도 이러한 정념은 팬덤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팬들이 공연장에서 배우고 실천했던 연대와 협력, 참여의 경험은 기부와 봉사, 사회참여와 같은 더 넓은 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다(Jeon, 2026).

물론 모든 팬이 사회참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팬덤이 단순한 소비문화가 아니라 개인이 관계를 배우고, 가치를 형성하며, 공동체를 경험하는 하나의 사회문화적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케이팝 아티스트와 팬덤의 이름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팬들
(출처: hallyudorama 사이트)

 

6. 왜 덕질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까?

우리는 흔히 덕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미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덕질은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삶의 방식으로 만들어 가는 실천이다. 정동이 정념으로 발전하는 순간, 좋아하는 마음은 더 이상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삶을 이끄는 가치가 된다. 처음의 설렘은 정동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설렘이 반복되는 경험과 관계를 만나 정념이 되고, 정념은 다시 소비와 실천을 통해 하나의 가치로 발전한다. 결국 덕질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Greimas & Fontanille, 1991; Floch, 1990).

그래서 ‘왜 우리는 덕질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단지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 덕질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결국에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만들어 가기 위해 덕질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Jenkins, H. (1992). Textual poachers: Television fans and participatory culture. New York, NY: Routledge.
Duffett, M. (2013). Understanding fandom: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edia fan culture. New York, NY: Bloomsbury Academic.
Greimas, A. J., & Fontanille, J. (1991). Sémiotique des passions: Des états de choses aux états d'âme. Paris: Seuil.
전형연. (2026). 입문에서 이탈까지: K-POP 팬덤의 정념의 여정과 소비가치 구조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6권 1호, pp. 380~391.
Floch, J.-M. (1990). Sémiotique, marketing et communication: Sous les signes, les stratégies.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Jeon, H.-Y. (2026). From Affect to Value: The Generative Trajectory of K-Pop Fan Practices and Democratic Meaning. Signs and Society. URL: https://doi.org/10.1017/sas.2026.1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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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소민, 김정현
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9월 23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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