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호] FOCUS 1 | 팬심과 승부심 사이: e스포츠 팬덤, 게이머를 아이돌로 만들다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문화교류연구센터 게시일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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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오늘날의 미디어 수용자가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이 아니라, 이를 변형하고 재생산하는 참여적 주체로 규정했다. e스포츠 팬덤은 이 참여문화의 축약판과도 같다. 이들은 경기를 ‘보고(Watch)’, 직접 ‘플레이하고(Play)’, 정보와 콘텐츠를 ‘창작하며(Create)’, 굿즈와 이벤트를 ‘소비한다(Consume)’. 이 순환 속에서 e스포츠 팬은 케이팝 팬 못지않게 밀도 높은 생비자(prosumer)*가 된다. 케이팝 팬덤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조직 문화가 e스포츠 팬덤으로 이식되면서, 팬들은 선수와 준사회적(parasocial)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팬덤의 이러한 능동성은 e스포츠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키운 실질적 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 능동적 생산·소비의 순환은 동시에 선수를 '가치 있는 이미지'로 우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경제 구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선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경기 실력보다 팬과의 소통, 방송 이미지와 같은 경기 외적 요소에서 더 큰 중압감을 느끼는 역설에 놓인다. 이 글은 그 역설이 만들어지는 지점을 케이팝 팬덤과의 비교 속에서 들여다본다.
*생비자(prosumer):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

1. e스포츠 팬은 어떻게 생비자(Prosumer)가 되었는가

e스포츠는 경기가 끝난 직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는 분주하다. 승리한 팀의 팬 게시판에는 하이라이트 장면을 자체적으로 편집한 영상과, 해설진의 분석을 재구성한 요약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며, 패배한 팀의 팬 게시판에서는 밴픽 전략부터 경기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그 토론은 곧 다음 경기를 향한 새로운 기대로 옮겨가며, 팬들의 열기는 식지 않고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응원이나 훈수가 아니다. 팬들이 경기라는 텍스트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재로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참여의 현장’이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2006)는 디지털 환경의 팬을 더 이상 수동적 관객이 아니라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재생산하는 참여적 주체로 정의했다. 참여문화란 예술적 표현과 시민 참여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창작하고 공유하는 행위 자체를 중시하며 숙련자의 지식이 초심자에게 전수되기도 하는 일종의 비공식적 멘토십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문화는 미디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팬(fan)은 텍스트 자체에 몰입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 텍스트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결국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또 하나의 생산자가 된다.

e스포츠 팬덤은 이 참여문화의 원리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에서 성장해 왔다. 최은경(2022)은 이러한 순환을 PWCC(Play-Watch-Create-Consume) 모델로 설명한 바 있다. 실제 e스포츠 팬과의 인터뷰에서, 팬들은 구단이나 기업이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에 만족하지 않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를 스스로 가공해 재배포한다고 했다. 즉 이들은 콘텐츠의 수동적 수신자가 아니라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재구성하는 편집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신혜인·최은경, 2024).

팬들의 창작과 소비 밀도는 최근 선수 개인 스트리밍 시장에서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2025년 2월 기준 LCK(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선수 개인 방송 최고 동시 시청자 순위를 보면, T1 구마유시(Gumayusi)가 1만 5,300명, 페이커(Faker)가 1만 4,900명으로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했고, 뒤이어 도란(Doran, 9,800명), 오너(Oner, 7,300명), 쵸비(Chovy, 5,700명), 제우스(Zeus, 5,400명), 피넛(Peanut, 4,400명) 순으로 이어진다(Esports Charts, 2025.2.). 이는 공식 경기 중계라는 단일 창구를 넘어, 선수 개인의 일상적 방송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시청 콘텐츠가 됐음을 보여준다. e스포츠 팬들에게 ‘시청(Watch)’은 더 이상 ‘경기’라는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팬들이 지켜보는 것은 이제 경기가 아니라 ‘선수라는 인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LCK 선수 개인 방송 최고 동시시청자 순위(2025년 2월 기준)
(출처 : Esports Charts 공식 X 계정(@EsportsCharts))


 

이처럼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팬덤의 존재는 e스포츠 산업을 성장시킨 실질적 동력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능동성은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 팬이 생산하는 방대한 콘텐츠와 감정은 결국 어느 점에 모이게 되는지 의문이 든다.

 

2. ‘게임’에서 ‘스포츠’로, 새로운 축이 된 e스포츠 팬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프로게이머는 온전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PC방에서 밤새 게임을 하는 젊은이들의 취미가 정식 스포츠가 될 줄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e스포츠 선수는 국위 선양에 동참한 엘리트 스포츠 선수로 그 위상이 달라졌다. e스포츠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종목이 된 이후, 2023년에 열린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이 됐고, 올해 열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ichi-Nagoya 2026 Asian Games)에서 e스포츠는 11개 세부 종목으로 총 13개 게임이 정식 종목에 채택되었다.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는 「병역법」 시행령 제68조의 11 제1항 제5호에 따라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입상자는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돼 복무할 수 있어, e스포츠 역시 정식 종목 금메달리스트는 이 조항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 ‘선수(athlete)’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뉴주(Newzoo)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e스포츠 시청자는 2025년 기준 6억 4,080만 명(핵심 팬 3억 1,810만 명, 비정기 시청자 3억 2,2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전체 시청자의 57%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 매출 규모는 집계 방식에 따라 편차가 있는데, 뉴주의 프로 e스포츠 매출 모델 기준으로 2025년 약 18억 6,600만 달러로, 2020년의 9억 9,600만 달러 대비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플랫폼·소비자 지출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시장 추정치는 2025~2026년 기준 24억~51억 달러로 그 규모가 훨씬 크다(Bitcoin.com, 2026.7.6.). 시장 규모 측정이 다름을 감안하더라도 e스포츠는 이제 게임 산업의 부산물을 넘어 독립적인 성장 동력을 지닌 문화산업의 한 축이 되고 있음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팬덤의 조직력과 소비력 역시 국경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람 문화의 변화가 뚜렷한데, LCK 스프링 현장 관람 티켓 구매자 중 여성 비율은 2017년 46%에서 2024년 64%로 크게 늘었다(신혜인·최은경, 2024). 이는 단순한 성비 변화가 아니라, e스포츠 관람이 소수 마니아의 취미에서 대중적인 문화 소비로 확장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팬덤이 산업의 요청 없이도 자발적으로 마케팅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2019년 5월, 중국 팬들은 페이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전광판에 사비로 광고를 게재했다. 2021년 5월에는 대만 팬덤이 한 달간 페이커의 생일을 축하하는 버스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고(게임메카(2019), 데일리e스포츠(2021)), 국내에서도 데프트(Deft), 쵸비, 캐니언의 생일을 기념하는 지하철 역사 광고가 팬클럽 주도로 잇달아 게재됐다. 기업이 아니라 팬 스스로가 자신의 지갑을 열어 만든 광고라는 점에서, 이는 팬덤이 지닌 경제적 능동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처럼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팬덤의 행위는 상당 부분은 케이팝 팬덤과 문화적 공통점이 있다.

3. e스포츠 팬심의 문법: 아이돌화(Idolization)부터 준사회적(parasocial) 관계까지

팬들이 아이돌이 운영하는 혹은 방문한 카페를 방문하고,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카페를 빌려 파티를 열고, 특별한 선물을 만들고 구입해 조공을 하며, 전광판을 대여해 생일과 승리 기념을 위한 광고판을 구입하는 행위는 사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케이팝 팬덤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조직 문화가 e스포츠 팬덤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즉 특정 선수의 생일을 기념해 오프라인 공간을 대관하고, 팬들끼리 굿즈를 무료 나누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케이팝 팬덤의 오랜 관습으로 e스포츠 팬들의 경험과 감정 공유 행위는 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두 팬덤이 감정을 축적하는 리듬에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케이팝 팬덤은 컴백 주기, 앨범 콘셉트, 활동 기간과 휴식기라는 비교적 긴 호흡 속에서 팬의 서사를 쌓아 올린다. 팬들은 몇 달에 걸쳐 다음 앨범을 기다리고, 그 기다림 자체가 팬덤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으로 작용한다. 반면 e스포츠 팬덤은 경기 단위의 승패에 따라 즉각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의 낙차를 경험한다. 오늘 이긴 팀의 팬은 환호하고, 내일 진 팀의 팬은 깊은 침체에 빠진다. 이 낙차는 며칠, 심지어 몇 시간 단위로 반복된다. 즉 승부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매 경기 팬의 감정에 영향을 주면서 e스포츠 팬덤은 팀 응원과 라이벌 팬덤 간의 신경전이라는 스포츠 특유의 경쟁 문법이 작동되기도 한다(신혜인·최은경, 2024). 그런데 이 감정의 낙차는 단순히 팀 성적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팬들이 선수 개인에게 쏟는 애정의 방식 역시 점차 아이돌 팬덤을 닮아가고 있다.

좋아하는 선수의 포토 카드를 종류별로 수집하고, 팬 스스로 디자인한 비공식 굿즈를 무료로 나누며,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은 이제 e스포츠 팬덤의 일상이며 아이돌 문화와 유사하다. 이렇듯 e스포츠의 팬 문화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게이머들의 문화에 아이돌 팬덤 특유의 감정 표현 방식이 더해지면서, 트럭 시위 같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실제 2023년 7월, 한 e스포츠 구단 소속 선수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구단과 LCK를 규탄하는 트럭이 서울 종로 롤파크 앞에 등장했다. 트럭 시위는 본래 아이돌·배우 팬덤이 소속사에 불만이나 개선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해 온 방식으로, 결속력과 행동력이 강한 팬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에 소속사나 협회가 위치한 경우가 많아, 뉴스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e스포츠 팬들은 경영진의 결정에 항의하거나 선수 보호를 요구하기 위해 공공장소의 트럭과 전광판을 시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애정에서 비롯된 행동이 때로는 선수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도 있고, 감독과 해설진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과도한 압박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팬덤의 열정이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게임사의 부조리함과 부당함에 항의하던 게이머들의 저항 문화가 e스포츠 팬들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좌)아이돌 팬덤의 트럭 시위, (우)e스포츠 팬덤의 트럭 시위
출처: 《연합뉴스》, 《뉴스워커》

 

e스포츠 팬들에게 e스포츠 선수는 내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있기 때문에 바라볼 수밖에 없는 스타(idol)이면서도, 원한다면 e스포츠 선수들의 수많은 개인 방송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접할 수도 있어, 준사회적 관계 즉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즉 e스포츠 팬은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선수들의 공적인 모습부터 사소한 일상까지 관여하고 공감하며 관찰 및 감시도 할 수 있어 실제 상호작용을 하지 않지만, 선수에 대한 친밀감, 유대감 그리고 팬으로서의 높은 충성심을 갖게 된다(홍페이샨·최은경, 2024).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 시청자나 팬이 TV 속 인물, 유명인, 혹은 온라인 크리에이터 등 미디어 속 대상과 실제로 상호작용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일방향적 심리적 유대감을 뜻함

 

4. 우상화가 완성하는 경제, 그리고 선수가 떠안는 무게

팬들이 플레이하고 시청하고 창작하고 소비하는 이 끊임없는 활동의 순환은 결국 어느 점에서 만나게 될까. 팬들의 능동적인 생산과 소비는 궁극적으로 선수라는 한 개인을 ‘가치 있는 이미지’로 응축시키며, 이렇게 계산된 이미지는 상품화(commodification)에 진입하면서 경제 구조의 한 축을 이룬다.

대표적으로 e스포츠 선수가 인플루언서와 동일한 마케팅 카테고리 안으로 편입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2019년 프로게이머 페이커는 서바이벌 슈퍼플레이 팝업 스토어에 참여하며 인플루언서 마케팅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후 면도용품 브랜드 질레트(Gillette)가 진행한 ‘질레트 게이밍 연합(Gillette Gaming Alliance)’ 캠페인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11개국의 인플루언서를 트위치콘(TwitchCon)에 참여시켜, 소비자가 이들이 추천한 제품을 구매하면 스트리머 후원용 가상화폐인 트위치 비트로 환급해 주는 방식이 성공했다. 프로게이머의 실력이 아니라 그가 지닌 팬 동원력과 브랜드 친화력이 마케팅 자산으로 거래된 것이다.

이러한 인플루언서형 마케팅이 개인의 이미지를 자산화하는 방식이라면, 스폰서십은 브랜드가 선수의 팬덤 자체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세븐일레븐과 음료 브랜드 브리스크(Brisk)가 스폰서로 참여한 유니버설 오픈 로켓리그는 대회 중계 화면 노출에서 시작해 대회 종료 후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구조로 이어졌다(질레트·펩시·메조미디어, 2023). 국내에서는 오비맥주가 LCK와 협업해 ‘카스×LCK 레전드 팩’이라는 한정판 상품을 출시했는데, 이는 경기 중계 화면 속 브랜드 노출이 실물 상품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다(오비맥주, 2024).

위의 사례들은 e스포츠와 전혀 무관한 산업군이 자연스럽게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 스포츠의 스타들이 브랜드가 되어 수많은 광고 모델이 되는 것처럼, e스포츠 선수들도 ‘경기력’이라는 단일 가치를 넘어 브랜드 자산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금융권의 e스포츠 마케팅이 경쟁이 대표적 사례이다. KB국민은행은 리브샌드박스와 협업해 ‘옐로 룩 이벤트(Yellow Look Event)’를 진행했고, 하나은행은 T1과 함께 ‘하나 T1 데이(Hana T1 Day)’ 팬 이벤트를 개최했으며, 신한은행은 DRX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우리은행은 2025 LCK 결승전의 공식 스폰서로 참여했다.


(좌)하나은행×T1 'Hana T1 Day' 포스터 / (우)우리금융그룹 e스포츠 국가대표팀 CF
(출처: 하나은행 사이트, 유튜브 우리금융그룹(@woorifg.official) 영상 캡처)


 


(좌)라네즈×T1 협업 상품 광고 / (우)페이커(FAKER) 왕뚜껑 협업
(출처: 라네즈 코리아, 팔도 공식 채널(@laneige_kr, @paldofood6295) 영상 캡처)


 

특히 하나은행은 자사의 디지털뱅킹 플랫폼 ‘하나원큐’를 T1 선수들이 직접 패러디하는 광고를 제작해, 선수들을 금융 서비스의 캐릭터로 완전히 편입시켰다. 우리금융그룹은 e스포츠 국가대표팀을 모델로 ‘우리 같이 뛰어요’라는 TV CF를 선보였는데, 이는 2022년 아시안게임 당시 국가대표라는 ‘선수’로서의 공식적 위상을 광고의 핵심 이미지로 이용한 대표 사례다. 또한 뷰티 회사 라네즈는 립 슬리핑 마스크의 T1 에디션을 ‘FIVE STARS, ONE DREAM’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출시했다. 분초를 다투며 치열한 경쟁을 하는 프로게이머가 뷰티 제품의 모델이 된 것이다. 그 밖에도 컴퓨터 장비,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 라면, 게임기, 의류, 가방, 고가의 명품과 수입 자동차 등 e스포츠 스타의 소비재 광고 시장은 전성기를 모르는 듯 하다.

금융과 뷰티처럼 게임과 전혀 무관한 산업군까지 선수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수는 더 이상 '실력'이라는 단일 지표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이미지’, ‘국가대표라는 상징성’, ‘아이돌급 소구력’이라는 복합적인 자산으로 소비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팬덤의 평가 기준에서도 확인된다. 대만 e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팬들이 선수에 대한 충성도(loyalty)와 친밀도(intimacy)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요인은 경기 실력이 아닌 성격(personality)·도덕성(morality)·언행이었다(홍페이샨·최은경, 2024).

아이돌이 무대 뒤에서 이미지 관리라는 또 다른 노동을 수행하듯이, e스포츠 선수 역시 승부의 세계 밖에서 또 하나의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팬과의 실시간 소통, 개인 방송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와 화법의 관리, 광고 모델로서 요구되는 이미지 유지는 이제 경기력과 나란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선수를 평가하고 소비하는 축이 되었다. 선수는 실력을 증명해야 함과 동시에, 팬들이 기대하는 ‘캐릭터’와 ‘이미지’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기에, ‘사랑받는 존재’이자 ‘증명해야 하는 존재’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개별 선수의 성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팬덤이 만들어낸 견고한 경제 구조가 요구함으로 인해 생긴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5. 나가며

e스포츠 팬은 참여문화의 이상적인 사례처럼 보인다. 이들은 경기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플레이하며, 정보와 콘텐츠를 창작하고, 굿즈와 광고 상품을 소비한다. 이 능동성은 e스포츠 산업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시킨 실질적 동력이었다. 팬들이 없었다면 게이머는 지금과 같은 사회적 위상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능동적인 생산과 소비의 순환은 동시에 선수를 하나의 상품화된 이미지로 응축시키는 경제 구조를 완성하고 있다. 팬덤 경제가 견고해질수록 선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결코 경기력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팬심과 승부심 사이, 사랑받는 존재와 증명해야 하는 존재 사이에서 선수는 이제 프로답게 감정 노동까지 관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다만 이것이 진정 e스포츠 팬들이 선수에게 바라는 모습인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로 남는다.



 

※ 참고문헌
신혜인, 최은경 (2024). e스포츠 여성 팬의 문화·경제적 활동에 관한 사례 연구. 《Journal of Korea Game Society》, 24권 3호. pp. 69-80.
최은경 (2022). 『e스포츠와 PWCC: Play Watch Create Consume - e스포츠 시대, e스포츠 세대 이해하기』. 서울: PWCCBOOKS.
홍페이샨, 최은경 (2024). A Study on Gender Differences in Intimacy and Loyalty Among Taiwanese Esports Fans. 《Journal of Korea Game Society》, 24권 4호. pp. 99-108.
Bitcoin.com News (2026.7.6.). Esports Revenue Climbs Toward $5.1 Billion as Global Audience Tops 640 Million.
Jenkins, H. (2006). Convergence Culture: Where Old and New Media Collide.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Horton, D., & Wohl, R. R. (1956). Mass communication and para-social interaction: Observations on intimacy at a distance. Psychiatry, 19(3), pp. 215-229.
Newzoo (2022). Global Esports & Live Streaming Market Report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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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소민, 김정현
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9월 23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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