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호] FOCUS 2 | [지역 한류 심층분석: 필리핀] 연대에서 균열로, #SEAblings가 촉발한 필리핀 한류 팬덤의 과제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문화교류연구센터 게시일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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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에서 사용된 한류 관련 모든 통계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 의 필리핀 편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



한류를 가장 사랑하는 팬덤이 왜 등을 돌렸는가. 케이팝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히 한류를 소비해 온 필리핀 팬덤이 2026년 #SEAblings 연대에 합류했다. 한류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시장에서 나타난 이 균열은 해외 한류 팬덤과 한국 문화산업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의 높은 인기와 더불어 상업성에 대한 피로감, 문화다양성 고려 부족 등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또한 필리핀 청년 연구는 한류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인간관계와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경험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SEAblings는 한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팬덤 내부에 축적된 문제의식이 표출되며 보다 성숙한 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한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류의 지속가능성은 콘텐츠 경쟁력만으로는 담보되지 않는다. 해외 팬들과의 신뢰 구축, 문화적 존중에 기반한 관계 형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1. 필리핀 한류 팬덤은 왜 #SEAblings에 공감했는가

2026년 초 동남아시아를 휩쓴 #SEAblings* 사태에 필리핀 팬덤도 가세했다. 케이팝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히 한류를 소비해 온 필리핀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점은, 한류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시장에서조차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리핀이 이처럼 한류에 깊이 물든 시장이라는 점은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도 뒷받침된다. 필리핀 내 한국 문화 콘텐츠는 음악(81.8%)과 드라마(81.2%)뿐 아니라 음식(80.7%), 영화(76.2%), 뷰티(73.1%), 패션(72.5%)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적 인기 수준의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는 한국 문화가 특정 장르의 유행을 넘어 일상적인 문화 소비의 일부로 자리 잡았으며, 필리핀 한류 팬덤이 단순한 콘텐츠 소비층을 넘어 한류의 성장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올해 초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데이식스(DAY6) 콘서트에서 한국인 팬의 무단 촬영이 적발되면서 온라인 공방이 시작됐다. 현지 팬들의 관람 매너 지적은 일부 한국 이용자들의 문화적 우월감 표출로, 나아가 동남아시아의 경제 수준과 인종을 겨냥한 비하로 번졌다. 동남아시아 이용자들도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외모지상주의를 지적하며 맞섰고, 갈등은 말레이시아를 넘어 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 등으로 확산되며 #SEAblings라는 해시태그 아래 연대로 이어졌다. 이후 #CancelKorea 등과 함께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까지 나타났다(자세한 전개는 한류나우 74호 ZOOM3 참조).


 

 
이러한 소비는 공연 관람이나 음반 구매에 그치지 않는다. SNS를 통한 콘텐츠 공유, 팬 커뮤니티 활동, 온라인 이벤트 참여 등으로 확장되며, 이 과정에서 필리핀 팬들은 한류 콘텐츠의 해외 확산에 실질적으로 기여해 왔다. 해외 팬덤은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반이자, 문화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저변이 넓고 능동적인 팬덤이기에, 이번 논란이 만들어낸 파장 역시 작지 않았다. 다만 높은 인기와 활발한 소비가 곧 높은 만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류가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을수록 팬들은 콘텐츠 자체보다 산업의 운영 방식과 팬을 대하는 태도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특히 스스로 한류의 성장에 기여해 왔다고 인식하는 팬일수록 존중과 공정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SEAblings가 단기간에 여러 국가로 확산된 배경 역시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필리핀 청년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는, 필리핀 팬들이 한류를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선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바리키트(Bariquit) 외(2025)는 필리핀 청년들이 한류를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19~22세 필리핀 청년 10명은 케이팝과 K-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문화적 이해와 공감 능력을 키웠다고 응답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적극적인 소비는 다소 줄어들더라도 한류를 통해 형성된 문화적 경험과 사회적 관계는 지속된다고 인식했다. 이는 필리핀 팬들이 콘텐츠뿐 아니라 한류를 둘러싼 공동체와 문화적 경험 자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SEAblings는 단순한 소비자 불만이 아니라, 한류를 오랫동안 함께 만들어 온 팬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기여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있는지 묻기 시작한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좋아하지만 피곤하다"―필리핀 팬덤이 보내는 신호

앞서 살펴본 팬들의 태도 변화는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 구체적인 수치로도 확인된다.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응답자의 38.4%는 한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10대(41.6%), 20대(41.5%), 30대(41.6%) 등 한류의 핵심 소비층에서 부정적 인식에 대한 공감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6). 한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세대가 동시에 산업을 가장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이 부정적 인식에 팬들이 공감하는 이유다. 필리핀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이유는 '한류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다(17.6%)'였다. 두 번째 이유로는 '문화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13.4%)'가 뒤를 이었다. 이는 최근 동남아시아 한류 팬덤 사이에서 제기돼 온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동남아시아 팬들이 케이팝 앨범과 굿즈, 콘서트 티켓의 소비 주체로만 여겨질 뿐 문화적 존재감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지적과, 한국 사회에 여전히 피부색에 따른 위계적 시선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팬덤 내부에서 공유돼 왔다. #SEAblings 연대 역시 이런 누적된 문제의식이 표출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제 한류 팬들은 콘텐츠의 질만이 아니라 해외 팬과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까지 한류 산업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물론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가 #SEAblings 자체를 조사한 것은 아니므로 이 결과를 사건의 직접적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팬들이 이미 상업화와 문화적 존중을 중요한 이슈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은, #SEAblings가 돌발적 사건이라기보다 기존에 축적된 문제의식이 특정 계기를 통해 가시화된 사례임을 뒷받침한다.

불만은 산업의 운영 방식만을 향하지 않는다. 팬덤 문화 자체도 변화가 필요한 지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음악의 재이용 의향은 다른 문화콘텐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음악 이용을 중단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팬덤 문화'가 제시되었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6). 케이팝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기보다, 팬덤을 둘러싼 소비 방식과 문화가 일부 이용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필리핀 팬들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번역하고, 스트리밍과 온라인 투표를 조직하며, 공연과 팬미팅을 홍보하는 등 한류의 해외 확산에 적극 기여해 왔다. 그러나 팬덤의 규모가 커질수록 소비를 둘러싼 경쟁도 심화됐다. 음반 구매량과 굿즈 소비, 스트리밍 인증 등이 팬덤 활동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일부 팬들은 피로감과 부담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한류를 가장 오래 소비한 팬일수록 오히려 팬덤 문화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업성에 대한 불만이든 팬덤 문화에 대한 피로감이든, 그 바탕에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앞서 살펴본 바리키트 외(2025)의 연구가 보여주듯, 필리핀 팬들에게 한류는 소비하고 끝나는 콘텐츠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공동체가 축적된 문화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이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 경우, 그 반응은 단순한 불만 제기를 넘어 집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필리핀 팬덤이 보내는 신호는 한류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류를 가장 오래 소비하고 지지해 온 팬들이, 산업의 성장 방식과 팬덤 문화 전반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책임과 상호 존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3. 팬덤은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적 파트너다

#SEAblings가 남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일부 팬들의 일시적인 불만이 아니라, 한류 팬덤과 한국 문화산업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류는 우수한 콘텐츠를 제작하면 해외 팬들이 이를 소비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였다. 그러나 오늘날 해외 팬들은 콘텐츠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과 팬 미팅에 참여하고,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공유하며, 새로운 소비자를 유입시키는 데 기여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화했다. 동시에 산업의 운영 방식과 팬을 대하는 태도를 평가하고, 필요할 경우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주체로도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류의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류 콘텐츠 수출이 화장품과 식품, 관광 등 연관산업의 수출 확대와 국가 브랜드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김윤지·염정완, 2026).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해외 팬덤이 이러한 선순환 구조의 핵심 기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팬덤과의 신뢰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문화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자산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의 한류 전략도 일부 보완될 필요가 있다. 첫째, 해외 팬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문화 파트너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공연과 팬 미팅, 온라인 플랫폼 운영 과정에서 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차별이나 불공정 논란이 발생했을 때는 신속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동일한 시장으로 접근하기보다 국가별 문화적 특성과 팬덤의 경험을 고려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필리핀은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동시에 문화적 존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콘텐츠의 현지화뿐 아니라 소통 방식의 현지화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필리핀 한류 팬덤의 역사는 연대의 역사였다. 지난 20여 년 동안 팬들은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한류의 확산을 함께 이끌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팬들은 더 이상 콘텐츠의 수용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중받고 있는지, 산업이 얼마나 공정하고 책임 있게 운영되는지를 함께 평가하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SEAblings는 이러한 변화가 집단적으로 표출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번 사례는 한류의 위기를 보여준다기보다, 한류가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드러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앞으로 한류의 지속가능성은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해외 팬들과 신뢰를 축적하고 상호 존중에 기반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달려 있다. 결국 한류의 다음 20년은 얼마나 많은 팬을 확보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팬과 신뢰를 유지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 참고문헌
김윤지·염정완 (2026). 「한류산업 수출의 경제적 효과」. KOCCA FOCUS 제214호.
김형준 (2026. 3. 27.). #SEAbling이 던진 경고. 《아주경제》.
김형준 (2026. 7. 9.). 동남아 팬덤과 한류의 새로운 과제. 《아주경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6).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 분석편(아시아·태평양).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6).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 요약편.

Barbariquit, D. J., Anchor, I., Sanchez, R., Overgraze, H., Peregrinate, D., Medal, P., & Lasagna, A. (2025). Hallyu and the Social Behavior of Filipino Young Adults. CMU Journal of Science,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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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소민, 김정현
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9월 23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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