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의 발견
아카이브의 문턱을 낮추는 개인기록자들
아카이브센터
게시일 2022.07.19  | 최종수정일 2022.07.27

각자의 데이터로만 저장되어 있던 기록이 서로 연결점을 갖게 되면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키비스트의 발견>은 여러 아카이브에서 공개하는 기록과 콘텐츠를 살펴보면서 발견한 연결점을
새로운 맥락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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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3년 사이 큰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그중에 뚜렷한 변화는 온라인 공간이 엄청 분주해졌다는 겁니다. 어디에서든 직장·학교·취미생활이 가능한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얼떨떨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온라인 세상에서 주로 활동하는 디지털 노마드족이 늘고 있다고 하죠.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5차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는 요즘, 개인이 독립된 하나의 기관이나 단체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풍경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존 가치를 지닌 개인 기록이 풍부해지면서 컴퓨터 하드웨어의 백업 공간을 벗어나 아카이브라는 기록저장소를 활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최근 오픈한 두 개의 아카이브를 통해 개인은 어떻게 기록화 작업을 해나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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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팝콘입니다” 팝콘 아카이브


팝콘 아카이브는 사진작가인 기록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 공간으로, 사진 언어로써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작업> 카테고리에는 그동안 진행했던 시각 예술 작품 시리즈가 담겨 있는데 그중에 <월컴투마이홈>이라는 시리즈는 기록자가 부암동을 배경으로 찍은 자신의 모습을 그래픽 합성하여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기록자에게 ‘제2의 고향이자 도심 속 무릉도원’인 부암동의 기억을 담기 위한 것으로, 기록자는 이 작품들로 가상전시를 열고 그 안의 작품을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으로,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으로 변환했다고 합니다.
 
[가상전시] 웰컴투마이홈 아카이브에서 보기

팝콘 아카이브의 <인생사진>과 <작품 및 프로젝트 촬영>은 기록자가 타인에게 의뢰받은 작업들을 모아놓은 공간으로, 각각 대문에 붙여놓은 글이 흥미롭습니다. 
 
<인생사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질문을 하고 그 대답으로 
사진을 찍고 함께 이야기를 만듭니다. 
Example question 
"내가 좋아하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작품 및 프로젝트 촬영>
작품과 프로젝트를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에 기반한 시선을 담아 작품을 촬영합니다. 
사진 작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런 안내 문구가 붙은 이유를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기록자는 인물이든 작품이든 프로젝트든 그 주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이 잘 어울리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눈 후에 자신이 ‘이해한 시선’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연출된 ‘피사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당신의 세계’를 담으려 하는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진 작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공간이 자주 바뀌기도 하며, 한두 컷이 아닌 연속 컷으로 구성하여 뚜렷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제가 사진을 찍습니다. 앞과 뒤의 연결을 고려한 사진들입니다. 물 흐르듯이 감상해주세요~”라는 당부의 글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팝콘 아카이브는 사진 작품을 보관하는 용도와 더불어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블로그와 포트폴리오 기능을 겸한 복합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듯합니다.
 


가족사 또는 가족 연대기: 다섯숟가락 아카이브

 
이 공간은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오래된 3권의 사진첩을 디지털 세계로 옮기면서 시작된 가족사 아카이브입니다. 기록자는 1950~1970년대에 생산된 빛바랜 사진첩에서 꽃다운 청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백일을 맞은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친척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소중한 순간이 포착된 인화지를 조심스레 꺼내어 한 장 한 장 스캔을 뜨는 것까지는 순탄했으나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정보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애를 먹었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유을수, 이수자 부부의 결혼식 사진 아카이브에서 보기

위의 사진은 1958년 외조부모님의 혼례식 사진으로 “이수자는 이때 병풍을 치지 않고 사진을 찍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유정화의 동아대학교 재학 시절 교정에서 촬영한 사진 아카이브에서 보기

이 사진은 1984년 모친의 대학시절 사진으로 “세일러복을 입고 있어 모두가 고등학생 시절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알고 보니 대학생 새내기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당사자(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사실로, 기록 등록을 위한 필수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기록자가 가족과 친척을 상대로 탐문 과정을 거쳤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희미해진 옛 기억들이 소환되었을 테고, 새로운 사실 혹은 진실이 밝혀지거나 기억의 오류가 발견되었겠지요.
 
오프더레코드 - 그 시절의 디스크립션 중 일부 스크린샷 아카이브에서 보기

위 내용은 겉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해석하여 들려주는 <오프더레코드> 공간에 소개된 글의 일부로, 할아버지의 메모가 적힌 몇 장의 사진을 모아 분석한 것입니다. 가뜩이나 기록 정보가 귀한 마당에 “앞줄에서 왼쪽편 4째 자리에 있는 자가 정환두 군이다. 잊지 말 것”이라 적힌 메모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잊지 말 것”이라는 구절에서 아우를 아끼는 형의 정이 느껴집니다.     
 
정명준의 중학교 시절 서울 수학여행 기념 세종대왕 동상 앞 사진 아카이브에서 보기

그런가 하면 사진 속 배경을 통해 세월의 변화를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 기억의 오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기록자의 삼촌이 중학생 시절에 서울로 수학여행을 와서 찍은 사진인데, 사진 뒷면에 “1974년 10. 12 경복궁에서”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 당시 경복궁 안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입니다. 과연 그렇단 말인가 싶어 국가기록원의 기록을 검색해보니 사진 속 세종대왕 동상은 1968년 덕수궁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지방에서 올라온 소년이 경복궁과 덕수궁을 혼동하여 메모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만약 당시 경복궁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었다고 삼촌이 믿고 있다면 이참에 기록자는 기억의 오류를 정정해줄 수 있겠습니다.
 

아카이브의 문턱을 낮추는 개인 기록자들


팝콘 아카이브는 예술 활동이 현대 테크놀로지와 얼마나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동시에 작품을 보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다섯숟가락 아카이브는 옛날 사진이라는 오래된 실물기록이 디지털 세계로 이동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3대에 걸친 부계와 모계의 가족사진을 기록화하고 난 후 시간순으로 배열한다면 훌륭한 가족 연대기가 완성될 듯합니다. 장롱 속 깊이 보관되어 있을 앨범에 갇힌 추억들을 디지털 공간으로 이주시킬 생각을 지닌 많은 이들에게 좋은 활용사례가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기록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일에 관한 것이든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든 가족에 관한 것이든 차곡차곡 쌓인 ‘나’의 기록들은 그 자체로 충실한 자서전이나 연구서가 되거나,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찍는 팝콘 바로가기
https://www.archivecenter.net/popcon
 
다섯숟가락 아카이브 바로가기
https://www.archivecenter.net/thefivespo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