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중간계 : 발 아래 피어나는 꽃밭

2024.10. !재미동 갤러리 금의환향프로젝트 그 첫 번째. 김리아 작가가 돌아왔다!
!재미동 갤러리 금의환향프로젝트는, 올 해로 14년을 맞이한 오!재미동 갤러리에서 공모전을 탈피해 진행하는 기획전시로, 그 동안 공모의 형식을 통해 채워왔던 오!재미동 갤러리 작가들이 다시 돌아와 그들의 조금 더 성숙해진 작품을 펼칠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김리아 작가가 장식해 주었습니다.
 
 
중간계 : 발 아래 피어나는 꽃밭
 
전시작가. 김리아
설치. 김리아, 남지우, 이진휘
. 이진휘
 
전시장 가운데를 가르는 막을 설치한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다. 그의 작업에는 늘 장소가 있고, 사람이 있고, 이례성이 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태어나고 마감까지 완결의 형태로 갤러리로 옮겨지는 회화 작품과는 달리, 설치와 가변 작품을 주로 해왔던 작가의 이력은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해 있다. 흔히 볼 수 없었던 형식으로 무언가를 구현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그는 이번 오!재미동 갤러리에서 그 이례성을 마음껏 펼쳤다.
 
!재미동에서의 전시가 예정되었을 때, 작가는 오!재미동의 사람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오!재미동에서 일하는 사람들 셋을 인터뷰했고, 이 인터뷰를 지나면서 작업은 조금 더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재미동 갤러리는 충무로역 지하 1층에 위치 한다. 시각예술에 해박한 사람들이 차려입고 찾는 갤러리가 아닌, 일상에 스며든 공간으로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상주 인원이 없고, 양문을 열고 있다. 이런 요건 때문에 사람들은 더 몰입했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무아지경에 이른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춤을 추기도 했고, 어떤 이는 드러누워서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고 해(전시장에 누워있어서 달려가 물었다) 운영진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만큼 작품을 감상하고, 그런 후에는 쓰고 싶은 여과되지 않은 말들을 방명록에 토해냈다. 그 방명록들은 쌓여 오!재미동 갤러리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지리적 특성으로 외국인들도 많아 다양한 언어와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지하철 역 한 중간, 바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에서 만난 의외의 예술작품에 사람들은 기쁘고 즐겁고 자신만의 기억을 꺼내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전시를 즐겼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야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이 곳은 플랫폼 보다는 높게 그러나 지상보다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재미동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제안받고 작가는 편안히서천꽃밭을 떠올렸다. 서천꽃밭과 오!재미동의 닮은 점들을 술술 이야기했다. 서천꽃밭은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데, 구전되고 모양을 달리하여 여러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서천꽃밭 이야기는 지난 2월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고, 영화 <신과함께>에도 등장하는 등 생경한 것 같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다.
 
서천꽃밭을 작가는 거대한 비닐막 위에 구현하여 오!재미동 갤러리에 펼쳤다. 오색꽃밭이 전시장 한 가운데를 가른다. 너머를 짐작해 볼 수는 있지만, 실제 광경을 만나기 위해서는 수고롭게도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이 수고로움은 예상보다 가벼운 것이었는지, 며칠 관찰한 결과 전시장을 찾은 사람은 반대편에서도 이 전시를 관람했으며 갤러리에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머물렀다. 오색꽃밭은 거대한 비닐에 빨강, 하양, 노랑, 파랑, 까만꽃으로 구성 되어있다. 양면이 투명한 비닐의 특성상 양쪽 면에 모두 물감을 올리는 작업의 반복 끝에 완성되었다. 전시장에서는 강렬한 빛을 투과하는 것으로 구현했는데 그 때문에 멀리에서 보는 것보다 가까이에 갔을 때 그 꽃밭의 질감과 색이 더 풍성하게 드러난다.
 
!재미동 갤러리를 찾는 여느 사람들처럼, 작가는 본인의 작업방식도 고고하거나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늘 사람을 향해 있는 그녀의 시각은 온기를 품고 있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온기와 그들에게 시각적으로 더 좋은 것은 선사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례성을 만나 다채롭게 펼쳐진다.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들이 수 없이 지나치는 복도로 빛이 향한다. <버드나무를 만나다> 작품의 구현은 화이트 큐브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있다. 화면의 대부분을 가리고 동그랗고 작은 화면안에 나무를 키우는 이 영상작업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지는 않으면서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전시장 바닥에서 커다란 빔프로젝터를 어슷하게 기울여 표현한 발걸음들 <지상도 지하도 아닌>작품에서는 지하에서는 생경한 창문의 느낌을 선사한다. 이 발걸음은 이 곳의 위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버드나무는 서천꽃밭의 이승쪽에서의 마중물이며 시작점이다. 필름을 활용해 인위적으로 자르지 않고 불로 하나하나 태우는 방법으로 구현한 이 버드나무는 실물과 영상과 그림자로 전시에서 선보인다. 다양한 종류의 자재들이 다루어지는 방산시장에서 버려지는 필름을 받아와 사용했다. 소재 하나도 자연을 헤치지 않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꽃밭의 반대편 거대한 비닐막에는 물방울이 가득하다. 물은 레진으로 표현했는데 물방울 쪽에서 바라보는 꽃밭은 저 쪽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설화에 따르면 물을 길어날라 꽃들이 자라는데, 15세 미만에 죽은 아이들이 이 역할을 하다 환생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린 죽음으로 너무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조금은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향한 작가의 면모가 다시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번에 사운드 작업도 선보인다. [넘어가다]837초에 이르는 사운드로, 현악기와 타악기의 소리가 섞이고 충무로역의 현장음이 담긴다. 마치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는 것 같다가 발걸음은 이내 도심에서 흙으로 옮겨간다. 발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약간의 몽환음 뒤에 어느새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와 마주하게 된다. 몽환음과 자연의 소리가 지속되다 사람 발걸음이 어딘가로 향하며 마무리되는 이 사운드 작업은, 채집한 소리와 만들어 낸 소리가 혼재하는 네 개의 레이어를 가지고 있다. !재미동과 서천꽃밭에 서 있는 경험을 차례로 선사한다. 전시장 모니터에서 선명한 색감으로 선보이고 있는 <발 아래 피어나는> 작품에 조금 더 풍부한 서사를 가지고 소리로써 다가오는 또 하나의 감각을 활용한 작품이다.
 
!재미동 갤러리에 서천꽃밭을 펼쳐 놓으면서 작가는 힘들어 했고, 즐거워 했고, 또 후련해 했다. 전시는 1123일까지 또 한 번 이례적으로 긴 기간 동안 진행된다. 설치전시의 특성상 다음번에 같은 작품을 선보이더라도 이번 전시와 같을 수는 없다. 그 전무후무한 순간을 즐기시기 바란다.
 

상세정보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