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과거에서 온 편지>

ChatGPT에게 늦봄을 물었더니 (2023년 11월호)

1979년 11월 16일에 쓴 문익환의 편지

따뜻한 아들이자 배려 깊은 남편, 
강한 정신력과 사회적 책임감 갖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하는 사람

 
1979년 10월 26일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안양교소도에 있던 늦봄은 “조국의 민주적인 자주통일의 참 기반을 구축해주길 호소한다”는 이유로 단식 중이었습니다. 11월의 편지는 그로부터 얼마 뒤에 쓴 11월 16일 자 늦봄의 편지입니다.

 
 
 ◇문익환, 1979년 11월 16일. 한 달에 한 번만 쓸 수 있었던 편지 
 
 

“모두 건투할 걸 믿으면서 오늘은 이만”

▲편지 본문

당신에게
40일 기다린 보람으로 편지를 받는 기쁨, 그 편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 나의 기쁨이 겹쳐 나는 어제 정말 기뻤어요. 종이 한 장의 무게가 그토록 클 줄이야. 오늘 아침 히브리어로 시편 126편을 읽었더니 첫 절에 “꿈인가, 생시인가”라고 번역된 구절이 가슴에 왈칵 밀려왔소. 전문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우리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가 되는 거죠. 그저께 겨울옷이 나왔고 내 문밖 복도에는 연탄난로가 열을 내고 있어서 오랜만에 사과 차도 끓여 먹는다오. 어제는 밤에 난로를 놓았는데, 날이 풀려서 피지를 않고 월말에 온다는 추위 때나 피우게 될는지? 침낭이 좋아서 영하 11도의 추위에도 내복을 다 벗고 가벼운 몸으로 잘 수 있어서 얼마나 개운하고 좋은지 몰라요. 지난밤도 열두 시에 자리에 들었는데, 단숨에 아침 기상나팔이 울릴 때까지 잘 수 있었소.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로 옆에서 사과 차가 열심히 끓고 있어요. 세타는 당신이 언젠가 짜주었던 꽈배기 세타 (녹색)가 있었지요? 그거면 꼭 좋을 것 같구만요. 그것이 없다면 그보다 좀 여유 있게 짜주면 좋겠소. 요새는 점심은 여기서 울면 등 중국요리를 사 먹는다오. 아주 맛있게 해 주어서 점심때를 더 기다리게 되는군요. 오늘은 간짜장이라고 해서 그만두었지만. 간짜장은 뜨거운 국물이 없거든요. 건강은 단식으로 줄었던 몸이 이젠 완전 원상회복이 되었소. 어제도 60분 잠시도 쉬지 않고 뛰었어도 조금도 힘든 줄 모를 정도였으니까. 12월 접견 때는 아주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리라고 자신하고 있어요.

어머님의 신경통은 아침 저녁으로 더운물 찜질을 해드리고 주무시기 전에 뜨거운 목욕을 하실 수 있으면 좋을 거요. 약보, 식보에 계속 마음 쓰도록 하시오. 잣죽도 마련해 드리도록 하구려. 당신 붓글씨가 많이 필력이 생긴 것 같아서 좋군요. 구슬같이 예쁜 글씨보다는 힘 있는 글씨가 좋다고 생각해요. 나의 「흰 뫼」 같은 시를 많이 쓰노라면 훨씬 씩씩한 글씨를 쓰게 되지 않을는지? 기완 님에게는 「나의 별들아」라는 소품이 퍽 좋은가 보지요? 「흰 뫼」를 더 좋아할 줄 알았더니만. 꼭 한 가지 충고. 내리긋는 획이 아직도 휘어 있어서, 힘이 빠지는 것 같군요. 내리긋는 획을 줄을 따라 곧게 내리긋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면, 많이 달라지리라고 생각되는군요.

요사이 나의 심정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대통령의 비극이 민족의 비극이요 서러움으로 점점 더 아프게 살을 파고드는군요. 이 나라 초창기 대통령들의 거듭되는 비극은 이 민족의 비극적인 운명의 단적인 표현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국토 분단의 비극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도 정상적인 정치적 발전을 할 수 있었을 테고, 정치인들도 떳떳하고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속히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인 민족 분열, 국토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고마운 건 ‘국토’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이 모든 비극을 소리 없이 받아들여 속으로 삭이고, 그것을 거름으로 해서 봄만 되면 영락없이 새싹을 돋쳐 주고 꽃을 피워 주는 국토의 고마움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의 몸은 곧 국토라는 것, 국토의 정수의 정수라는 것을 나는 요가를 하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이라오. 국토는 결코 절망하는 일이 없어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금 다시금 꽃을 피우고. 우리 집에는 바우를 태어나게 하고 키워 주면서 모든 비극이 기쁨으로, 한숨이 찬양으로 바뀔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이 국토의 비극 속에 약속된 행복, 한숨 속에서 들려오는 찬양, 절망 속에서 빛나는 희망,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라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나는 특히 6·25의 비극을 생각하고 있어요. 6·25는 우리 민족사의 최대, 최악의 비극이었죠. 그때 죽어 간 수많은 겨레의 죽음을 우리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게 할 수는 없는 일이오. 나는 요새 그 아우성이 나의 살 속에서 들려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군요. 그 죽음들을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의 몸에서, 우리 개인들의 몸에서, 국토라는 이 겨레의 몸에서, 그것은 곧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이룩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빛나고 값있는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지요.(중략) 
 

어머님
 누워 버리실 정도로 긴장이 풀리셨다니 어머니답지 않으시군요. 앞으로 우리가 민족으로서 부딪치며 풀어나가야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그 일들을 위해서 어머님의 씩씩한 격려와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십니까? 아버님, 어머님이 씩씩하게, 꿋꿋하게 서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짐작이나 하세요? 어머님이 기운을 놓으시면 그만큼 우리는 김이 빠진다는 것을 아세요. 어머니, 약보, 식보도 사양 마시고 많이 많이 잡수시어 우리와 같이 좋은 자리, 기쁜 자리에 가셔야 합니다. 그 자리에 어머님이 안 계시다면 우리는 그 자리가 하나도 좋지 않고 기쁘지 않을 거예요. 만주에서부터 일당백으로 살아오시던 그 기개를 되찾으세요.

요새 제가 드리는 ‘주기도’를 적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하느님의 마음에 쏟아부어 형체도 없이 녹여서 제 생에 쏟아부었더니 이런 기도가 되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울고 웃으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주시는 하느님! 당신의 크신 마음, 우리의 작은 가슴을 울려 우렁찬 찬양으로 천지를 진동하게 해주소서. 사랑으로 이 세상 정복하시고, 올바른 뜻 세우시어 평화의 새 나라 세워 주소서. 우리 모두 먹을 걱정, 입을 걱정에서 풀려나 사람 된 기쁨에 젖어 서로 아끼고 떠받들며 오늘도 내일도 값있게 살게 해주소서. 서로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으면서,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전우가 되어 다 같이 역사의 새 출발점에 나서는 기쁨, 당신의 한없는 너그러우심으로 우리 가슴에 안겨 주소서. 이것을 믿을 수 없어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면 눈물 글썽이는 당신의 모습 쳐다보게 해주소서. 우리를 불신의 구덩이에 처넣으려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건져내 주소서. 할렐루야, 당신의 영광, 정의와 사랑으로, 자유와 평화로 길이 빛나리이다. 아멘.’

나머지 식구들에게 일일이 문안을 전할 지면이 없어졌군. 그러나 모두 건투할 걸 믿으면서 오늘은 이만 (🔗편지 전문 보기)


 

“작성자는 편지를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ChatGPT와 함께 살펴본 편지의 면모들
이번 편지를 읽으면서 OpenAI의 ChatGPT-4를 활용해 봤습니다. 텍스트를 분석해내는 기능도 추가되었다고 하길래 늦봄 편지를 어떻게 읽어내는지 궁금하기도 해서요. 이를 위해 1979년 11월 16일 자 편지의 텍스트(5,681자, 1,445단어)를 ChatGPT에게 읽게 하고 여러 질문들을 던져보았는데 함께 읽으니 더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중요한 주제나 토픽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감정과 일상, 신앙, 국토와 민족, 6.25전쟁, 통일, 기도, 가족과 친지가 주요 토픽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날 편지의 내용이 편지를 주고받는 기쁨, 겨울 추위와 감옥 생활의 근황들, 어머님에 대한 걱정, 대통령의 비극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흘러가는데 무리 없이 읽어낼 뿐 아니라 이렇게 덧붙여 줍니다.
 
“작성자는 편지를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와 겨울의 일상,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과 차를 끓이는 일상적인 모습이 그려집니다(ChatGPT).”
 
 
이번엔 10월 26일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 사건에 관한 늦봄의 생각을 읽어봐달라고 했습니다. 
 
  • 민족의 비극: 대통령의 죽음을 민족의 비극으로 묘사하며, 그것이 서러움으로 점점 더 깊게 파고들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대통령의 죽음은 민족의 비극적 운명의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국토 분단의 비극: 그는 국토 분단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정치적 발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더 풍요로운 생애를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극의 근원인 민족 분열과 국토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조를 둡니다.
 
  • 6·25의 비극: 늦봄은 6·25 전쟁을 민족사의 최대, 최악의 비극으로 본다고 언급하며, 그 시기의 희생자들의 죽음을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통일과 문화 창조의 중요성을 부각시킵니다(ChatGPT).

편지에 서술된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꽤 잘하는것 같고 “그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과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분석도 덧붙여 줍니다.  

 

ChatGPT가 분석한 늦봄의 감정은?

▲늦봄에 대한 ChatGPT의 이해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정도니 편지 읽기에 도움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편지에 등장하는 단어를 분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긍정적, 부정적인 단어의 빈도, 문장구조나 감정상태를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질문 끝에 ChatGPT는 늦봄을 어떤 사람으로 이해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작성자는 어떤 사람일까” 라고 물었더니 “따뜻한 아들, 배려 깊은 남편, 강인한 정신력과 사회적인 책임감을 지닌 사람, 다양한 이슈에 관해 성찰적이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그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득, 봄길이 “당신은 어려운 일도 잘 견디시고 늘 좋다고만 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거를 조금 머저리라고 생각한답니다(1977.4.9)”이라는 편지 구절이 떠오릅니다. ChatGPT는 어떨까요? 편지 작성자의 속마음도 알아차릴까요? 그래서 편지 속에서 감옥 생활에 대한 작성자의 어려움이 느껴지는지 물어보았더니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작성자는 감옥 생활의 어려움이나 고난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마음 속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 가족에 대한 그리움: 편지에서 그는 자주 가족, 특히 아내 및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그가 겪고 있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 정치적 및 사회적 상황에 대한 우려: 그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며, 그의 사상과 신념을 표현합니다. 이는 그가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 긍정적인 태도: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ChatGPT).
 
 

ChatGPT가 써준 박용길의 답장엔…

▲늦봄 편지를 읽는 다양한 방법 
ChatGPT와 질문을 나누며 읽다 보니 늦봄의 편지는 역사, 문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교육자료 및 연구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편지가 “고비의 시기에 있던 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심리학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인간의 반응과 감정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겠다(ChatGPT)”는 대목에는 큰 공감도 됩니다. 마지막 질문은 이랬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아내가 되어 답장을 써주겠니”

『월간 문익환』의 독자 여러분은 ChatGPT가 쓴 이 답장이 마음에 드시나요?
  
사랑하는 (*문익환),
당신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모릅니다. 먼 곳에서도 당신의 건강과 안부를 항상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어요. 당신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강인한 의지에 감동받았습니다. 당신이 안양교도소에서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되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어요.
세타에 대한 당신의 부탁, 잘 알았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보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의 신경통 걱정도 감사합니다. 당신의 조언대로 꾸준히 관리하며,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힘든 시기에도 당신의 사랑과 기억이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항상 기도하며, 당신의 건강과 안전을 빕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 (*박용길)가.
 
<글: 아키비스트 지노 & ChatGPT>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와 함께 걷고 있는 아키비스트. 늦봄과 봄길의 기록을 아끼고 그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관련 기록]
박용길, 당신께, 1979. 11. 10
박용길, 당신께, 1979. 12. 2 (11월의 편지를 받고 쓴 박용길의 실제 답장)

[키워드]
두번째 수감
안양교도소 
10.26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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