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이야기

성서번역: 시를 번역한다는 것

문익환 목사는 일반적으로 민주화운동가, 통일운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그는 히브리어에 능통한 구약성서학자이자 훌륭한 문장가였습니다. 때문에 성서를 번역하는 책임을 맡은 일은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성서번역가로서의 문익환 목사를 소개할텐데요, 실제 시편 번역 원고 사료들을 확인해 보며 문장이 어떻게 다듬어졌는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공동번역 성서>의 구약성서를 번역한지 6년이 지나면서 번역을 할 때는 ‘문학적인 면’과 ‘세계관’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먼저 두 언어의 ‘말’ 자체를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히브리어의 톱니는 굵고 한국어의 톱니는 잘아서 … 굵은 톱니를 분해해서 한국말의 톱니처럼 잘게 다시 구성해야 한다.(p. 689) … 우리 말의 잘다란 톱니에 맞추어 자연스러운 우리 말로 재구성할 때에 비로소 성서의 신앙이 우리의(한국인의) 사고에 물리고 … 진정한 토착화는 그때에야 이룩될 것이다.(p. 702)

― 문익환(1974)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히브리어는 간결하고, 한국어는 세밀하다는 언어적 특징을 크고 작은 톱니바퀴로 비유한 것이 아주 와닿습니다. 함께 구약성서를 번역한 선종완 신부는 “히브리어는 몽둥이말이고 한국어는 비단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히브리어를 한국어의 톱니에 맞게 잘게 쪼갠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의 「아가」 2장 1절 비교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굵은 톱니 그대로 번역

 잘게 쪼갠 톱니 번역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나는 사론에 핀 수선에 지나지 않는걸요. 산골짜기에 핀 나리꽃에 지나지 않는걸요.

 

― 문익환(1974, p. 688) 

 

한편 구약성서의 문체는 40%가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구약의 약 40%를 차지하는 시를 번역할 때는 실상 우리 말로 시를 새로 쓰는 작업이 되지 않을 수도 없다. 재생(re-production)이 아니라, 재창조(re-creation)일 밖에 없다는 말이다.

― 문익환(1974, p. 688) 

자랑과 겸양, 아예 정반대의 뜻처럼 보이지 않나요? 이처럼 한국어에 맞게 말 자체를 잘게 쪼개어 번역하면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뜻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세심한 번역의 결과로 탄생한 천주교와 개신교 합작 <공동번역 성서>(1977)는 한국인 독자들이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번역된 것이 특징입니다.   

 
 

<공동번역 성서>가 출간됐을 때 문익환 목사는 그 단행본을 교도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옥중편지를 보니 시편 23편의 경우, 번역한 문장이 문장위원의 손을 거치며 모두 수정이 되었나 봅니다. 

 

현주, 성우 수고 많았고 문장 면에서 좋아진 점이 많은 것 같아서 두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 주어야 하겠소. 하지만 적지 않게 한계를 넘은 데가 보여서 재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느껴지오. 시편 23편 같은 것은 몽당 손이 되었더군. 이런 이야기는 현주에게나 하시오.

- 옥중편지 1977. 4. 16. ‘신구약 공동번역 성경이 출판되다’ 중에서

비록 출간은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번역 원고 사료가 남아있기 때문에 문익환 목사가 한국인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문장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출간본과 대조하여 어떻게 수정이 되었는지 확인하면서 사료를 이모저모 살펴보는 재미를 느껴보세요.   

  

번역 원고(미완성 최종본) 표지와 시편 23편 본문

  

번역 미완성 최종본 

 공동번역 성서 출간본

 시편 23편

1 야훼, 나의 목자시니, 

아쉬운 것 하나 없네.

2 시냇가 쉴 곳으로 인도해 주시어

푸른 풀밭에서 딩굴면

3 지쳤던 몸에 생기가 솟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엉뚱한 길로 인도하셨으리요?

4 어둡고 무서운 골짜기를 지날 적에도

임께서 옆을 떠나지 않으시고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해 주시니

무엇이 덮칠까 걱정도 되지 않았네. (후략)

 시편 23편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2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후략)

 

 

문익환 목사의 번역은 행을 구분한 것과 야훼를 ‘임’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띕니다. 

어느 문장이 마음을 울리는지는 독자마다 다르겠지요? 😊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에서는 번역 원고의 일부를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사료 보기]

<공동번역 성서> 출간본은 대한성서공회(개신교)가톨릭성경(천주교)에서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아카이브 내 관련 콘텐츠 

• (사료이야기) 성경번역가의 고민...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 (사료설명서) 공동번역 성서 

 

 

● 참고 자료

[논문]

문익환(1974),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성서 번역의 문제들」, 『신학사상』7  

곽노순(2019), 「히브리말 … 몽둥이 말이고 한국말은 비단 말 - 공동번역 구약 번역자 곽노순(1938~) 구술」, 『성경원문연구』45호 

 

[기사]

‘"문익환을 빼앗긴 것이 아깝다" 이런 말 나온 이유’ (오마이뉴스, 2018. 3. 27.)

 

※ 이 콘텐츠는 한국외대 일반대학원 정보·기록학과, 「기록관리와 업무분석」수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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