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수난, 민족의 수난, 예수의 수난

바우 할멈에게

 

3월 들어서면서 날이 확 풀려서 겨울이 다 간 줄 알고 마음을 놓았다가 별안간 들이닥친 추위에 당황했었지만, 그것도 며칠을 넘기고 나니 이제 정말 새봄이 온 것 같구려. 어젯밤에는 앉아서 책을 읽는데 발이 너무 화끈거려서 두꺼운 털양말을 벗어야 했어요.

어제 새벽에는 아버지, 어머니 결혼 70주년 기념행사를 위한 합창곡 작사를 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는데, 오후에 당신의 2월 28일 편지를 받아 보니, 당신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우리 할아버지는 우스운 분이래요”(바우) 하면 다 같이 “왜”라고 화답하고 “할아버지는 70년이나 한 여자만 사랑하신 걸요” 라고 또 바우가 대답하고, 끝에 가서는 바우가 “나도 할아버지처럼 일찍 장가갈래요. 나도 결혼 70년 축하를 받을래요”라는 말로 축하객들을 한껏 웃기는 노래지요.

요사이 나의 생활은 단조롭다면 그지없이 단조롭지만, 너무너무 풍성한 생활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요. 3월 8일 주일날 오후, 조용한 시간을 얻어 다시 붓을 들었어요. 15일경에 쓰려고 했었으나 어제 어머님의 쇠약한 모습을 뵙고 너무 마음이 쓰려서 이렇게 서둘러 붓을 들었다오. 이 편지를 받는 길로 슈퍼마켓에 가서 채소나 과일 생즙 내는 것을 사다가 생즙을 내서 어머님께 계속 대접하도록 하시오. 씨앗 상회에 가서 케일 씨도 사다 심고, 컴프리는 마당에 나는 줄로 알고 있는데, 현미도 어머님 죽에 가루 내어 넣어 드리도록 하구요. 생즙보다 좋은 것이 없을 거요. 4월 접견 때는 어머님의 건강해지신 모습을 뵙고 싶으니까요. 다른 식구들도 생즙을 내서 먹는 것은 건강에 좋을 테니까요. 생즙으로 암까지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봄에 온 식구가 기생충 약도 쓰도록 하시오.

김용옥 박사가 타계했다는 소식은 정말 충격이었소. 그 펄펄하던 사람이.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병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언제나 건강에 만반의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건강은 결코 결코 부업이나 여가가 아니에요. 김 박사 부인에게 전화로 위로의 말을 전해 주시오. 너무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어머님을 만날 때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이 민족의 수난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해요. 어머님이 아기로서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서부터 겪어 오신 수난은 어머님 개인의 수난인 동시에 민족의 수난인 거죠.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간 이스라엘인들의 수난을 보면서 무명의 예언자 (그의 예언이 이사야 40~55장에 보존되어 있다고 해서 학자들은 그를 제2이사야라고 부르지요)가 읊은, 소위 「야훼의 종의 시」가 넷이 있지요. 찾아 읽어 보시오. 그는 자기 민족이 하느님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고난받는 ‘야훼의 종’이요 ‘만방의 빛’이라고 믿었지요.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숨도 크게 못 쉬는 약소민족 이스라엘이 ‘만방의 빛’이 될 사명을 띠었으며,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바로 그 사명을 지고 나가는 일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 민족의 수난에도 그런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런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깨달은 것이 우리는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미·소 냉전의 유산으로 국토가 분단되었고, 그 결과로 6·25의 비극을 겪게 되었다는 것, 동서의 긴장에서 오는 세계사의 고민이 아직도 한국에서는 미해결의 문제라는 점, 우리의 수난은 사실 세계적인 고민의 초점에 있다는 것, 우리의 수난을 푸는 것은 이 세계사의 고민을 푸는 일이라는 것, 우리의 수난에는 그런 세계사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이었소. 또 한편으로 우리는 풍요한 북반부와 가난한 남반부의 문제, 소위 남과 북 문제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고생하는 것이라는 것도. 우리는 지리적으로는 북반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남반부의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동과 서, 남과 북으로 줄다리기하는 세계사 자장의 한복판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 괴로움을 진지하게 겪어 세계사의 고민을, 시련을 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없을까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도 ‘만방의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적어도 계속되는 민족 수난 속에서 그런 사명을 찾고, 그 사명 앞에서 우리의 소아를 버리고 민족 대화해를 이룩할 수는 없을까요?

육군교도소에 있을 때 우리는 민족의 비극 앞에서 민족 대화해를 이룩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이젠 그것이 세계사의 고민을 푸는 사명으로 새 내용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을지요? 우리의 비극 속에서 사명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바벨론에서 활동한 무명의 예언자가 민족 수난 속에서 찾은 민족의 세계사적인 사명은 그 후 5백여 년이 지난 다음 예수가 다시 찾아 십자가로 세계를 향해서 횃불을 올렸죠.

그러면 예수는 자기의 고난으로 무엇을 어떻게 풀었는가요? 아,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수난의 의미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군요. 같이 수난에 휘말려 들어가서 같이 괴로워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대화해를 이룩하는 첩경은 같이 고생하며 같이 애를 태우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길밖에 없다는 점, 눈앞에 다가선 비극, 위기, 슬픔이 너무 커서 개인의 이해나 주장 같은 것이 검불처럼 바람에 날려 가게 되어야 한다는 점, 이것이 바로 진정 화해를 이룩하는 길이 아닐까요?

예수는 민족의 수난, 아니 인류의 수난을 몸으로 겪으면서 어떻게 대화해의 길을 열었던가요? 예수에게 있어서 그것은 ‘용서’였던 것 같구려. 억울하게 당하는 편에서 ‘용서’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주기도).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것은 로마인이었지요. 유대인으로서 로마인을 용서하다니 될 말인가요? 그야말로 주제넘은 과대망상이 아니었을까요? 형편없이 유약한 유대인으로서 막강한 로마를 무엇으로, 어떻게 용서한다는 말인가요? 그것은 힘에 대한 사랑의 승리였어요. 그것은 정신의 절대적인 자유라고 해도 되겠지요. 예수의 이런 자세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사랑과 자유를 가지고 원수의 아성 로마로 밀려 들어갔던 것이 아니겠소?

그렇기 때문에 용서란 원한을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에요. 그것은 악을 선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갚는 일이에요. 억압하는 자에게 자유의 화환을 안겨주는 일이구요. 그 정신은 3백 년 동안 로마의 카타콤(지하 무덤) 속의 질식할 것 같은 생을 견뎌 내는 힘이기도 했구요. 십자가의 아픔으로 원수를 용서한 예수의 마음이, 그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3백 년 동안 땅속에서 불타다가 대로마를 하느님의 품 안에서 하나가 되게 화해를 시켰던 거죠. 그런데 교계 지도자들은 그렇게 얻은 자유를 교권과 바꿔 버림으로써 중세기를 다시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거예요.

두 번 감옥살이에서 나는 민주화가 곧 민족통일이라는 등식을 깨달았다면, 이번 세 번째 감옥살이에서는 민주화도, 민족통일도 민족 화해라는 결론을 얻었소. 그리고 이 화해는 민족의 비극 앞에서 가슴을 치며 다 같이 슬퍼하는 일에서 이룩된다는 것, 우리의 비극이 너무 슬퍼서 우리의 이해나 주의 주장은 헌신짝처럼 아낌없이 버릴 수 있게 되는 데서 이룩된다는 것, 그 일의 깊은 뜻과 내용이 「야훼의 종의 노래」와 예수의 십자가에서 훤히 드러나는 것을 보고 깨달은 셈이지요.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 화해인데, 나는 그것을 민족사의 매듭들을 ‘용서’로 푸는 과제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소. 우리 민족사 속에 미해결로 남아 있는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매듭 풀기’, 이것이 바로 민족 대화해의 내용이 아니겠소? 우리가 이것을 염원하여 두 손 모아 빌면서 모든 일에 화해의 자세로 임해야 할 거라고 나는 굳게 믿게 되었소.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 또 여기서 나를 얼마나 더 깊이 당신의 마음속으로 인도해 주실는지 열린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지요.

 

당신의 짝

 

어머님께

 

어머님이 몸과 마음으로 약해지신 것같이 보였습니다. 지금 어머님의 마음이 꺾이시면, 지금까지의 어머님의 믿음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이 됩니다. 저는 지금도 어머님의 믿음을 믿습니다. 어머님도 사람이기에 겪으시는 시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련을 이기셔야 합니다. 주기도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를 “이 시련을 견디어 내게 하옵소서”라고 고쳐서 기도해 보세요. 그것은 제가 금요일마다 하루 종일 드리는 기도입니다. 물론 서울에서 공주까지 오시느라고 몹시 지치셨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 보지만, 어제의 어머님은 너무 약해 보였습니다. 힘을 내세요. 어머님이 약해지시면 제 마음도 약해집니다.

3월은 의근이와 보라가 태어난 달이군요. 의근이와 보라에게 큰 축복이 있기를! 의근이는 막힌 길이 곧 열려서 미국에 가서 성심이를 만나게 되기를! 보라는 엄마보다도 더 예쁘게 피어나기를! 그리고 포동포동 건강하기를!

 

성수, 영금의 편지, 사진 반가웠다. 살림 공부 바빠서 그런지 영금의 얼굴이 많이 빠진 것 같아 가슴이 찌릿했지만, 행복한 가운데서 빠진 살이라면, 성수의 사랑이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으리라 믿는다. 빨리 공부를 마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토론토에 있는 친지들, 영주네, 문규네, 김(재준) 목사님, 이(상철) 목사님, 전동림 장로님네 등께 문안 전해다오. 문규가 가을이면 대학생이 되겠구나. 소질이 맞는 과를 택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큰 인물이 되기를! 

뉴욕 식구들에게, 거기도 가을이면 대학생이 하나 나오겠군. 창근이 만세. 영미,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물론 잘 그린다니 기쁘다. 태근의 청춘사업은? 영혜도 이제 완전히 적응되었겠지. 그동안 보내 준 책들 정말 고마웠어.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제일 자신이 없던 이스라엘 역사의 후반기(예레미야 ~제3이사야~포로 후기) 책들이 (그것도 고도의 전문성을 띤) 와서 많은 공부가 되었고, 그 시대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조명이 퍽 중요한 것을 알게 되어 좋았어. ‘야훼의 종’에 관한 연구를 읽었으면. 오랜만에 전문 분야의 전문적인 책을 읽었더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김이곤 교수가 박사과정에 들어가 있을 텐데, 축하해 주어요. 지금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는지? 

우리를 위해서 수고하는 모든 분들에게 안부를. Faye (제수 문혜림)가 아마 제일 한국에 오고 싶을 텐데. 어머님, 오빠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 전해주어요. 그리고 나는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것도. 행복하기를 빌어요. 문 박사, Union에서 한다는 강의는 어떤 것인지? 그동안의 사상적인 발전 같은 거 좀 소식으로 들을 수는 없을까? 건투를 빌면서.

호근, 은숙

객지에서 미지의 하루하루를 내딛는 생활에 발전이 있기를 빈다. 은숙의 발성이 이제쯤은 많이 자리 잡혀가겠지. 변모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구나. 부디 장수하는 성악가로서 기틀을 잡기를 빈다. 저번에도 쓴 것 같지만, 조급하게 생각 말고 차분히 오래오래 뻗어 나갈 생각을 하고, 목소리와 음악성을 개발하기를. 호근이는 지금은 실전 마당에서 최대한 경험을 쌓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노라면 나름의 이론이 서겠지. 그때는 학문적인 기질이 무언가 창조적인 작업을 하도록 하게 될 것이다. 메링과 같이 독일에서 같이 일해 볼 기회가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언제쯤이 될 것 같으냐? 객지에서 부디 몸조심하고, 건강한 가운데 잘 지내다가 돌아와서 이 민족에게 예술로 보람찬 공헌을 하게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아무래도 너희들의 예술이 바우에게 이르러서, 크게 크게 빛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구나. 무엇이나 몇 대 가야 대성하는 것이니까. 나는 요새 시보다는 성서 연구에 더 전념하고 있다. 건강, 건강, 건강.

 

김용옥 박사 (감리교 신학대학장), 김이곤 교수 (한신대 제자)

두 번 감옥살이에서 민주화가 곧 민족통일이라는 등식을 깨달았다면, 이번 셋째 번 감옥 살이에서는 민주화도, 민족통일도 민족 화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