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0년을 맞은 부모님

아버님, 어머님께

 

(4월6일) 오늘 접견 오실 것 같지만 오늘은 워낙 뜻깊은 날이어서 아버님, 어머님께 축하의 글월 올리고 싶어서 서둘러 붓을 들었습니다. 결혼 70주년 축하를 받으시는 부모를 모시고 있다는 일이 어디 세상에 있는 일입니까? 저만큼 큰 복을 받은 사람이 세계 50억 인구 중에 또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버님, 어머님도 축하를 받으셔야 하지만 저희 자손들이 더 축하를 받을 날입니다. 이날 더없이 큰 잔치를 베풀려고 벼르고 별렀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축하란 떡이 있어서 축하가 아니고 마음이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만한 것을 이해 못 하실 아버님, 어머님이 아니신 거구요.

비록 모여서 잔치는 못 하지만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날을 기억하고 마음으로 찬양하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어찌 적다 하겠습니까? 축하연은 지금 천상천하에서 벌어지고 있고 축하의 노래는 지금 하늘과 땅을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못난 아들은 결코 욕스런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아버님, 어머님께 욕을 돌리고 있거나 바우, 문칠, 보라에게 부끄러운 할아버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님, 어머님의 한 점 부끄러울 것 없는 티 없이 맑은 영광스러운 생을 이어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후손들에게 다시 이어주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은 저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돈으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엄청난 유산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맑고 뜨거운 마음이요, 만인이 우러러볼 수 있는 높은 ‘삶’이었습니다. 저는 이 유산을 손상을 입히지 않고 후손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무언가 자그마한 것이라도 보태어 전하고 싶습니다. 호근이 세대는 또 호근의 세대대로, 바우 세대는 또 바우 세대대로 조금씩 더 보태어 후손에게 전하는 거죠. 이렇게 우리는 역사를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며칠 전에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집 뒤뜰에 온 식구가 나가서 도랑을 치며 일을 하고 있는데, 위에서 수정같이 맑은 물이 넘실넘실 흘러내려 왔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어머님이 위에 올라가서 새 물줄기를 끌어들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을 위해서 하느님이 미리 주신 꿈이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맑은 샘 줄기 용 솟아」를 힘차게 불러 주세요. 맑은 물줄기를 우리의 민족사에 끌어들이는 일이 역사의 과제인 거죠. 역사를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으로, 우리의 생 속으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로 경험하게 해 주신 아버님, 어머님께 다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역사란 우리 자신을 맑은 물줄기로 경험, 확인하는 일이요, 이어받은 과제를 이룩해 가는 일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역사란 결코 지난날의 일들을 찾아내는 지적인 작업에 멎는 것이 아니죠. 역사란 지난날에서 우리 자신을 확인하고 거기서 이루려다가 채 못 이룬 일을 이어 그 과제를 이룩해 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 역사를 책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살아 숨 쉬는 역사이신 아버님, 어머님과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숨 쉬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 수 있는 행운을 타고났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버님께 만주 한인 역사를 쓰셔야 한다고 권해 드릴 때는 그냥 역사가 묻혀 버리고 말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선대에서 물려받은 과제는 실학이나 동학으로 실패한 민족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실학과 동학으로 실패한 민족사 속에 기독교 신앙을 끌어들여서 민족의 구원이라는 과제를 이룩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아버님, 어머님의 수난사는 이 과제를 안고 몸부림쳐 온 역사였습니다. 아버님이 앞으로 완성하셔야 하는 만주 한인 역사란 바로 그것을 후손에게 과제로 남기는 일입니다. 그 일은 아직도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이 남기셔야 하는 역사는 민족의 구원사를 고구려의 옛 강토인 만주로까지 확대하는 일입니다. 김부식이 떼어 버린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다시 계승하는 일입니다. 거기에 기독교 신앙을 접붙여서 민족사를 세계적인 차원으로 더 넓히는 일입니다.

민족사를 어떻게 만주로까지 확대하느냐,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만주를 다시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영토로서는 회복할 수 없지만, 우리의 정신적·문화적인 역사의 뿌리는 압록강, 두만강으로 만주까지 뻗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사가 만주를 중심으로 다시 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님이 쓰실 역사는 새 동양사의 한 장이 되는 거죠. 만주가 우리 민족사의 터전으로서 동양사에서 자리를 확보한다는 일이 절대 필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민족사는 만주에 남아 있는 우리 동족들에게서 다시 꽃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뿌리를 다시 확인해 주고 한국 민족사를 다시 거기서 계승해야 하는 과제를 자각 시켜 주기 위해서도 만주의 한인사는 다시 씌여야 합니다. 그리고 조국 분단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통일된 민족의 입김이 압록강, 두만강 건너에 미쳐야 합니다. 아버님이 쓰셔야 할 역사는 그런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는 기독교 신앙으로 세계를 향해서 문을 여는 역사라는 또 하나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4월8일) 어제까지 접견 오지 않으셔서 적잖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오후에 용길의 편지를 받고 안심했습니다. 그날을 그대로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친지들이 무언가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신의 자식들만이 아버님, 어머님의 자식이 아니니까요.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내 부모요 형제요 자매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대로 저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형제자매가 많은 거죠. 친동기 이상의 동기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버님, 어머님도 감회가 깊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71주년도, 72주년도, 80주년도 있으니까, 언젠가 한 번 해외에 나가 있는 식구들까지 다 불러들여 큰 잔치를 벌이지요. 성경에 ‘여호와의 날’이 있지 않습니까? 그날이 ‘아버님, 어머님의 날’이 되겠지요. 그저 기대하십시다.

이제 6일에 중단했던 것을 계속해 보겠습니다. 구한국 시대와 분단 극복의 과제를 안은 우리 세대의 사이를 잇는 파란만장한 긴 역사가 아버지, 어머니의 입김에 서려 있고 깊은 주름살에 어려 있고 힘찬 흐름으로 우리들 속에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역사의 뜻은 기어코 분단을 극복하고 만주 넓은 땅에까지 뿌리를 뻗고 말 것이요, 기독교 신앙을 접붙여서 세계를 가슴에 안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문제의식에서 자주적으로 받아들여 우리의 문제를 풀고 우리의 문화를 더 찬란하게 꽃피우려고 우리 민족이 스스로 우리의 역사에 접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점에 있어서 신교도 구교도 똑같다고 하겠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접목의 비유는 본래 잘못된 비유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욱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북간도 명동 땅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김약연 목사님이나 우리 할아버님은 한국을 그리스도에게 접붙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한국에 접붙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뿌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국인 것입니다. 이렇게 뿌리를 확인한다는 것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띠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국 사람으로서 예수와 함께 새 세계에 눈을 뜨고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버님이 77년 3·1절 기념 워싱턴 행사 때 자결하려고 칼을 준비해 가지고 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버님은 목사이기 전에, 기독교인이기 전에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독교 윤리에서 자살은 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을 거기서 건진 것은 기독교 신앙이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믿으면서 자결하는 것은 영웅심이라는 것을 깨달으셨던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우리를 한국인으로 자각하고, 한국의 역사에 뿌리를 박고 한국의 문제를 부둥켜안고 진지하게 몸부림치면서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한국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일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아버님, 어머님은 그런 몸가짐으로 역사를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우리에게 넘겨주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한국의 역사에 접목한다고 생각하고 보면, 신앙생활을 교회의 울타리 안에 국한하고 천당 갈 준비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기독교 신앙으로 세계를 향해서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란 교회 바깥의 세계와 한국 바깥의 세계를 다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하느님의 마음으로 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거죠. 아버님, 어머님이 저희에게 남기시는 유산이 바로 이런 믿음이요 삶이었으니 이걸 어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님은 지금 그것을, 한평생 몸으로 살아오신 것을 써서 글로 남기셔야 합니다. 그것은 아버님의 역사에 멎는 것이 아니라 이 겨레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버님, 어머님 결혼 70주년을 맞아 감사해야 하는 사실은 아버님, 어머님은 지금까지 건강하실 뿐만 아니라 정신과 마음이 여전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하신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굳어지지 않고 새 세계를 개척하며 시대와 함께 전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남 같으면 추한 노욕이나 부리는 망령기가 들고도 남을 나이인데 말입니다. 끝까지 정체하지 않으시는 마음가짐이 아버님, 어머님을 지금까지 젊게 끌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더없이 귀중한 유산이군요. 이 귀중한 유산이 더욱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기를 빌 뿐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결혼 70주년을 맞으며 이 못난 아들은 온 후손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며 큰절을 올립니다.

 

봄길에게

 

나 없이 아버님, 어머님의 날을 보내느라고 서글펐겠지만, 당신도 나 못지않게 과분한 축복을 받은 줄이나 아시오. 사실 당신의 친정 아버님, 어머님도 시부모님에 결코 지지 않는 훌륭한 어른들이셨지요. 이제 그들 역사의 물줄기가 우리에게서 합류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군요. 이건 정말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군요. 기도해야지요. 그 두 물줄기가 우리에게서 사막을 흐르는 강처럼 땅속으로 잦아들어 버리지 않고 더 큰 흐름이 되게 하는 일, 이것을 창조적인 만남이라고 해야겠지요. 한국의 역사와 기독교 역사의 만남도 그런 것이 아니겠어요?

내가 당신을 만나 더 깊어지고, 당신이 나를 만나 더 아름답게 꽃피는 우리의 결혼 70년을 기대해 볼까요? 이건 과욕이고 결혼 50년이나 기대해 보지요. 이런 것도 성서는 불신앙이라고 부르는 거니까, 그냥 담담히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면서 하느님의 이끄시는 손길과 축복을 빌어야지요. 오직 오직 그것뿐이지요. 아버님, 어머님도 결혼 70주년을 내다보시며 사신 것이 아니라 그냥 하루하루를 진실하게 최선을 다해 사신 거죠. 그 겸허한 믿음의 자세가 오늘을 있게 한 거 아니겠소?

4월은 수난절과 부활절이 있는 달이군요. 내가 작사한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의 2절을 이렇게 고쳐서 부르시오. ‘창날에 찔려 터진 저 가슴 저 심장, 붉은 피 다 쏫았네. 내 사랑 라보니, 이 믿음 가슴 안고 살아야 할 건가, 하늘을 저주하고 죽어야 할 건가?’ ‘말달라 마리아의 부활’은 그대로 부르구요. 

지금 막 예쁜 타올과 60신이 들어와서 반가웠어요. 오늘 모처럼 마련된 특별접견이 높은 소리로 끝나서 유감이군요. 그렇게라도 손을 잡아 볼 수 있어 아버님, 어머님을 안아 볼 수 있게 처리해 주신 교도소 당국에 감사해야지요. 혈압도 계속해서 약을 먹고 있으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거구요. 나도 이젠 철이 들어서 무지한 만용을 삼가기로 했으니까. 의무과장이 게브라인 (영양제 수입약)을 먹으라고 해서 주문했어요. 서울서 당신이 넣어주었던 거죠. 그걸 다 먹고 국산 영양제를 사서 지금 거의 다 먹어가거든요. 바우가 날 보고 싶다지만, 내가 절 보고 싶은 마음, 성경이야기나 노래을 듣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클까? 믿음이란 모든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마술이라고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밖에서도 그렇게 살도록 하세요. 그러다가 많은 플러스를 가지고 만나면 얼마나 더 좋겠소? 편지 담당 교무과 직원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가 내가 편지 쓰는 걸 보고 눈이 아찔한가 보아요. 미안해서 이만큼 쓰도록 하지요. 문안은 일일이 이름을 쓰지 않고 ‘모두 모두에게’ 하느님의 넘치는 기쁨을 빌겠소. 나는 요새 하느님의 진심에서 오는 하느님의 슬픔을 꽤 아프게 경험하고 있어요. 그 하느님의 슬픔이 우리에겐 말할 수 없는 위로로써 기쁨이 되는 것이지만. 광주 사건 사형수들이 사형을 면했다는 소식만으로 나는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서 부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정부의 처사를 마음에서 우러나 환영하는 바이요. 그 가족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소. 뒷뜨락의 개나리가 곱게 피었소.

 

1981. 4. 당신의 마음, 늦봄 씀

 

부모님의 결혼 70주년을 기뻐하며 부모님이 살아온 역사를 계승하여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 아버지에게 만주의 한인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것을 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