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늦봄이 봄길에게

 

(4월 2일) 금년도 벌써 1/4이 깨졌군요. 4월, 엘리어트는 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요? 한국 사람도 아니면서.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선 4월은 수난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부활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 신교도들은 그동안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종려 주일에서 껑충 뛰어 부활절로 건너가면서 수난절을 건성으로 넘기는 습성이 생긴 것이 아닐까요? 신교도들의 안이한 신앙의 자세가 이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닐는지?

부활 - 무슨 말라비틀어진 잠꼬대냐고 코웃음 치는, 이 땅의 음지 인생들이 정말 다시 살아나기까지 (겔 37장) 우리는 부활절일랑 접어놓고 오직 수난절을 연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한빛교회 수난 주간 행사에 한몫 끼지 못해서 울고 싶군요. 성령의 뜨거운 한숨 소리가 세 강사에게서 뿜어 나오기를 빌겠소.

한국 신교의 안이한 자세는 금년 봄 『신학 연구』에서 더할 나위 없이 드러난 것 같군요. 『신학 연구』가 한국 교회의 선두를 달리는 잡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걸 절실히 느끼게 하는 거죠. 마지막 논문만 못 읽고 다 정독한 셈인데, 편집·기획도 좋았고 모든 글이 하나같이 착실한 것들이어서 많은 것을 깨우침 받을 수 있었소. 그러나 한국 신학계가 살갗 찢어지는 아픔으로 탈피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적잖이 유감이었소. 70년대를 점검하고 80년대를 향해서 발돋움하는 논문들과 대담 어디에도 민족통일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어요. 80년대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풀어야 할 민족의 절대적인 과제를 외면한 신학은 정말 잠꼬대가 될 가능성이 많은 게 아니겠소?

무시각적인 풍류의 신학이나 생각하는 유동식 박사에게서야 그걸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역사신학자 주재용 박사,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에게서마저 민족통일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면 이건 심각해지는 거죠. 여자신학자 박순경 박사가 고군분투(孤軍奮鬪)로군요. 유 박사나 주 박사가 박 박사의 신학적인 노력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조차 않았다는 것은 한심스럽기까지 하군요. 물론 박 박사의 신학적인 노작은 이제 시작된 데 지나지 않지만, 그 의도와 방향은 이미 뚜렷한데도. 주 박사는 「3·1 민주구국선언」에 대해 언급하기는 하는데, 그걸 읽어 보기라도 했는지 의심스럽군요.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세속적인 표현으로서 그 초점이 민족통일에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말이오. 「민중과 성령」이라는 글을 기고한 서광선 박사의 관심도 교회의 울타리에 갇혀 있구요.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해서 몰아붙이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성령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사야 11, 61장, 에스겔 37장 등이 진지하게 문제가 되어야 할 것 같군요.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현장에 앞장서 뛰어들어야 할 사람들이 기독교 윤리학자들이 아니겠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실천의 현장에 거의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거든요. 그것이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었는데, 이번에 고재식 박사의 논문을 읽고 그것이 풀렸어요. 현장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데 기독교적인 행동의 지침을 찾아 책장을 뒤지는 데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군요. 고 박사까지 규범 윤리에 제동이 걸려 있었으니까요. 그뿐 아니라 행동의 결과까지 정당성을 인정받지 않고는 행동할 수 없었으니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었겠소?

사람이 하는 학문으로 가설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학문이란 모름지기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해 봐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는 것인데, 그 가설이 실험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이를 버리고 새 가설을 찾아 이를 다시 실험해 보는 것이 학문의 길인데, 실천해 보지 않고 결과의 정당성 여부를 어떻게 미리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요. 한 달란트 받은 게으른 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죠.

 

(4월 3일) 어제 온종일 비가 오고 오늘 활짝 개어서 정말 기분이 좋군요. 금년도 농사 세월은 잘 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어제 쓴 걸 다시 읽어 보았더니 좀 지나치게 신랄한 것 같지만, 이제 써버린 거 그대로 두는 수밖에. 너무 독선에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현재 나의 솔직한 심정이니까. 비판이 잘못되었으면 용서를 비는 수밖에 없지요.

얻어들은 풍월이지만 루터가 했다는 “대담하게 죄를 지어라. 그러나 그보다 더 대담하게 믿어라” 이 말은 정말 신앙의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돼요. 우리가 하는 일이란 아무리 신앙, 양심의 소리를 따라 한 일이라 하더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기 십상이요 잘못과 허물과 실수투성이일테니까, 하느님의 사죄의 은총을 믿지 않고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거죠. 잘못과 허물과 실수투성이인 우리의 행동, 아니 우리의 죄까지도 당신의 뜻을 이루도록 들어 써 주신다는 것을 믿고 행동하는 길밖에. 그 믿음의 길밖에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하겠소?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보시기에 나무랄 데 없는 결과를 보장받지 않고는 행동할 수 없다면, 우리는 깨끗이 보따리를 싸는 게 옳은 거죠. 예수님도 3년에 걸친 공생애(公生涯)를 살기 전에 그 열 배인 30년을 처절한 생의 현장에서 살면서 그 예리한 눈으로 보고 뜨거운 마음으로 느끼고 맑은 마음으로 생각하며 더듬어야 했는데. 그러고도 잘 몰라서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면서 고투하셔야 했는데. 그러고도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계속 하느님과 아니, 현실과 씨름해야 했는데.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면서 운명하셔야 했는데, 우리가 결과의 정당성까지 인정받아야 행동을 하겠다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구체적인 명령은 언제나 바로 현장에서 들려오는데 말이오.

기성의 행동 규범을 하느님께 받아 그것으로 살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정작 행동해야 할 현장에 맞닥뜨렸을 때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그것이 없었던 사마리아인은 불한당 만난 사람이 쓰러져 있는 데 내려가서 그를 흔들어 보고 상처를 더듬어 보다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된 거죠. 불한당 만난 사람의 신음에서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들었던 거죠. 그때 불한당 만난 사람과 사마리아인과 하느님의 한숨이 같이 찬양이 되고 절망이 같이 희망이 되고 아픔이 같이 나아서 슬픔과 같이 기쁨이 되는 거죠. 같이 구원받는 거죠. 마태복음 25장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소?

현실이란 보편타당한 진리를 실천하는 마당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정말 쓸어버려야 할 낡은 생각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지난 편지에 하느님의 슬픔을 밝혀내는 주석의 본문은 오직 여기 우리의 현장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소. 성서를 주석할 때도 성서는 그 당시 현장의 주석으로 읽어야 해요. 안 박사의 마가복음 해석이 바로 그런 거죠. 성서는 우리가 주석해야 할 본문이 아니라 참고해야 할 주석인 거죠. 안 박사의 마가복음 해석이 아무리 철저하다고 해도 거기서 밝혀지는 예수상이 그대로 우리 행동의 규범이 될 수는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 뒤로 인류는 너무나 많은 경험을 거쳐 왔기 때문이죠. 오늘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은 2천 년 전의 예수가 아니라, 오늘 여기서 우리와 같이 신음하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오늘의 예수에게서 와야 하는 거죠. 안 박사의 마가복음 해석도 오늘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같이 신음하시는 예수의 마음을 밝히는, 오직 조명일 뿐이죠.

 타종교와 대화하는 신학을 모색하는 변선환 박사의 노력에 우리는 경의를 표하고 격려를 보내야 하지만, 그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사변에 잠기기 전에, 구체적으로 한국의 구원을 앞에 놓고 타종교인들과 같이 몸을 내대고 살면서 대화의 길을 터야 하는 거죠.   한국문화를 창조적으로 만나는 데서 기독교 신학의 길을 찾으려는 김경재 교수의 노력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한국의 구원이 무엇이냐는 것은 각자 보는 각도가 다를 수도 있겠죠. 또 그 길이 각기 다름으로써 한국의 구원을 여러 각도에서 모색한다는 것은 바람직하기도 하구요.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민족통일이 없는 민족의 구원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거죠. 민족통일이 곧 민족의 구원은 아니지만, 민족통일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민족의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거죠. 유동식 박사의 풍류의 신학도 민족의 구원에만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누가 웃겠소? 안 박사나 서 목사의 민중의 신학도 물론…

 

사랑하는 어머님께

 

오늘은 식목일이자 어머님 생신이군요. 저 대신 많은 믿음의 아들딸들이 친자녀들보다 더 성심껏 오늘을 축복으로 채워 주리라고 믿습니다. 내년 오늘까지 365일 하루하루, 무엇이나 저처럼 맛있게 맛있게 잡수시면서 건강하게, 뜻있고 보람있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을 모든 불행한 사람들에게 봄바람처럼 날리면서 사시기를 빌고 또 빌겠습니다. 살아있는 민족 수난사이신 어머님이 건강하셔야 수난 속을 걸어가는 이 민족도 힘이 뻗어 오른다고 생각하세요. 민족통일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무도 못 막습니다. 그날을 어머님은 보셔야 해요. 그러려면 어머님, 건강하셔야 해요. 건강하시려면 잘 씹으실 수 있어야 하구요. 잘 씹으시려면 새 틀니를 해 넣으셔야 해요. 4월 접견 때는 새 틀니를 해 넣으셨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어머님 생신 기념 삼아 여기에 목련 한 그루, 단풍 한 그루 심게 해달라고 소장에게 청원했는데 허락이 나겠지요. 목련 밑에는 아래와 같은 푯말을 세우고 싶습니다. 허락만 된다면.

 

이 어두움

목련꽃 웃음소리로

이 땅 밝히네

눈물겨운 희망으로

 

그리고 단풍나무 밑에는 이런 푯말을 세우고요.

 

고와라

불타는 가슴

당신의 뜨거운 마음으로

이 강산 물들이네

 

아, 정말 용정에서 3·1 만세 때 어머님 가슴을 비켜 간 총알에 맞아 쓰러진 사람이 열일곱 살 난 명동 학교 나팔수 김병린이라는 학생이었다구요? 3·1절을 생각하며 쓴 시가 하나 있는데 그걸 그에게 바쳐 그의 별을 망각의 나락에서 건져내어 민족사에 뚜렷이 살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제가 그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군요. 오늘 하루 즐거운 한 해의 출발이 되기를 빌면서 못난 아들은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아버님께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앞에서 저는 당분간 부활절을 접어두자는 말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군요. 저도 부지중에 부활을 십자가에서 떼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인류의 원수인 죽음을 당신의 죽음으로 폭파한 사건이라고 할 때, 그것이 곧 부활인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부활이란 죽음의 폭파이거든요. 죽음을 폭파하는 죽음은 예수의 전 생명의 완전 투입이요, 완전 연소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도 더 처절하게 슬퍼하시고 더 완벽하게 절망하셨기 때문에 당신 속에 생명으로 지니셨던 온갖 것이 송두리째 던져 부서지고 타버린 것입니다. 그런 죽음이었기 때문에 인류의 대적인 죽음과 함께 모든 슬픔, 어두움, 절망을 폭파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예수의 죽음은 생의 좌절이나 패배가 아니라 생의 완성이요, 결정이요, 극치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이란 죽음으로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 버리는 것이죠. 제가 「죽음을 살자」는 시를 지을 때 죽음을 산다는 것이 무언지 좀 막연했었는데, 이제 그것이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산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도 죽음과 부활을 갈라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소극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도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지요. 여기서 예수가 자기희생을 말하고 있었다면, 십자가 이후의 예수는 그것이 아니라고 당신의 말씀을 정정하실 것 같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거나 희생하는 죽음도 값있는 죽음이요, 대속하는 효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 53장), 예수의 죽음은 그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은 자기들의 생에서 이 예수의 죽음의 폭파를 경험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부활절이 없는 기독교는 없는 거군요. 할렐루야. 불사조가 잿더미를 털고 일어나 날아오른다는 신화가 바로 완전히 새 희망으로 폭발하는 절망, 완전히 새 생명으로 타오르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4월16일) 비록 손은 못 잡아 보았지만, 접견장에서 만나 뵐 수 있었던 아버님의 씩씩한 모습, 정말 좋았습니다. 돌아와서 생각하니 어머님 이를 해 넣으셨는지 묻는 것을 잊은 걸 알고 아차 했습니다. 아무 말이 없는 걸 보아서 아직도 어머님이 고집을 부리시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아버님이 잘 설득하셔서 곧 이를 해 넣으시도록 해 주십시오. 어머님이 이를 안 해 넣으시면, 제가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맛있게 씹어 먹으면서 죄스러워질 것입니다. 어머님은 아무 맛도 모르고 잡수시는데, 저만 맛있게 먹는다면, 그것이 불효지 무엇이 불효겠습니까? 그날 접견하고 들어와서 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나랏일들이 꼬인 것이 하나하나 풀려야 할 텐데, 도리어 더 꼬여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기도할 뿐입니다. 접견하던 날 아침에 요가를 하다가 무엇을 깨쳤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날이 화요일이라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기도하는 날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義’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義도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요, 평화는 곧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기쁨이라는 것이죠. 하느님의 슬픔이 한없이 아프고 깊은 까닭은 義와 함께 평화가 깨지고 사람들의 기쁨이 박살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평화의 기쁨을 만인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우리가 기도하며 살아가야 할 일인 것,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생을 송두리째 불살라 죽는 일인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오랜만에 저의 기도의 주제로 ‘기쁨’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부활 신앙이 저에게서 새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저에게 일어난 변화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저녁에 이스라엘이 독립하던 1947-48년의 생생한 기록의 끝부분을 읽다가 평화의 

기쁨이 무엇이냐는 것을 가슴이 찡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아랍 전쟁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벌어졌는데, 그건 그야말로 혈투요, 사투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엔의 중재와 호소로 휴전이 성립됩니다. 7월17일입니다. 휴전이 선포되자 예루살렘에 남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쌍방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서 서로 얼싸안고 춤추는 광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총지휘관은 야속하기조차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을 것이 없어 허덕이던 사람들이, 우는소리만 하던 사람들이 숨겨두었던 쵸코렛을 꺼내오고 커피를 끓여서 아랍 시민에게 대접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울분 같은 것을 느꼈던 겁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적대관계란 이삭과 이스마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2500년에 걸친 앙숙인데, 그리고 서로 닥치는 대로 마구 찔러 죽이는 싸움을 하던 두 민족인데도 백성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거기 비하면 우리의 남북분단이야 40년도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남쪽에서 우리끼리야 무엇을 못 풀겠습니까? 이스라엘이나 아랍의 정치인들은 이 백성들의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데 오늘 중동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더 쓸 자리가 없어서 붓을 놓겠습니다.  아들 드림

 

1982.4.

 

부활절을 맞이하며 한국 교계에서 민족통일 문제가 거론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부활절을 맞는 소회등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