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통일, 둘도 통일, 셋도 통일

봄길에게

 

(8월5일) 오래 가물다가 기다리던 비가 흡족히 와서 금년도 풍년이 예상된다니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역시 하늘이 해주어야. 이런 위기를 넘기고 나면 또 농촌을 외면하고 전시 효과가 뚜렷한 일에만 마음을 쓰는 세상이 될까 두렵군요. 얼마 전에 무슨 책을 읽다가 다른 수입은 재생산도 가능하고 다시 수출해서 빚을 메우기도 하지만, 식량은 먹어 치우고 마는 것이어서 몽땅 빚이 되기 때문에 수입 품목 중에서도 식량 수입만은 가급적 덜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읽고는 식량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문제냐는 것을 알게 되었군요.

농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야 중소기업이 살고,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기업도 사는 건데, 우리는 그걸 거꾸로 하는 것 같군요. 피라미드를 꼭대기부터 세우는 식인 거죠. 식량 증산을 강조한다는 것도 농약을 마구 쏟아부어서 땅을 죽이고,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식으로, 수량만을 생각하고 질을 무시하는 식이 되기도 하구요.

요새 간염 문제가 심각해 가는가 보죠? 외국에서는 0.1%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0% 선에 간염 환자의 수가 육박하고 있다니, 이건 다른 나라의 100배인 셈인데, 이렇게 갑자기 간염 환자가 많아졌다는 것은 식량 문제에 대한 중대한 적신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죠.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농약도 그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요? 나처럼 모두 1일 1식은 못하더라도 1일 2식을 하게 되면 식량 문제가 많이 해결되련만. 난 1일 1식이 이렇게 쉽게 정착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소. 어쩌면 이번 감옥살이의 최대의 수확인지도 모르겠군요. 두 끼를 먹고 소화하는 시간을 얻을 뿐 아니라, 잠자는 시간이 이미 4-5시간으로 줄었기 때문에, 하루 8-10시간을 버는 셈이니까, 그만큼 수명을 연장하는 거죠. 인구 문제가 세계적으로 꽤나 심각해져 가는데,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그리 좋아할 일이 아닌지는 모르지만, 무병하게 뜻있는 일을 그만큼 더 하다가 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소? 더운데 물마저 귀한 가운데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소? 곁에 있었으면 땀이라도 닦아주는 건데. 

한얼이, 한터의 씩씩한 모습, 내 조카라 생각하니 자랑스럽군요. (나)종남이는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쓴 양 말한다지만, 사진을 보니까, 우리 조카며느리가 조카에겐 과분한 것 같군요. 복덩어리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신철 아빠 (박용길의 형부인 강춘희)의 투병이 한 발씩 나가고 있다는 말 무엇보다 기쁘군요. 요새 나는 찬송가 가사를 하나 얻어 날마다 중얼거리고 있어요. 436장 곡이 한국적이면서도 깊이 종교적인 은은함을 지니고 있어서 그 곡에 가사를 붙이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마침내… 제목은 『주기도송. 4절은 이렇소. “웃음소리 울려 퍼져라. 핏발선 눈에 이슬 맺히며 얼싸안은 가슴들아! 한 불길로 타오르거라.”  

난 얼마 전 유관우 형을 생각하다가 이런 시구를 얻었군요. “자네는 바위가 우룽우룽 웃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그 소리를 들으며 자라난 풀꽃들이 몰려서서 슬피 슬피 우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풀뿌리들을 적시며 흐르는 냇물 위에 부서져 내리는 바위의 웃음소리를 주워 모으며 하늘이 흐느끼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김정준 박사 같은 분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잘 가셨다는 느낌이 드는데, 유 형은 날이 갈수록 너무 생생하게 살아서 앞에 나타나는군요.

유 형은 뜻으로 살아간 사람이 아니라 마음으로 살아간 사람이었지요. 커다란 바위 같은 마음에 무언가 뚜렷한 뜻을 돋쳐 내려고 정을 들고, 그러나 감히 정을 못 대고 그냥 서 있다는 느낌이군요. 그 바위에는 정을 대서는 안 되죠. 하느님은 그를 뜻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마음으로 보내신 거거든요. 나는 지금도 그의 ‘우룽우룽’ 하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작은 풀꽃의 울음을 울고 있소. 그의 마음은 내 할머니의 마음과 같이 날이 갈수록 내 눈앞에서 커지고 있군요. 유 형은 학문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늘 부러운 눈초리였지요. 그러면서 자기가 할 일은 그 친구들을 밀어주는 일뿐이라고, 어쩌면 주위를 서성이면서 부러워하는 것밖에 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요. 뚜렷하고 큰 뜻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을 먼발치로 쳐다보면서,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말없이 빌면서 살아갔던 거죠. 나는 지금 그 마음이 그립고, 그렇게 소중할 수 없군요. 유 형과 나와의 관계는 언제나 그는 주고 나는 받는 사이였지요.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역전될 수 없듯이 그건 역전될 수 없었소. 나는 그의 사랑은 받아도 되었지요.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는 사이였지만.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존경마저 받고 있었소. 이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소. 그런데 그것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그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었다면, 우리는 하느님에게도 사랑뿐만 아니라 존경도 받는 걸까요? 그렇군요. 예수의 마음은 세리와 창녀들까지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느님의 딸, 아들로 존경하셨었군요. 존경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니까요. 이제야 전주에서 샛별이 들려주던 말, “모든 사람이 너보다 나으리”라는 말뜻이 다 풀리는군요. 그 말은 모든 사람을 존경하라는 말이군요. 언제나 용서하는 자리가 아니라 용서받는 자리에 서라는 말이군요. 오늘도 하느님은 이렇게 더없이 소중한 축복을 내려 주시는군요……. 이제 운동하러 나가야 하겠기에 이만.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 운동하고 들어와 포도와 참외를 먹고 유형의 이야기를 또 쓰고 싶어 붓을 들었소. 그는 언제나 자랑할 것이 남에게 있었는데, 그것이 늘 즐거웠던 것이지요. 나도 그에 비하면 자랑할 것이 조금 있는 셈인데, 그것 때문에 바늘귀를 빠져나갈 수 없는 낙타가 되는군요.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이 유 형 앞에서는 정말 거추장스러워지는군요. 회상이면 지워버릴 수도 있겠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을 보면, 그건 이미 나의 몸속에 깊이 스며들어있는, 인간성 그것에 뿌리를 내린 것이군요. 최소한 남에게 있는 자랑스러운 것을 기뻐할 수만이라도 있어야죠.

 

 

어머님

 

(8월6일) 내일이면 어머님을 뵈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고령에 이 못난 아들을 보려고 더위를 무릅쓰고 오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님은 언제나 저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저의 용기이기도 하구요. 제 손 뼘으로는 잴래야 잴 수 없는 어머님의 마음에 꿈 한 거리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7월 17일 새벽이었습니다. 웬 여인 둘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두 여인을 하나는 왼쪽 옆구리로, 하나는 오른쪽 옆구리로 침대에 눕히고, 오른손 왼손을 쥐여 주고 흰 천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장례식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른편에 누웠던 여인이 부스럭거리더니 일어나 앉으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왼편에 누웠던 여인도 눈을 뜨면서 어리둥절해하더니, 찬송을 모르는지, 그냥 손뼉을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신나는 꿈이었습니다. 이렇게 민족통일을 보여주는 꿈을 지난 2월에 꾸고 두 번째로 또 꾼 셈입니다.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면서 파라오가 같은 꿈을 두 번 꾼 것은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저도 민족통일 꿈을 두 번씩이나 꾸었으니까 통일은 반드시 올 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저와 같이 함경선을 타고 고향에 가서 옛 친지들을 만나 보실 수 있기를 빕니다. 어머님의 몸이나 제 몸이나 이 민족의 시련을 극복하고 통일에까지 이 민족을 끌고 가시는 하느님의 몸입니다. 어머님의 몸은 결코 어머님의 몸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몸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드러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날리는 하느님의 몸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 더욱 그럴 것입니다. 

 

(8월7일) 어머님의 날씬한 최소한도의 몸, 거기서 울려 나오는 젊은 목소리, 민족을 사랑하는 열기에 접할 수 있어서 저는 또 용기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있어서 여기 주기도송 1, 2, 4 절을 적습니다. 애창해 주세요.

 

망치 소리 울려 퍼져라. 평화의 왕국에 세우며, 

자랑스런 목수들아! 콧노래도 구성지거라. 

농악 소리 울려 퍼져라. 물꼬를 트고 갈아엎으며 

땀 흘리는 농군들아! 어깨춤도 신명 나거라.

찬양 소리 울려 퍼져라.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울먹이는 씨알들아! 열린 마음 바다같거라.

 

아버님

 

이 더위에 먼 길을 오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스러우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다 민족의 수난에 동참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나간다면 얼마나 많고 큰 것을 놓칠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저의 하루하루는 하느님의 축복으로 채워진다는 말입니다.

저는 통일의 전망이 어두워 오는 것을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주 깜깜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희망이 절망으로 폭파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적인 미래상이 철저한 하느님의 절망, 허무로 폭발되어야 합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우리의 가능성도, 상상력으로 움직이는 창조력도 모두 폭발되어야 합니다. 그때라야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기본적인 것이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가능성의 렌즈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필요라는 렌즈로 미래를 내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성서의 창조 신앙을 강조했었습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그 가능성이 필요를 따라 작동되어야 합니다. 배식이 떴다는 소리가 들려와서 오늘은 이만 붓을 놓습니다.

 

(8월 8일) 가능성을 기초로 한 희망이란 일부 엘리트의 희망이기 십상이라는 것을 저는 미처 몰랐었습니다. 최소한도의 필요를 기초로 한 희망이라야 서민 대중의 희망인 겁니다. 그 희망에 봉사할 때만 창조성이나 가능성이 역사에서 제구실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우선순위는 결코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가 모든 희망이 절망으로 폭발되는 데서 발견한 최소한도로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만인이 합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예수는 유물론자로서 마르크스의 대선배라고 해야지요. 그런데 예수에게 있어서 『일용할 양식』은 정의로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지상에서 몸으로 경험되는 하늘나라와 함께 오는 하느님의 축복이었던 겁니다. 그리스도와 마르크스는 같은 『일용할 양식』에서 출발하는데,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그것은 전리품인 데 비해서 예수에게 있어 그것은 축복이었군요. 이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양식을 전리품으로 먹는 것과 축복으로 먹는 것은 우선 밥맛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몸의 진실이 정의를 원하시는 하느님 마음의 진실과 하나가 될 때, 그것은 축복이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의를 요새 우리의 말로 바꾸어 『자유의 균등』이라고 할 때, 자유에서 오는 양식이라야 축복이 된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에 양식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일제 36년 동안 뼈저리게 경험해서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유와 교환해서 얻는 일용할 양식도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그런 걸 생각한 건 아닐 테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선 사람들은 자유를 헌납하고 빵을 얻어먹고 있지요. 그러니 그건 아무 맛이 없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유에서 자라 거둔 양식, 그리고 자유를 자라게 해주는 양식, 그것은 입안에서 달고 우리 몸을 살찌우는 하느님의 축복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요는 자유의 전취(戰取), 정의의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주기도문으로 날마다 그걸 빌면서 그 기도를 사는 거구요.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야말로 민족통일의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산주의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나 지금은 필요보다는 가능성을 기초로 한 희망에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필요를 생산하지 않고 필요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최대한의 가능성을 가동해서 생산하다 보니까, 천연자원은 고갈되고 사람들은 공해에 시달리고 생산을 위한 생산에 인력은 혹사를 당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를 위한 사람으로 가치가 전도되고 만 것입니다. 이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는 길은 다 같이 『일용할 양식』을 비는 기도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검소한 생활을 생활신조로 삼는 퀘이커 교도들이 굉장히 돋보이는군요.

아버님, 금년으로 86회 생신을 맞으시는군요. 부디 오는 해에도 건강하셔서 같이 통일된 조국을 맞아 축하연을 여는 기쁨을 모두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손 모아 빌면서.

 

큰아들 드림

영미야, 

 

네 손도 못 잡아보고 작별하면 어쩌나 했는데. 네 눈에 맺혔던 이슬방울이 오늘도 내 가슴에서 맑은 구슬 같은 소리를 내는구나. 모처럼 찾아왔던 조국이 아직도 큰아버지가 갇혀 있는 조국이어서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 않겠지만, 큰아버지가 감방에서도 자작시로 밤낮 찬송을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는 만큼 무거운 가슴을 툭툭 털어버리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가거라. 서로 만날 날이 있겠지. 모두 모두에게 문안 전해다오. 좋은 그림 많이 그려라.       사랑

 

또다시  봄길에게

 

어제오늘 현미는 절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소. 벼는 이삭이 패기 시작해서 거두기까지는 농약을 치지 않는 건데, 현미는 농약을 친대도 알을 싸고 있는 왕겨가 알을 농약에서 충분히 지켜 줄 수 있다는군요. 이런 사실을 전 국민에게 알리도록 당신이 신문에 투고하시오.

다음 주일은 해방 37주년을 맞이하는 날이군요. 그날 당신은 시골에서, 나는 신경에서 해방을 맞았었지요. 그 감격이 37년 동안 퇴색하고 식다 식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일본의 재무장, 재침략의 위협을 받으며 몸서리를 치다니. 한일합방을 전후한 민족의 역사를 읽어 보면, 이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소위 지배층은 병신 짓만 골라 가면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일본을 미워하고 경계하기 전에 우리는 그들을 향해서 우선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지 않소?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가 후세인들의 눈에 또 그 꼴로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걸 면하는 길은 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해서 일본의 위협에 뭉친 힘으로 대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는 거 아니겠소? 전 국민이 이 대의명분 앞에 모든 기득권, 주의 주장을 내던지고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오. 민족의 역사를 정말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고 과감해져야 한다고 나는 믿소. 민간 차원에서 이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큰 조직이 교회가 아닐까요? 교계 지도자들이여, 깨어나라! 눈을 떠라!

나는 얼마 전에 일본 사람의 글에서, 한국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다음, 5백만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군요. 신라, 고구려에서도, 그 후로 고려, 조선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대륙의 문물을 가지고 갔는데, 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이렇게 불행의 연속일까 요? 미국은 영국을 조상의 나라라고 해서 특별한 배려를 늘 하는데, 일본이 한국을 조상의 나라라고 생각해 주는 것 같은 일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한국은 몇천 년 동안 일본에 무언가 늘 주어 온 나라이지 일본에서 무엇을 빼앗은 일이 없는데, 어쩌면 일본은 한국을 사사건건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깎아내리려고만 하는지, 그 심사가 괘씸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원망스럽다고나 해야 할지. 대륙에서 일어나는 세력들을 번번이 한국이 그 고생을 하면서 막아 주지 않았다면 일본은 결코 외적의 침해에서 오는 전화를 면하지 못했을 거라고 일본의 전략가들은 공언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한국이 분단으로 병신이 되어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가 그럴 수 있을까요? 나는 일본인에게는 한국에 대한 민족적인 열등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륙의 문물을 한국을 거쳐서 받아야 했다는 것, 중원에 들어가서는 한국보다는 낮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는 것 등이 그 뿌리 깊은 원인이었던 거죠. 그 열등감을 그들은 무력으로 보상받으려고 했던 거 아닐까요? 더욱이 근대사서 동학농민혁명, 3·1운동, 최근세사에서는 4·19 같은 민중운동이 일본에는 없었거든요. 일본에는 전쟁의 역사, 침략의 역사는 있어도, 동학, 3·1, 4·19 같은 자랑스러운 민중의 역사는 싹터 본 일조차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자랑은 곧 그들의 수치가 되었거든요. 무력으로 동학을 깬 것도, 3·1운동을 깬 것도 그들이었으니까요. 자기들의 수치를 위장하고 미화, 정당화하려면 우리의 것을 깎아내려야 하는 것,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선 일본은 이 민족적인 열등감을 극복해야 하고 우리는 제 발로 일어서야지요. 그 일은 하나도 통일, 둘도 통일, 셋도 통일이에요.

이만 총총.

 

1982.8.

 

농촌경제에 대한 걱정, 일본에 대한 생각, 통일을 통한 민족적인 열등감의 극복의 필요성 등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