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마음과 내 마음은 하나

하늘에 계시는 아버님

 

아버님이 계시는 하늘은 저 높디높은 푸른 하늘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시도 숨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하늘입니다. 우리의 코로 깊숙이 스며들어 온몸의 세포로 퍼져 나가 우리 몸에 생기를 넣어 주는 하늘입니다. 우리의 피부로 스며들기도 하구요. 하늘은 바람처럼 자유입니다. 몸을 떠나신, 아니 몸을 우리에게 주고 가신 아버님의 마음도 자유이십니다. 오늘 목욕을 했습니다. 제 몸을 문지르다가 아버님의 몸을 목욕시켜 드리던 생각이 나서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내 몸이 곧 아버님의 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또 한 번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아버님, 유관우 형은 저 대신에 감옥에 들어오고 싶다는 말을 늘 했다고 했지만, 그러다가 제가 나가는 것을 못 보고 갔지만, 아버님은 늘 저와 같이 들어와 계시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 아버님의 마음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이리로 걸어 들어오던 날 저는 아버님이 입으시던 점퍼를 입고 있었고, 아버님이 신으시던 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으로 아버님과 동급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버님이 이번에 저와 같이 들어오셨으니 아버님은 별이 다섯이 된 셈이니까, 역시 저보다는 한 급 위십니다.

아버님, 제가 이렇게 다시 들어와 있는 걸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버님만은 잘 들어왔다고 생각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아버님의 마음과 제 마음은 하나입니다. 젊었을 때는 아득하니 멀게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교도소에 들락거리면서 아버님의 큰마음에 제 작은 마음을 비워 놓았더니, 물에 물을 쏟아 놓은 것처럼 전연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제 마음도 아버님의 마음만큼이나 맑아져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제 마음이 욕심이나 편견으로 색깔이 들어 있다면 아버님의 맑은 마음과 같아질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맞는 걸까요? 이제까지는 하늘 마음이 이 땅에서도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갈라진 마음들을 묶어 한 큰마음으로 만드는 일 외에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그 일을 위해서 몸에 불을 지르고 죽어 가는데, 일흔을 다 산 사람이 무얼 더 원하겠습니까? 그 점에 있어서 아흔을 그 한마음으로 살다 가신 아버님의 마음과 한치 어긋나지 않으니까 안심하십시오.

아버님, 제가 여기 들어온 다음 날이 제68회 생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창을 열었더니, 서울 하늘에 무겁게 솟아 제 시야를 가리는 회벽이 보였습니다. 그 위에는 둥글둥글 예술적으로 가시 쇠줄이 처져 있고 거기서 작은 자유가 노닐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꼬리를 털고 날개를 털며 그 작은 부리를 가시 쇠줄에 문지르는 참새들의 작은 자유, 아침 햇살에 반짝하는 모래알 같은 자유에 새 아침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는 걸 보았습니다. 저의 네 번째 교도소 생활은 이렇게 무엇으로도 묶이지 않는 자유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 만세, 만세. 오늘 밤에도 아버님의 품에 안겨 자겠습니다.

 

1986. 6. 7. 아들 익환 드림

 

네 번째 감옥생활을 시작하며 6개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