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0621 사립문을 연 스승 김재준 목사님

봄길에게





당신의 싱싱함이 (문)혜림의 싱싱함에 조금도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어 퍽이나 자랑스러웠다오. 민석이 어머니의 사랑의 노래는 나의 감옥 생활에 향기로운 기쁨을 더해 주는구려. 나를 근로자들의 아버지, 학생들의 아버지라고. 그렇게 되어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겠지요. 그윽한 사랑의 노래를 들으려고 오늘 아침 “모든 일을 사랑으로 처리하라”(고전 16:14)는 바울의 말이 귓가에 쨍하고 박혀 왔던가 보죠. 일 처리란 언제나 계산으로 하는 건데, 어떻게 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 일을 처리하는 기준이 되는 게 상식인데, 바울은 사랑을 기준으로 모든 걸 처리하라고 해주었군요. 평생을 사랑만으로 살아온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죠.



방에 들어왔더니 책이 여러 권 들어와 있어서 반가웠어요. 특히 김창숙 옹의 문집을 펴들고 내 할아버지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어요. 나는 그분을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유생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단한 시인이셨구려. 그의 옥중 시들을 읽다가 꽤나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지요. 자기를 무지막지하게 고문한 사람들에게 지필묵을 달라고 해서 써준 시까지 남아 있었다니…….



세상에는 고마운 사람도 많군요. 벌침을 어머니에게 계속 놔주실 분이 나타났다니,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야. 나의 책들을 한 권씩 드리시지요. 어머님의 가려움증만 나아 준다면 세상에 걱정이 없어질 것만 같군요. 이런 말 하는 것도 너무 개인주의적인 감정인지도 모르겠군요. 세상에 얼마나 억울한 고생을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머니야말로 우리에겐 더없이 큰 축복이지만 어머님의 생애는 그대로 어머니이며 축복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하늘의 축복을 더 이상 욕심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얼룩덜룩 가려워 긁은 자국을 보면 마음이 쓰려 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인 것을.



김재준 목사님의 노환도 굉장히 마음에 걸려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무너져 있는 것 같은 인상이어서 더욱 마음이 언짢군요. 김 목사님은 그야말로 후천개벽의 문을 여신 분 아니겠소. 자유를 향해서, 스스로 자기를 얽매는 신앙, 교리를 툭툭 끊어 버리고, 삼손처럼, 자유를 향해서. 그런데 그게 똥강아지도 코끝으로 스스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립문 같은 거였거든요. 온통 철판을 붙인 성문을 열고 백만 대군이 짓쳐 나가는 듯한 기세 같은 것이 아니고, 솟을대문을 삐걱 소리도 요란하게 열고 나서는 식도 아니고, 동네 마실 나가듯 열고 나가는 사립문 정도가 김 목사님이 열어젖뜨린 후천개벽이었다는 느낌이군요. 그러나 거기는 매서운 비판 정신이 있었고 역사를 한 아름 얼싸안는 큰 가슴도 있었거든요.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종교적인 언어 한마디 없는 찬송가 가사. 찬송가의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 아니겠소. 그 가사의 격조에 떨어지지 않는 한 절을 얻으려고 얼마나 긴 세월을 나는 끙끙거렸던가요. 김 목사님은 사립문 열듯이 그 두 절을 지으셨을 텐데.



내일 나의 마음은 갈릴리에 모이는 가난한 마음들과 같이 울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기도하리다.





1986. 6. 21. 당신의 늦봄






스승 김재준 목사의 건강 염려하며 그분의 사립문 여는 듯한 삶을 회고.



어머니의 가려움증을 치료해 줄 분에 대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