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상의 지상 명령은 없다

당신께

 

오늘도 마음으로 당신 옆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오. 예레미야 1장과 사도행전 8장을 명상하면서. 예레미야의 순교자적인 생이 시작되는 소명의 기사와 스테판의 순교 기사가 우연찮게 겹쳐지더군요. 오후에는 또 하나 이 민족의 제단에 바쳐진 순교자 장준하의 「민족주의자의 길」을 성경 읽듯이 정성을 쏟아서 다시 읽었구먼요. 장준하라는 사람은 어쩌면 이 글을 남기기 위해서 세상에 왔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군요. 차돌처럼 단단하고 완벽한 문장인데, 속에서 불이 활활 붙고 있는 문장이군요. 

그의 글은 민족주의자의 길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되지요. “그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삶, 고달픔과 보람을 민족의 그것과 함께 하는 것이리라. 민족적인 삶이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받고 있을 때, 민족적인 양심에 살려는 사람의 눈물과 노력은 모두 이런 민족적인 간난을 극복하려는 데 바쳐진다. 하물며 민족이 민족으로서의 존재조차 없어지려 할 어두운 시절에는, 민족이 외세의 침략에 눌리어 그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려는 암울한 시절에는, 민족주의자는 자기의 생명조차 민족의 삶을 되찾으려는 싸움 속에서 불태우지 않을 수 없다”고 순교자적인 결의를 표명하는군요.

돌베개! 그것은 그의 시체였던 거죠. 한쪽 손에 성서를 들고 한쪽 손에 총을 들고 중국 대륙을 헤맨 그의 하루하루는 자기의 시체를 넘어 민족의 해방을 향한 진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달한 민족해방은 해방이 아니고 분단이었군요. 뒤이어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 민족상잔의 비극.

그걸 준하는 치욕이라고 이렇게 울부짖는군요. “도대체 우리에게 언제 그토록 불구대천의 원수로 갈라질 무슨 주의가 있었고, 그 주의에 따라 나라와 민족을 두 동강 내어 살기를 원했던가? 그뿐인가? 역사의 똥인 전쟁, 그 가장 더러운 민족상잔을 우리가 청부 맡아 했다니, 5천 년 민족사 앞에, 아니 인류의 역사 앞에 무슨 낯을 들 수 있으랴”고.

전쟁, 특히 동족상잔은 우리 모두의 패배요, 평화는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생각하고, 그는 이렇게 말하는군요. “전쟁에 앞서 평화를 확보한 자를 이긴 승자는 없다. 하물며 동족과 형제끼리의 싸움에 평화보다 더 영광스러운 승리는 없다”고.

이리하여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그의 앞에 “갈라진 민족, 둘로 나누어진 자기를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이상의 명제는 없다”면서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 명령은 없다”고 외치죠.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설명하는군요. “그것이 민족사의 전진이라면 당연히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그 속에 실현될 것이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의 실현으로서 그는 통일을 생각했던 거지, 그런 것을 배제한 통일을 생각했던 것이 아닌데, 그걸 나는 민주와 통일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논리로 발전시켰죠. 통일은 민주주의의 궁극적이요, 구체적인 실현이라고. 그걸 준하는 이렇게 말하는군요. “우리는 이제까지 정치적 자유의 확보를 위해 싸웠다.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도 기본적이지만, 보다 큰 민족의 자유(곧 통일)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그리하여 장준하는 보다 큰 민족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자유를 찾으려다가 순교하고 말았죠. 나는 그의 뒤를 따르는 거고.

 

1989. 8. 27.

 

장준하의 『민족주의자의 길』을 읽고 그의 민족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그를 뒤따를 의지를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