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정말 오랜만에 붓을 들었네요. 오늘은 추석. 한가위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추석이라고 쓴 나의 타성, 안 되겠군요. 동현이 형님 내외도 오시고 동규도 오고 신나는 한가위를 보내야 하는 건데, 수재를 만나서 한가위고 뭐고 경황이 없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니까 아쉬운 생각 말아야지.
신경통약이 엔간히 독했던가 봐요. 장이 터져서 피가 나오다가 곱이 나오기까지 했으나, 단식을 했더니 다 나아서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당분간 죽을 먹을 작정이에요. 신경통은 완전치는 않으나 많이 나은 것 같으니까 다행이구요.
저번 날은 듣는 사람들도 안타까웠겠지만, 나도 머리가 전연 돌지 않아 박원순 변호사의 얼굴을 쳐다보는 게 미안할 정도였어요. 3·1 사건 때 윤보선 씨가 30분이 지나자 엉망이 되던 걸 생각하면 난 그보다야 나았지만, 최후진술이나 잘해야지요. 법적인 면은 전적으로 변호사님들께 맡길 참이구요. 통일의 염원을 토로하는 거죠 뭐.
어제 저녁에는 참교육을 위해 분투하시는 선생님들이 펴낸 학생들의 글 모음을 읽다가 정말 정말 충격을 받았군요. “지금 나의 마음은 저 하늘처럼 답답하다” 김미애라는 중 3 여학생의 글 첫 줄. 저 넓은 하늘, 저 푸른 하늘이 답답하고 깜깜한 하늘이라는군요. 하늘이 답답하면 세상에 답답하지 않은 게 뭐가 있겠어요. 다른 중 3 김선미는, 제 마음에 떠오르는 말 한마디가 있는데 그건 “죽고 싶다”는 말이라는군요. 비참한 이야기 아니오? “싫다. 정말 싫다. 공부하기도… 밥 먹기도… 움직이기도 싫다… 난 꼼짝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굳어 버리고 싶다. 돌이 되어 영원히 이 세상에 남고 싶다”(김정선, 중 3). “우리는 시험이라는 감옥 속에 살기 싫어요. 그 시험은 우리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했어요”(이경윤, 중 3). 신정윤(중3)은 “옆에 있는 짝도 적이야. 어떻게 하든 그 사람도 꺾어야 해”라는 선생의 말을 듣고 그 선생을 증오한다고 하는군요. 같은 학년 장윤정은 제 언니를 “우는 시간까지 아까워하는 딱딱한 철 덩어리가 되었다”고 하면서, 대학에 들어가서 실컷 웃고 울겠다고 하지만 언니는 그 전에 웃음도 울음도 다 잊어버릴 거라고 내뱉는군요.
89년은 이 땅의 교육의 고질병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해가 되었군요. 87년은 노동자들이 터져 나왔고, 88년은 학생들의 통일 열기가 터져 나온 해구요. 이 민족의 에너지가 이렇게 껍데기를 폭파하며 터져 나오는군요. 누가 누가 막으리오. 이래서 문익환이는 어쩔 수 없는 낙천가요.
1989. 9. 15.
어머님!
오늘 아침에 사도행전을 읽다가 바울이 선장보다도 지중해 항해에서 더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는 기사를 읽으면서(27:9~10)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인 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떠났다가 다 죽을 뻔하지 않습니까? 구약의 예언자들도 정치인은 아니죠. 그래서 이스라엘의 임금들은 예언자들의 말보다는 정치로 뼈가 굵은 전문 정치인의 말을 듣다가는 당하곤 했던 것 아닙니까? 천당만 쳐다보는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세파를 뚫고 들여다보는 신앙인의 눈이 바로 우리의 눈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점심으로 죽을 먹고, 이오덕 선생님이 이끄시는 한국 글쓰기 교육연구회가 엮어낸 중·고등학생 글 모음 『밥 먹으며 시계 보고 시계 보며 또 먹고』를 펼쳐 중·고등학생들의 시를 읽다가 정말 철퇴로 뒤통수를 얻어맞았습니다.
“학교에 가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선생님들은 저승사자 되어 우리를 기다린다”는 구절에 이르러, 이건 가슴을 쳐야 하는 건지 땅을 쳐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들을 읽는 선생님들이 참교육을 위해 몸부림치는 건 어찌 보면 ‘저승사자’라는 직함을 떼버리려는 몸부림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 89년이 선생님들을 그대로 저승사자로 묶어 놓으려는 문교 행정이 깨지는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이 민족의 정신은 반세기에 걸친 독재의 사슬에 묶여 죽어 버리지도 시들어 버리지도 않고 이렇게 밑에서부터 뒤엎어 버릴 만큼의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거죠. 갓 스물인 (임)수경이를 보세요. 누가 수경이에게 그런 교육을 시켰습니까? 부모도 선생님도 못 시킨 교육을 수경이 스스로 터득한 거 아닙니까? 그것도 세계를 양분하는 두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말입니다. 그 갈등, 대립의 한복판에서 얼마나 의연하고 자유롭고 슬기롭게 처신했습니까? 누가 수경이에게 그걸 가르쳐 주었습니까? 아무도 그걸 수경이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습니다. 가르쳐 주었다면, 그걸 못 보도록, 그런 자리엔 아예 갈 생각도 말라고 가르쳐 준 사람들이 있을 뿐 아닙니까?
무서운 철권 세뇌 교육으로 이 땅의 새싹들은 다 죽은 줄 알았다가, 새싹들이 들고일어나는 힘을 보면서 용기백배해서 모레 법정에 마지막으로 서겠습니다. 어떤 형이 떨어지더라도 항소는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월요일이 지나면 건강과 치료에 관한 저서에 손을 대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소서.
아들 1989. 9. 15.
중학교 학생들의 글모음을 읽고 교육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