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신앙의 실천

의근에게

 

어제 호근에게 쓰던 편지의 계속이다. 평화의 본질은 생명 사랑이요, 생명 사랑이 모든 가치 있는 것의 총화요 완성이라는 것을 호근에게 쓴 편지를 읽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의 총화와 완성은 생명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말이지. 생명 사랑으로 귀결되지 않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아무 가치가 있을 수 없거든. 그런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사이비 가치, 곧 속임수이고. 

창세기 1장에 “좋다”는 말이 하루에 창조가 끝날 때마다 나오지. 그것은 빛의 창조에서 시작되어 인간 창조로 끝나지 않니? 그런데 그 빛은 곧 생명의 기본 조건이거든. 서양 성서학자들은 빛의 창조를 질서의 창조라고 보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생명의 기본 조건이다. 빛이 생명의 기본 조건이라면, 질서는 그에 따르는 부차적인 조건이라고 해야겠지.

모든 가치의 총화요 완성으로서 평화 운동, 곧 생명 사랑 운동이 구체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이요, 민족 통일 운동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은 정치 운동에 멎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전 존재를 투입한 신앙 운동이요, 기독교의 화해의 복음, 평화의 복음의 실천이다. 순수히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민주나 통일은 일차적으로 협상과 타협일 수밖에 없지. 안 그렇니? 그러나 기독교인의 민주, 통일 운동은 그 차원에 멎어 버릴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가치의 총화요, 완성, 곧 생명 사랑 운동의 도정일 뿐이다.

그러면 민주화 운동이 평화 운동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다양한 성향과 뜻과 생각과 권익이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함이 없이 수렴되고 용인되는 제도를 말하는 것 아니겠니? 획일주의적인 일원 사회가 아니라 다원 사회가 바로 민주적인 사회이니까. 서로 다른 것들끼리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일, 공존함으로 서로 다른 주장과 성향이 더욱 빛을 낼 수 있어서 좋고 즐거운 일이 평화가 지향하는 일이라고 할 때,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원칙인 거지.

이것은 자유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 아니겠니? 자유가 박탈된 곳에 평화란 있을 수 없으니까. 평화는 모든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음으로써 생명이 신장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되겠지. 감옥이 아무리 고요하다고 해도 감옥의 평화는 없다. 병원이 아무리 평화스러워 보여도 병원의 평화는 없는 거구. 병 때문에 자유를 상실한 곳의 평화는 위장 평화이니까.

민주주의는 주먹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는 것 아니겠니? 민주주의 제도에서 축이 되는 건 아무래도 국회라고 해야겠지. 국회는 모든 걸 말로 해결하는 곳이거든. 국회에서 제정한 법대로 되어가는지를 판가름하는 법정도 말로 결판나는 거 아니니? 물론 물적 증거가 있어야지만. 그러나 증거만 가지고는 안 되지. 그리고 민주주의의 제도의 4부라고 하는 언론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물리적인 힘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최후의 결정권을 가진 민주 제도의 길을 평화의 길이지. 주먹이 아니라 말로 하는 평화의 제도, 그게 바로 민주 제도이지.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제도만이 아니고 경제 제도에도 해당하는 것 아니겠니? 경제적인 민주주의, 그건 빈곤을 제거하는 평화 운동이고. 그리고 그것이 생명 사랑의 구체적인 길이고.

통일 운동이 평화 운동이라는 건 긴말 하지 않아도 되겠지? 핵전쟁의 위협에서 우리 겨레뿐 아니라 인류를 구하는 일이 통일 운동이요, 평화 운동이니까. 53년 이후로 근 40년이 준전시의 군사 문화가 얼마나 이 땅의 평화를 교란해 왔는지도 긴말 할 필요가 없겠지. 생명을 경시하는 군사 문화를 청산하는 일이 바로 평화의 복음을 실천하는 일이거든. 군사비에 투입되는 막대한 국고금의 낭비만 막아도 이 땅의 빈곤을 청산할 수 있지 않겠니?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북괴라는 구호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이 땅의 평화는 반은 이룩되지 않겠니? 통일되어 한반도가 한 경제 단위가 될 때 얻는 경제적인 이득이 얼마나 큰지를 너는 경제학 전공이니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분단된 한반도는 아시아의 평화를 계속 위태롭게 하지만, 통일된 한반도는 아시아의 평화의 기둥이 되거든. 이렇게 통일 운동은 그대로 평화의 복음의 실천이 된다. 이렇게 해서 통일도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선에 멎어 버릴 수 없는 일, 신앙의 실천이라는 차원으로 심화하여야 한다. 오늘은 이만.

 

아비 씀  

 

평화 운동은 생명 사랑 운동이고, 민주화 운둉과 통일 운동이라는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