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시 “비 내리는 밤”

당신께

 

지금은 단식을 해도 마음이 가볍네요. 어머님이 따라 하시리라는 걱정을 안 해도 되니까. 동환이가 생각하듯 무언가 내 뜻으로 이루려고 단식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하는 거지. 『말』지를 읽으면서 죽어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었느냐는 걸 알게 되면서 그냥 목이 메는 심정이요. 그 값진 죽음에 값하는 일을 못 한 데 멎는 게 아니라, 그 죽음들을 모독하는 일을 하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 한마디밖에 할 말이 없군요. 그런데, 야당 정치인들이라는 게 하나같이 이 죽음들 앞에서 엎드려 사죄를 빌고 환골탈태, 새로 태어나려는 자세가 안 보이니 통탄스러울 뿐이군요. 어제 만난 동환이도 전혀 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구요. 

지금 우리가 과연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민족의 운명이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서 있는데, 우리 운명이 또다시 20세기 초처럼 우리의 주권과 권익이 깡그리 무시된 채 강대국들의 권익 위주로 결정되려고 하고 있는데, 앞으로 2, 3년은 예사 2, 3년이 아닌데, 민족사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데, 통일된 자주하는 민족으로 일어서느냐, 아니면 분단된 상태에서 강대국들의 식민지로 전락하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데, 그것이 보여 미래가 창창한 꽃 같은 걺은이들이 민족 제단에 목숨을 불살라 바쳤는데, 기성세대라는 것들은 이게 무슨 꼴이람. 통탄, 통탄, 통탄할 뿐이군요.

나만 비분강개파가 되어, 나만 나라와 겨레를 사랑한다며 남을 눈 아래로 깔아보는 자세로 보일까 봐 저으기 마음이 켕기지 않는 바 아니지만. 밖에 있다면야 내가 왜 단식하겠어요?  뛰어다니지. 그러나 여기선 그게 안 되니 밥이나 굶는 수밖에.

당신의 글발 12까지는 이미 들어왔는데, 어제 13~15신까지 들어와서 반가이 읽었어요. 이제 목이 열려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데, 좋은 노래를 들여보내 주어서 기뻤어요. “그대 오르는 언덕”도 좋지만, 가사와 음악이 잘 맞지 않는 데가 있어서 어색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정말 좋은 노래. 이 노래는 이제 외워서 남을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서도 부를 수 있게 해야지. 혼자서도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다는 걸 몸의 세포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세요? 노래 부르는 민족, 이 겨레는 정말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이거든요. 노래로 숨 쉬고, 노래로 자라고 늙고, 노래로 사랑하고, 노래로 꿈을 꾸고, 노래로 절벽을 무너뜨리고, 노래로 새 세계를 열고.

정말 어제 김송달 목사의 편지와 남길 언니의 편지가 와서 참 반가웠구요. 오래 소식이 없어 궁금하던 안태영이가 신동아 6,7월 호를 보내줬는데, 주소를 적어두지 않아서 회답을 할 수 없군요. 언니 편지를 받고는 정말 억울하군요. 올해 7월 명훈이 삼남매가 와서 세계 정상을 가는 음악을 들려준다는데, 그 연주를 들을 기회를 놓치다니…

김승훈 신부, 함세웅 신부에게 고맙다는 전화라도 해 주시오. 영치금을 넣어주신 분 인권위원회 이철우 씨라고 문숙의 시를 알고 싶다고 했지요. 제목은 “비 내리는 밤.”

 

주룩주룩 비 내리는 밤엔

너무너무 쓸쓸하지요.

주룩주룩 비 내리는 밤엔

감옥에 계신 할아버지가 생각나지요.

주룩주룩 비 내리는 밤엔

할아버지께서도 쓸쓸하시지요.

그렇지만 이슬비가 내리는 밤엔 

나도 할아버지도 즐겁지요.

 

둘레에는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그려 넣었구요. 돌아와서 우리 말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애가 이 정도의 시를 썼다는 건 그냥 놀라움. 이만 총총. 당신의 사랑

 

모리다 쇼이치(森田宗一) 선생님

 

김인한 씨 장례식 날 장지에 갔다 오면서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회상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모습이 가끔 눈앞에 아른거렸었는데, 『XXXX』(일본 책 이름 해독 불가)를 받아 읽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일생을 불우한 청소년 문제에 바치신 선생님. 그 따뜻한 애정과 자상한 마음씨만으로 청소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인 변혁이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저는 이 감옥에서 날마다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구조적인 변혁만으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선생님의 그 따뜻한 사랑과 자상한 마음 없이는 구조적인 변혁도 무의미하다는 것도 이번에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절감했습니다. 에스겔 37장 기억하시지요? 해골 골짜기 이야기 말입니다. 뼈가 다 맞추어지고 살이 덮이고 힘줄이 모든 걸 연결했어도, 바람이 불어 그 시체들에 생기가 돌아와야 했다는 걸. 그 입김, 그 생기가 바로 선생님의 그 따뜻한 사랑이요, 자상한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민족 문제, 사회 문제, 역사 문제가 그동안 제 시의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秋山 사형수와 맹인 부인 鈴木和子 씨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고 철퇴로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秋山 씨의 遺稿集을 지금이라도 구해 읽을 수 없을까요? 지금 구할 수 없으면, 복사라도 해 보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민족, 사회, 역사를 인간적이게 만드는 참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서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양심(良心)”을 주제로 한 연작시를 그동안 썼습니다. “땅의 양심”이라는 시는 『福音XX界』 (일본 책 이름 해독 불가)에 번역되어 실렸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몇 편 쓰기도 했습니다. 秋山 씨의 遺稿集은 제게 박차를 가하리라 생각되어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게 됩니다.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을 정말 기뻐하면서.     

서울에서 문익환 올림.

1991.06.26

 

 아내에게 단식을 시작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일본 청소년 문제에 관한 책을 쓴 작가에게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遺稿集을 보내 줄 것을 부탁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