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어제는 어지나 시워나를 안아 볼 수 있고, 뽀뽀도 주고받을 수 있고, 여름 학교에서 배운 노래도 들을 수 있어서 할아버지라는 게 늙어 서러운 게 아니라 마냥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오. 시워나는 시종 내 품에 안겨서 내 수염을 싫어하지 않고 계속 재미있다는 듯 만졌다오. 어지나의 세밀한 과학적인 관찰이 아빠 엄마에겐 마냥 자랑스러운 거였고. 둘이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그렇게 같을 수 없군요. 커서 이중창을 하면 썩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오.
의근이 몸무게를 많이 뺐다는 데도 77 kg이라니, 뼛골이 단단히 영글었나 보군요. 보기에 그리 뚱뚱하게 보이지 않는데. 난 68 kg으로 정착한 것 같군요. 요새 먹는 정도만 유지하면, 건강은 이제 완전 정상이고, 시 쓰는 거나 기에 관해서 쓰는 거나 신나기만 하구요. 건강이 정상인 정도가 아니죠. 기가 밖에서 들어온달까? 아니면 속에서 솟구친다고 할까? 몸을 가지고 실험하는데도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구요.
요새 땅콩으로 바둑 정석을 익히고 있는데, 이게 결코 먹고 먹히는 놀음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군요. 정석이란 서로 상대편의 권리를 나의 권리와 꼭같이 인정하면서 서로의 세계를 구상하는 거군요. 그 구상이 결코 일방적이 아니라 상대편의 구상을 보아가면서 나의 구상을 조정해 나가는 거군요. 정석 공부가 끝나면, 정석을 잊어버리라는군요. 정석에 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으라는 거죠.
비가 왔다 하면 이렇게 인명 피해가 커서야! 54명 사망, 실종, 이 시대 인명 경시의 결과라고 해야겠지요. 자연을 인간 존재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아니 인간을 자연이라는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걸 어디까지나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현대 산업 문명이 빚어낸 피치 못할 결과이죠.
19신에서도 썼듯이, 냉수마찰, 전신이 아니라도 무릎 아래, 팔꿈치 아래만이라도 매일 물수건으로 열심히 문지르면 하나같이 기가 풍성한 몸이 될 거니까, 건강 걱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구요. 걱정하는 시간에 물수건으로 문지르라고 몸 약한 가족들을 독려하시오. 마른 수건도 좋아요. 이 편지가 당신 손에 들어갔을 때는 명화 삼남매의 연주가 있을 때쯤이 아닐까요? 이럴 때면 갇혀 있는 몸이라는 걸 억울하게 실감하네요. 사랑
정희성 시인께
참 오랜만에 정 시인의 잔잔한 서정에 저의 가슴 또한 잔잔한 감흥으로 흥건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메시지가 뚜렷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정의 가락에 아주 녹아 들어 있어서 시의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어느 편이냐 하면 메시지가 붉어져 나오는 시를 많이 써오지 않았습니까? 최근 송기원 시인의 시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이제 정 시인에게서 메시지를 완전히 녹여낸 서정의 감흥을 얻을 수 있어서 저의 시작에 많은 도움이 될 걸로 압니다. 저는 요새 “사랑의 노래”에 밀려가고 있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저의 주례사를 주제로 한 짤막한 시, 고맙다고 해야지요. 저는 그동안 하나 되는 일은 그 무어건 민족 통일의 예행연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결혼식 주례도 그런 식으로 했는데, 요즘은 그게 왕창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애새끼들을 낳아 기르며 같이 어려운 세파를 헤치며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정치적으로 되어야 쓰나? 인간적이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너무나 인간적인 희로애락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미움과 사랑, 절망과 희망이 정치의 살과 피가 되어야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이거죠. 원수가 되어 눈을 흘기며 총칼을 맞대고 죽이고 죽던 겨레가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담을 허물고 하나 되는 일이 아무리 큰일이라 해도, 3천5백만 쌍이 인간답게 살자는 게 목적이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제 말해야 하겠다고 느낀 겁니다. 너무나 비정한 정치에 사람의 따뜻한 피를 통하게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정치는 어디까지나 울타리에 지나지 않죠. 아빠 엄마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 언니 아우 아저씨 조카의 인정이 아름다운 꽃동산을 가꾸어 나가는 걸 지켜주는 울타리에 지나지 않죠.
말을 잘못했군요. 정치 자체를 꽃동산을 가꾸어가는 인간적인 것이 되게 해야 한다고 해야 옳겠지요. 제가 요새 “사랑의 노래”를 쓰는 게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저에게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사랑”입니다.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은 너무 정치적이어서 정이 안 듭니다. 정치도 비정치화 해야겠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이를테면 정치를 인간화하자고.
좋은 시 많이 써주세요.
안동에서 늦봄 올림
1991.07.24
아내에게는 아들 가족이 면회왔던 일과 바둑의 정석에 관한 얘기를, 정희성 시인에게는 자신의 주례사가 너무 정치적이었는데, 앞으로 더 인간적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