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에 이로운 세균의 역할

당신께

 

날이 흐리기는 해도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우선 운동부터 하고 편지를 쓰느냐? 아니면 편지를 쓰고 나서 날이 더 개기를 기다려 운동을 하느냐? 망설이다가 우선 편지를 쓰고 날이 더 개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오. 요새는 토마토가 좋아서 먹고사는 일이 훨씬 즐거워졌구려.

어제 들어온 책 중에 이상구 박사의 책은 요리책이군요. 내보낼 테니 요리하는 사람들이나 보고 참고하도록. 나에게 필요한 책은 그의 인간 생리, 건강 이론에 관한 책이요. 바쁜 사람 자꾸만 심부름을 시켜서 미안 미안. 어제 들어온 책 가운데 『단식과 소식(小食) 건강법』을 읽느라고 거의 밤을 새웠다오. 참으로 유익한 책. 그걸 읽으면서 배운 중요한 사실은 장내에 세균이 열이 있으면 그 가운데 아홉은 유익한 세균이고, 해로운 건 하나라는 놀라운 사실이었어요. 그런데 세균이 엄청난 조화를 부리고 있다는군요. 뉴기니아의 고원지대에 사는 파푸아족은 고구마 따위의 농매(녹말의 방언)를 주식으로 하고 있고, 아니 거의 농매만을 먹고 있다는군요. 동물성 단백질 (서양 생리학은 그걸 먹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하는데)은 전체 섭취량의 1% 정도. 그런데 그들 가운데 건강이 문제인 사람을 거의 만날 수 없다는군요. 

그런데 이 놀라운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오멘이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는군요. 고구마를 먹은 사람의 대변 속의 질소량이 먹은 고구마의 질소량보다 많고 아미노산도 더 많았다는군요. 단백질에 관해서는 먹은 고구마보다 똥에 섞여나온 단백질이 영양학적으로 낫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는군요. 물론 간이 농매를 단백질로 전환하기는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 면이 있죠. 소처럼 사람의 몸속에도 세균이 음식물 속에서 번식해서 소화도 도울 뿐 아니라, 그 세균들이 양질의 단백질의 공급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많이 먹어야 건강하다는 이론은 현대판 미신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요. 그야말로 비과학적인 과학이라고 해야 하겠군요. 오늘은 20,000. 

당신의 늦봄

 

이선주 선생님

 

『형평2호』를 받아서 잘 읽었습니다. 특히 저의 강연을 풀어서 실으신 성의에 감읍입니다. 그같은 강연을 나가 있는 석 달 동안 100여 회 했다는 검찰의 발표를 보고 저도 어지간히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강연이 아직 글로 쓰인 일은 없었습니다. 그 강연이 진주에서 처음으로 글이 되어 나와서 독자들을 얻게 되었다는 일이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녹음을 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기에 그 노고를 치하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이켜 그날을 생각해 보면서 여기서 또다시 가슴 뜨거워지는 걸 어쩔 길이 없습니다. 비좁은 강당은 그대로 열기였습니다. 통일 열기였습니다. 여러분은 그게 내가 지른 열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전혀 아닙니다. 저는 언제나 청중에게서 번져오는 열기로 달아오르는 저 자신을 경험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특히 진주의 열기는 다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뜨거운 열기였습니다. 

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저의 건강은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몸과 생명과 인생과 역사와 우주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파악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과 인생』이라는 책을 가제로 쓰고 있습니다. 쓰는 저 자신으로서도 꽤나 흥분 상태에 있습니다. 김석봉 시인은 알겠지만, 진주 교도소에 있을 때도 쓴 일이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랑 노래를 쓰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들의 아픈 사랑 노래죠. 지금 쓰고 있는 것은 10대 소년•소녀의 사랑 노래입니다. 

녹음을 푸는데 사소한 실수야 어쩔 수 없지만, 이건 너무나 중대한 과오여서 지적하겠습니다. “…만주를 침략하자고 얘기했어요”(147쪽) 이건 제 뜻과는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침략하자는 게 아니라, 산동반도, 요동반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발해 문화권, 생활권을 공동으로 세워나가자고 했던 건데, 그것이 통일의 의미라는 거였는데. 아는 사람들끼리라도 알려서 그 뜻을 바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부탁은 그 녹음 테이프를 복사해서 우리 집에 보내주십사는 겁니다. 

건투를 빌면서. 안동에서. 늦봄 올림. 

 

김석봉 시인

 

김 시인의 시집 “이 세상은”을 여기 와서야 뜸을 들여가면서 음미하고 또 음미합니다. 진주에서 철창 너머 주고받던 시 이야기가 꿈만 같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던 김 시인의 발 빠른 발전이 드디어 오늘 이렇듯 놀라운 창작집으로 결실되었군요. 그냥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닙니다. 정말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김 시인만의 시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자부합니다. 그렇게도 쉽게 습작기를 넘어섰군요. 이번 “붉은 꽃”도 참 좋습니다. 그날 좋은 아침을 장만해주신 부인께도 고마운 인사 전해주세요. 지난번 옥살이하면서 쓴 시들 “옥중 일기”라는 제목으로 곧 나올 겁니다. 나오는 길로 한 권 보내드리지요.

여러 동지들께, 특히 김용하 선생님, 이선관 시인에게도 각별한 인사를.  

안동에서 늦봄

1991.07.25

 

 아내에게는 건강에 대한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을, 이선주 선생에게는 자신의 강연을 활자화해준 데 대한 고마움을, 김석봉 시인에게는 그의 시를 읽고 느낀 것을 각각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