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시간과 영원의 대종합

당신께

 

우리는 지금 너무나 엄청난 시대를 살고 있군요. 인류의 길고 긴 역사상 오늘만큼 심한 격동을 겪은 시대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좀처럼 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몸부림은 지금 전 세계를 몸살을 앓게 하고 있으니.

반개혁 운동이 일어나 고르비가 실각하리라는 것도 예감할 수 있었지만, 반개혁 수구 운동이 성공하기 어려우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죠. 고르비의 경제 정책이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어도,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은 거의 전 러시아인들의 요망일 거라고 확신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70여 년에 걸친 소련의 경직화된 정치•경제•사회 정책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만은 거의 모두가 공감할 테니까요. 사회주의 이념을 굳게 신봉하는 사람들마저도 이점에는 이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저 막강한 소련 군부가 중심이 된 공산당 수구 세력들의 도전은 새 실험이 더 필요하다고 믿는 소련 국민 대다수의 희망 앞에서 물거품으로 깨져버릴 공산이 크다 해야 할 것 같군요. 새 실험은 어느 한 쪽이 아닌 종합일 수밖에 없죠.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대종합의 시대를 살고 있죠. 이 대종합의 시대에 나만의 고유성, 내 집단만의 특이성, 혹은 고유 영역, 고유 권한을 주장하는 어떤 주장도, 어떤 운동도 성공할 수 없어요. 이건 흑이요, 저건 백이다, 이것은 水火相剋이다라고 생각하던 모든 것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적인 걸 찾아서 대종합을 이루는 일, 지금까지 절대 조화할 수 없고, 서로 상극하는 물이요, 불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것이 다 제 자리를 찾아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고, 서로 기대고 도와주면서 한 큰 누리를 이루어 나가는 대종합을 향해서 인류는 큰 한 걸음을 내딛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죠.

이건 결코 정치•경제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죠. 요새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가는 굿판을 보세요. 거기는 음악만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거기는 그림이 있고, 춤이 있고, 시가 있고, 모든 예술이 총동원되지 않아요? 그리고 연기자들과 관객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버리거든요. 이 굿판들은 옥내가 아니라 옥외여야 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아요? 올봄 3월31일이었던가요? 연대 노천극장에서 세 시간 눈이 퍼붓는 가운데 진행된 대축제. 그날은 하늘도 세 시간이나 눈을 쏟아부어 그 자리의 감격을 더 해 주었거든요. 극장에서 눈이 내리게 하는 소도구 같은 거 저리 가라가 아니었던가요?

예술이란 인간의 창조물, 곧 인공인데, 인공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대종합을 이루는 거죠. 대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죠.  이 대종합은 이념, 이론, 주장, 철학, 교리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서 시작되죠. 그 모든 것을 한 굿판으로 재창조해내고, 어느 누구도, 관객이나 청중이 아니고, 다 같이 참여하게 하는 것은 새 마음, 새 정신이지요. 그 같은 대종합을 이룩하는 새 마음은 큰마음이어야 하구요.

그래서 나는 불교의 “나무아무타불관세음보살”같은 염불 대신에 “이 큰 누리의 큰마음이시어”라고 불러 본다오. 마음이라고 하면 너무 정신화하는 것 같아서 “모든 생명의 생명이시어”라고도 불러 보구요. 생명만이 진실이니까 “모든 진실의 진실이시어”라고도 불러 보고, 생명은 아름다우니까 “모든 아름다움의 아름다움이시어”라고도 불러 보지요. 마음을 생명의 표현이라고 할까, 생명의 자의식이라고 할까? 그 마음의 내용은 진실이요, 사랑이요, 아름다움이구요.

오늘 아침 고린도후서 3장을 읽다가 6절에서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는 구절에 딱 부딪혔어요. 그런데 이걸 공동번역에서는 “성령은 사람을 살린다”라고 번역했군요. 인간을 자유하게 살리는 영은 기독교의 성령만이라는 교리에 매인 번역이지요. 영을 성령이라고 번역함으로 바울의 참뜻을 죽였죠. 영이라는 말의 본뜻이 바람인데, 말의 장벽, 곧 이념, 이론, 주장, 교리 등의 장벽을 넘어 자유로 넘나들 수 있는 바람을 기독교 교리의 장벽 안에 묶어두려고 했죠. 이런 분리는 사람을 죽이거든요. 그런데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온 누리의 대종합이거든요. 온 누리라고 할 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를 포함하는 말이구요.

인간 자체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시간과 영원의 대종합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은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 눈뜬 새로운 생각이라오. 인간 자체가 대종합의 산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일도 대종합이어야 하죠. 그런데 길고 긴 역사에서 인류는 이제 처음으로 그 대종합을 의식적으로 하게 되었죠. 사람은 본래 그런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던 건데, 인지가 발달하면서 분석적이 되었죠. 이제 우리는 분석의 시대를 넘어서, 대종합의 시대에 들어섰죠. 물과 불이 상극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없으면 세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세계와 내가 존재하고 살아 움직여 나가는 데, 물은 불이 필요하고, 불은 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죠. 분석적인 언어가 종합적인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이제부터 우리는 말로 표현되는 어떤 이념이나 이론이나 주장이나 철학이나 교리도 종합적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분단 논리가 통일 논리로 바꿔어야 한다는 말이구요. 우리 민족 통일 문제를 우주적인 대종합을 향한 인류의 한 걸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되구요.

방금 뉴스에서 고르비가 모스크바로 돌아갔다는 걸 말해주네요. 대종합의 시대를 거스르는 운동은 이렇게 실패할 수밖에 없군요. 고르비와 함께 대종합을 위한 모험찬 대실험에서 후퇴할 수 없다는 소련 사람들의 뜻이 이제 확고부동하게 되었군요. 지구의 이쪽에서 우리 또한 그 실험을 외면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계속 전진해야지요.

다행한 일이군요.  오늘은 이만.

당신의 늦봄

1991.08.22

 

 소련의 정세 변화를 보면서 인류가 대종합의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