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 묵자, 예수의 평등사상의 뿌리

당신께

 

지금 당신은 지겨운 닦달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내다보이는 산은 은은하게 단풍이 들어가고 있군요.

당신의 말대로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데 사람이 사는 꼴은 전연 그렇지 못하군요. 자연이 아름답다는 건 자연은 진실이라는 말도 되지요. 자연은 속임수가 없으니까요. 언제까지나 색이 바래지 않는 아름다움은 참된 것이거든요. 속속들이 참인 것, 아무리 속을 뒤집어 보아도 거짓이 없는 것은 아름답죠.

48년을 같이 살아왔는데 난 당신에게서 거짓을 한 번도 찾지 못했거든요. 당신의 변함없는 아름다움이 바로 거기 있죠. 오늘도 파이팅!  당신의 사랑 늦봄

1992. 10. 21. 

 

 

기세춘 선생님!

 

좋은 연구를 하셨군요. 저로서는 오직 놀라움뿐입니다. 묵자를 매개로 세계 문화사, 전 인류사의 중요한 갈피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 선생님의 연구 결과를 읽도록 해주신 일은 그냥 고마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건입니다. 사건이라도 엄청나게 큰 사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평등’은 유목민 전통에 뿌리를 박고 자랐습니다. 낙타가 교통수단이 되기 전의 유목민 사회는 평등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막이라는 생활 환경에 뿌리박고 자라던 평등사상이 출애굽과 함께 역사적인 자각으로 열리게 되었죠.

그런데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그 평등사상이 수메르 전통에 잔뿌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치게 된 겁니다. 그것을 증명해 주는 또 하나 큰 정신이 석가입니다. 불교가 힌두교와 다른 점이 바로 ‘평등’ 아닙니까? 힌두교의 그 엄격한 계급을 타파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불심’이 있다는 것을 설파했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부처일 수 있으니까요. 그 불교가 바로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진한 수메르 전통에서 나왔거든요. 불교의 성산 수미산은 수메르 산 아닙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西方淨土)’는 자신들이 살다가 떠나온 수메르의 옛 고토를 말하죠. 성서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이 바로 불교의 서방정토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평등을 설파하고 그 실현을 위해서 살아간 두 큰 정신인 석가와 예수와 함께 여기 동양의 묵자 또한 같은 정신으로 살아간 사람으로 우리 앞에 우뚝 일어섰군요. 묵자를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그 묵자가 동이족이었다니 놀랍군요!

수메르족과 동이족이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계시고 그걸 새삼 증명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제가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경위를 좀 설명하겠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클리블랜드 박물관에 가본 일이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들어서는데 처음 눈에 띈 것이 수메르인 석상이었습니다. 그 석상을 보면서 “너 삼자가 왜 여기 와 있지?” 하고 중얼거렸거든요. 삼자란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한 여학생 이름입니다. 그렇게 같을 수가 없더군요.

다음은 수메르 문헌을 읽다가 본 것인데, 수메르인들이 신을 ‘딩그리’ 라고 부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몽고에서 딩그리는 묵자의 귀신 정도의 존재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에게서는 당골로 살아 있는 거죠. 언어학 쪽에서는 우리말과 수메르어 사이에는 동사만 3백 단어가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동이와 수메르가 한 혈족이었다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이 증명하는 거죠. 계속하겠습니다.  안동에서 문익환 올림

1992. 10. 21.

 

 ※ 이 편지를 시작으로 문익환 목사는 옥중에서 기세춘 선생에게 보내는 수십통의 편지를 썼다. 이것들은 나중에 문익환·기세춘· 2009.
『예수와 묵자』. 서울. 바이북스 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문익환 목사가 안동교도소에서 1992 10 21일부터 1993 2 11일까지 5개월 동안 보낸 서른 한통의 편지가 실려있다. 아카이브에서는 이
서른 한통의 편지 제목을 부여할 때 이 책을 출판할 때 편집자가 붙인 제목을 참고하였다(아카이브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