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중국을 제일의 우방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열어야

우리 봄길님

 

내 손바닥에서 숨을 거둔 나비를 여기 마당에 묻어주고 나가려다가 가지고 나가기로 했어요. 우리 마당 한구석에 온 식구들과 함께 묻어주고, 그 위에 꽃씨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오. 무슨 꽃을 심을지는 온 식구들과 의논해서 민주적으로 결정지어야지요. 그 고운 나비의 죽은 생명을 아름다운 꽃으로 되살려내는 게 좋겠지요?

당신의 웃는 얼굴을 기다리면서. 당신의 사랑 늦봄

 

 

백낙청 교수님

 

최원식 교수의 글을 보면, 우리는 일본의 패권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중국의 패권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했더군요. 물론 경계해야지요. 그러나 우리가 일본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것과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일본의 대륙 재침략을 같이 힘을 모아서 막아내고,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같이 힘을 모아서 이루어내는 협력, 동등, 호혜의 관계가 되는 데, 중국의 패권주의가 부정적으로 작용 못 하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와 중국의 패권주의(정확하게는 중화사상이죠)의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사대주의적인 저자세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 관계가 있었다면, 그것은 당나라, 수나라 때 있었을 뿐이죠. 그때도 중국이 우리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중국의 침략을 물리치는 것이었죠. 그 이후로 한국과 중국은 북방족들의 침략에 같은 피해자의 자리에 同病相憐 관계에 있었던 것 아닙니까? 일본의 침략을 같이 물리친 동맹국이었구요. 우리가 일본의 침략 앞에 무너지자 온 중국이 일본의 침략에 짓밟히게 되었구요. 그리고 항일 투쟁을 같이한 혈맹관계가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뜨겁게 맥박치고 있습니다. 내가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만주에서 건너간 중국 목사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의 부끄러운 고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우리 중국 땅의 점령하고 지배하는데, 만주에서 항일 투쟁하는 것은 한국 사람뿐이야.” 만주 림략을 획책하는 이등박문을 할빈역에서 쏴죽인 것도 한국 사람. 중국 대륙을 침략하려고 들어간 일본 사람에게 상해에서 폭탄을 던진 것도 한국 청년이었다는 것을 중국 사람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의 분단을 환영한다는 최 교수의 판단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남한과 북한을 다 인정한다는 것 때문에 한국 통일에 부정적 내지 소극적이라고 판단하다가는 우리는 큰 과오를 저지를 겁니다. 통일되어 건강한 한국은 일본의 대륙 재침략을 막는 방파제로 중국은 보고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중국은 우리를 위협으로 보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그런 인상을 주지 않도록 우리는 신중한 외교적인 배려를 해야지요.

남한과 북한이 경쟁자로서 중국에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제일 우방이라고 생각하고 상호 신뢰를 돈독히 하면서 같이 사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와 번영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상호 신뢰의 기초 위에서 공동 번영을 모색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핵이 되어서 동북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연대를 맺으면서 일본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세력과 우호 관계를 맺어야 우리가 일본의 세력권에 말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1993.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