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알들의 양심


땅의 양심은 밥알입니다

속살도 하얀 밥알들입니다

입 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자근자근 철저하게 씹히는 밥알들입니다

툭툭 터지는 무지렁이들의 살점입니다 핏덩어리입니다

혓바닥 콕콕 찌르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목구멍만은 달큰한 맛으로 넘어갈 줄 아는

그윽한 마음입니다

살 속 뼛속으로 스며들며

머리카락 눈썹 손톱 발톱 키워가는 생명입니다

높푸르른 하늘 받아들이는

두 맑은 눈망울입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에 울리는 고막입니다

흙을 만지고 풀잎을 어루만지는

갓난애기 손가락 만지작거리는

보드라운 촉각입니다

그것은 한숨이기도 합니다

땅 꺼지는 한숨이기도 합니다

밭고랑처럼 주름진 얼굴입니다

나무토막 같은 손입니다

구부러진 허리입니다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의

굶주린 창자입니다

서른이 넘도록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하면서도

농토를 지키는 농군들의 고달픈 삭신입니다

자식을 굶기면서까지 키우던 소

배를 찌르고 농약을 먹고 죽은 농부의 한입니다

성난 하늘

땅과 바다 우릉우릉 울리며 내려꽂는

불칼의 번뜩임입니다

치솟는 불길

공순이들의 사랑 희망 믿음 전태일입니다

잠자는 우리의 가슴 때도 없이 두들겨대는

김상진 김경숙 김종태 김의기 김태훈 황정하 박종만 송광영 이재호 김세진 이동수의 주먹입니다

붉은 피 철철 흐르는 사랑입니다

역사의 힘줄입니다

모든 갈라진 것 눈물겹게 하나로

묶는 양심은 밥알입니다

농부들의 피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