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죽어


김세진 열사여

나의 막내아들보다도 한창 나어린

앞날이 구만리 같은 빛나는 눈길

서릿발 양심으로 이 암흑 찢어발기며

이 꽉 막힌 역사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또 하나 뜨거운

불길이여

열 번 스무 번 죽었다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이여

막아도 막아도 귀청 찢어지게 들려 오는

정의의 노랫가락이여

죽어서 사는 승리의 깃발이여

온몸 무너지는 당신의 거룩한

이름 앞에서

우리는 발에서 신을 벗고

엎드려 아룁니다



님이여

우리는 당신과 함께 죽어

당신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살아나 껑충껑충 뛰겠습니다

두 어깨 디밀어 밀어붙이겠습니다

온몸으로 거부하겠습니다

옥죄어 들어오는 모든 외세를

독재와 억압과 부패를

외세 의존과 굴종과 아첨을

분단을

분단을 정당화하는 맹랑한 논리를

온몸으로 거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어기영차 밀어올리겠습니다

자유를 육천만 겨레의 자유를

온몸 으스러지며 밀어올리겠습니다

분단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자유를

여덟 시간 일하고 여덟 시간 자고

여덟 시간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고

애기를 낳아서 기르는 자유를

목에서 피를 쏟으며 밀어올리겠습니다



농민의 해방 근로자의 해방을 깔아뭉개는 자유는

속임수입니다

속임수는 어디까지나 속임수입니다

속임수는 역사를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죽어 당신과 함께 살겠습니다

살아나 모든 속임수를 깔아뭉개겠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펴겠습니다

독재는 속임수입니다

민주주의만이 진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민주주의가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복권되는

민중민주주의만이 분단의 허구를 까발리고

민족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을 통일하는 민중민주주의여

그대만이 진실이어라

김세진

그대만이 진실이어라

죽어서 사는 진실이어라



님이여

당신의 웃음을 보여주소서

그날까지 우리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올 날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의 벗들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음을 터뜨릴 날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산천초목이 얼싸안고 목놓아 울 날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이

한꺼번에 큰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릴 날

민족해방의 날이 이제

성큼 다가서는 게 이리도 가슴 아프게 보이는군요



님이여

우리 육천만의 글썽이는 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