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0812 서울에서 열린 영금 결혼축하식


당신께 1977. 8. 12(금)

4일에 쓰신 편지를 오늘에야 받았읍니다, 우리는 11일에 쓰실 줄 알고 있었는데 편지가 어디를 헤메다 오늘에야 왔을까요.

제가 긴 편지를 자주 못 쓴 것을 후회하면서 펜을 들었읍니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졌는데 엷은 내복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제가 축하식 이야기를 쓰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대로 예쁜 꽃들을 장식했고 의자마다 청실 홍실로 맨 홍백 국화를 달았어요. 성수가 해 주는 것으로 할머님. 저. 은숙이 새 옷 해 입었고 영금이가 시부모님 옷 해 드렸는데 박 장로님만 입고 나오셨죠. 에배 순서지 받으셨는지? 은숙이는 “선구자”를 부르려다가(나더러 선곡하라고 함) 할머님도 시댁 식구들도 시편 23편을 못 들으셨겠기에 “야웨는 하느님은 나의 목자시니”를 불렀읍니다.

너머 더운 때고 많이 쉬었었기 때문에 글씨가 별로 마음에 안들었지만 정성드려 만든 평풍을 앞에 쳤읍니다. 예배당 휘장에 배경을 좀 만들까 하다가 고만두었더니 글씨를 좀 쓸 것을 그랬나 봐요.

부모님과 큰누나, 둘째누나, 둘째 매부 그외에는 친척들과 조카들이 오셨고 내빈은 박옥희, 박옥현, 모종일, 김석중, 이우정, 박영숙 공력귀,김한림, 전용주, 박형규 목사 내외분, 구속자 가족들, 원광회 이사 보모, 김해순, 안상임, 김은희, 김상근, 이해학 부인, 이순신, 김세암, 조갑손, 전봉녀, 안인숙, 안계희, 문봉녀, 김용숙, 고봉춘, 제갈저, 박순금, 나선정, 작은고모, 그 밖의 여러분이 오셨죠.

너머 날이 더워서 많이 못 오셨기 때문에 수박. 자두 케익을 넉넉히 썼읍니다. 케익은 고려당에서 실과 넣은 것을 크게 마추었었는데 성근. 채원이 찾아오면서 “새삼스런 하루”도 찾아왔죠. 카나다에서 좋은 사진이 많이 오겠지요. 아직 남길 언니 편지 밖에 받지 못했읍니다.

성근이 22일에 졸업하게 됩니다. 아빠 삼춘 책 보내기 열심으로 하고 있죠. 창근 엄마는 내년 4월까지가 기한이지만 그리 쉽게 다- 물러가는 것이 아니고 단계적이니까 그 후에도 유동적입니다. 창, 태근이 붓쩍 자라기 때문에 교육문제 등. 아빠 나오시기를 목마르게 기대하고 있어서 보기 안 되었읍니다. 이제는 나오실 때도 된 것 같은데요. 여러가지 일들이 그 후에도 일어나고 있읍니다.

별 소식이 없으면 제 생일날 내려가도록 하겠어요. 호근이 지금 집에 와서 할머님 뫼시고 영미, 영혜 데리고 갑니다. 은숙이 언니 좋아하니까 이틀 같이 지낸대요. 다음 2주년 기념예배에 함 선생님 말씀 하신답니다.

마당의 나리꽃은 왜 야생 주홍색 나리꽃이예요. 이제 다- 피었고 분홍, 빨간 장미가 피었어요. 배는 많이 컷는데 감은 전멸이니 내년에는 비료 좀 해야겠죠.

은숙이 노래를 텝으로 만들어서 소장님께 드렸는데 교무과 담당이라 하셔서 과장님께 말했더니 텝 가지고는 틀 수 없다시는데. 어떻게 안될지 모르겠군요. (6월)에 가저갔읍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하세요.

용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