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짜꿍 나의 짝에게
소낙비
하늘도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던가
천둥소리도 속 시원히 비를 쏟으니
천지간에 자욱한 물보라도
번쩍번쩍 눈이 빛난다.
오늘 아침 그 지겹던 더위를 속 시원히 쓸어 간 소낙비를 생각하며 읊어 본 4행시부터 선을 보이고 싶어졌소. 제목은 「소낙비」라고 붙여 두지요. 여기 표준으로는 장시간 접견이었지만 우리들로서는 너무나 짧고 아쉬운 시간이라고 할 밖에. 유리창으로 내다보며 손을 흔들던 식구들의 얼굴들이 눈에 선하구려. 기쁜 것은 그 얼굴들이 하나도 침울한 얼굴들이 아니고, 다들 활짝 웃는 얼굴로 회상이 된다는 일이외다. 진실을 지니고 확신으로 사는 사람의 승리를 보는 것 같군요. 좀 더 건강한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 건데, 그만 풍치 때문에. 그날까지만 해도 완쾌된 것은 아니어서 조심조심 씹어 먹어야 했는데. 오늘 점심부터는 아마 마음 놓고 씹을 것 같구려. 이제 완쾌된 셈이죠. 회복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뒤를 보고 있으니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나의 몸은 이제 완벽하게 회복되어간다고 보겠지요.
어제 아침 고린도 후서를 읽다가 6장 19절에서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울에게서 새삼 깨우침을 받았소.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고 정말 말할 수 있어야 우리는 정말 확신을 가지고 소신껏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오. 「뻐꾸기 소리」라는 시 한 편을 또 적어 볼까요?
뭇 별이 사라진 다음, 홀로
물러가는 밤을 지켜보던 샛별마저 가고
찬란한 아침이 동트기 전,
그 사이의 무거운 공간을 고요한 마음으로
메우며 말없이 섰는 저 깊은 산의
외로움을 벗 삼아 주는
구름 덮인 하늘의 목소리였었구나.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를 잠자리에서
불러내는 네 그윽한 소리는.
새벽마다 나를 깨우는 뻐꾸기 소리, 평생 잊지 못할 것 같구려. 그 그윽한 소리! 또 별이냐고 성근이는 불평일 테지만, 요새 새벽마다 샛별을(아득히 사라져 가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쳐다보노라면 앞으로 좀 더 샛별을 노래해야 할 것만 같은 심정이라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일기(日記)’라는 시 한 편을 마음속으로 궁그리고 있는데, 그 속에도 샛별이 다시 등장하는구려.
77년 7월28일에서 29일로 넘어가는 한밤중
아우별과 같이 동쪽 하늘에 머리를 내민 금성을 기다리다 못해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들리는데
나는 金宗吉의 조지훈론을 읽다.
아 ---
그런데 또
저 기침 소리
금방 숨이라도 넘어갈 듯, 숨죽이고
흰 벽을 쿵쿵 울리는
외로움 같은 것은 증발해 버린 지 오래인,
두 주일 동안 풍치로 아픈 아래쪽으로 왼쪽 끝 어금니가 다시 띵하며
왼쪽 관자놀이가 깊숙이 울린다.
베켙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읽고 싶어지다.
새벽 서너 시쯤 잠이 깨는 일이 있거든 밖에 나가서 동쪽 하늘을 쳐다보시오. 유난히 크게 빛나는 별이 보일 것이오. 그것이 샛별이라고 불리는 金星이죠. 요새는 날이 흐려서 하루라도 금성을 못 보면 내 마음이 어두워 오는 것 같은 느낌이라오. ’샛별’과 ‘뻐꾸기 소리’는 나에게 새날을 열어주는 하늘의 신호.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를 읊조리는 나의 입술은 기쁘기만 하죠. 그러나 앞의 ‘일기’라는 시는 좀 아프죠. 病舍라 밤이면 남의 잠을 깨울까 봐 숨죽이고 하는 기침 소리가 늘 가슴에 마쳐온다오. 마지막 생명선에서 홀로 버티는 넋의 처절한 안간힘 같은 걸 느끼곤 하죠. 나의 방 동창으로 새벽마다 뻐꾸기가 나를 불러내지만 때로는 ‘밤빗소리’도 나를 불러내곤 해요.
이건 散文詩.
김윤식, 김현의 ‘한국 문학사’를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죠?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눈을 뜯으며 창가에 나왔더니, 그건 천지를 뒤덮은 밤빗소리였습니다.
감시탑 조명등 불빛에 빗줄기들의 가는 허리가 선명합니다.
무지개가 서고 비둘기를 날리려면, 오늘 밤새, 내일도 하루 종일 더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밤빗소리가 왜 나를 불러냈을까?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입니다. 빗소리가 점점 세어져 갑니다. 선창 밑 어디 짐짝들 틈에 끼어 코를 골고 있을 요나를 깨우기라도 하려는 듯, 빗소리가 이젠 마구 기승을 부립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떠봅니다. 흥건히 젖은 속눈썹들 사이로 비쳐드는 불빛이 비에 젖어 밤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입니다. 밤이 울고 있습니다.
내가 대여섯 살 되던 때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방에서 혼자 소리 없이 울고 계시는 걸 뵌 일이 있습니다. 나도 괜히 가슴이 울먹여 뒷뜨락으로 돌아가 뽕나무에 기대서서 눈물짓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내가 이런 시를 머릿속으로 궁글린다고 내가 비감에 젖어있거니,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그냥 어떤 한순간의 분위기를 잡아 본 거니까.
‘새가정’이 들어오고 있어요. 방현덕 씨에게 고맙다고 해주시오. ‘기독교 사상’, ‘詩文學’을 보내 주시오. 정말 사둔 영감이 ‘사랑의 노래’를 외어서 낭독해 주셨다니 어찌 기쁘지 않으리요? 멋진 사둔을 보게 되어서 이중으로 기쁘군요. 정말 기뻐한다고 소식을 전해 주시오. 당신의 작품을 볼 수 없는 것도 유감이지만, 사둔 영감이 낭낭한 목소리로 변변치도 않은 나의 시지만 낭독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건 정말 유감이군요. 당신 작품이야 언제 볼 날이 있겠지만. 결혼 축하식 상보를 성근이더러 써 보내라고 하시오. 어떤 이들이 얼마나 왔었는지? 은숙이는 무슨 옷을 입고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등등. 영환이도 너무 큰 선물을 했군요. 아이들이 학생 신분인데, 500불짜리 응접실 셋트라니. 큰이모님, 꼬마이모님들도 너무 큰 선물을 했구요. 정성은 고맙지만.
영미 편지를 기쁘게 읽었다고 전해 주시구려. 요새 그림 공부한다고. 열심히 해서 멋진 화가가 돼야지. 시도 지금은 음악이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에, 영미하고 나는 같은 ‘아름다움’를 그리는 거죠. 영미는 크레욘이나 페인트 등 물감으로 그리고, 나는 글자로 그리고, 차이는 그것뿐이죠.
미 지상군이 철수하고 나면, Faye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군요.
우리 집에 노랑 나리꽃이 있다니, 나는 모르는 건데.
대구는 지금 형편없이 더울 텐데, 호근의 여름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호근이 번역한 ‘음악사’가 나왔으면, 그것도 읽어보고 싶구만요. 은숙이 성악과 과장이 되었다니, 축하해야 할 건지, 아닌지 모르겠소. ‘--장’이란 예술가에게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니거든. 겸손하게 자기 충실을 기하도록. 아아! 정말 은숙의 노래가 듣고 싶어라.
성근아,
아직도 읽을 책이 많이 있어서 서두를 건 없지만, 김주연, 김현 편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싶다. 김영태의 ‘초개수첩 (시집)’(집에 있음). NCC에서 나온 에큐메니칼 문고들도 좋고. Von Rad의 ‘구약 신학’ (허혁 옮김), Koch의 ‘성서 해석의 제문제’ (허혁 옮김). 이 두 책은 집에 있다. 또 ’안네 프랑크의 일기’도 영문으로 구해 보내주면, 읽고 싶구나. ‘장길산’ 1권은 서대문에서 읽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2권만 찾아 읽었기 때문에 두 권만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비시선에서 金冠植, 朴鳳宇의 것을 못 읽었고, 金宗吉 시선도 보고 싶다. ‘새삼스런 하루’는 찾아다가 집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우를 잘 돌보아 주어라. 고은 만나면, 시집과 ‘한국의 지식인’을 지금 읽고 있다고, 고맙다고 전해다오.
쇠고기 통조림도 곧 사 먹게 된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아빠.
한 집사님
섭섭한 마음,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눈 감으신 모습을 뵙지 못해 유감 천만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저는 영원히 살아계시는 이 장로님을 가슴에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톨 거짓 없는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의 60평생에 이 장로님같이 순수한 분을 가까이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축복이었다고 저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싱글싱글 웃으시는 이 장로님, 난대로인 어린이 같은 그 마음씨만 생각해도 나는 하늘나라 백성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이상 더 큰 축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한 집사님은 그런 분과 평생 한 지붕 밑에서 사셨다는 것을 더 없는 축복으로 알고 그와 함께 하늘나라를 거니시면서 하늘나라 백성의 참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그것처럼 기쁘고 복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기영이더러 할렐루야 레코드를 틀어달라고 하고 들으십시오. 하늘나라에서 이 장로님이 기뻐 웃으시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산소에 같이 가서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문목사
1977. 8. 4.
한빛교회 집사였던 한신환 집사에게 (남편은 한빛교회 장로였던 이종훈 장로가 소천한 후) 위로의 말씀을 쓰다.
시 네 편을 쓰다. 1. 소낙비, 2. 뻐꾸기 소리, 3. 일기, 4 산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