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0905 금식을 그치시고 바통을 넘겨주시길


당신께 1977. 9. 5

오늘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당신께서 기도 시작하신지 나흘이 되는군요. 두 손을 흔들며 들어가시는 건강한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2일 저녁 기도회에서 당신의 뜻은 전달되었고 기도의 불길이 이어저 나갈 것입니다. 함 선생님도 그날 만나 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우유를 권하시지만 체질에 안 맞는다 하셨다면서요. 하느님께서 힘 주실 줄 믿고 걱정은 안 합니다만. 지난번에도 6, 7, 8, 9일이 제일 힘들었다고 하시기에…

7일은 양성우 재판에 가야겠기에 8일에 내려가려고 생각합니다. 밖에서 당신 번역하신 성경을 읽으면서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시고 싶어서 입니다. 되도록 이면 8, 9, 10일을 같이 지내고 싶은데 9일 기도회에 계획을 보아서 하려고 합니다. 가까히 가면은 소식이라고 들을 수 있지 않을가요. 그리고 고난에 동참하는 심정에서 입니다.

9월 편지가 기대려지지만은 8일 목요일은 제일 힘드실 때니까 15일 목요일에 쓰시는 것이 역시 좋겠군요. 마음은 늘 전주에 가 있기 때문에 덤벙덤벙 하루하루가 지내가지만 당신 시가 많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정서하고 싶어서 붓글씨와 친하는 가을로 만들어야겠읍니다. 당신같이 독서의 계절로도 지내고 싶구요.

이것저것 기대리는 생활의 연속이여서 5월에 받고 못 받은 영금의 편지는 이제 단념하기로 했읍니다. 할머니 말씀이 너머 바쁘고 잠이 부족해서 안타까울 지경이라 하시니 그리 목마르게 기대리지 않기도 합니다.

9월 3일에는 삼춘을 면회하였는데 어머님, 창근 4남매, 엄마, 여섯 식구가 갔었고 가족들도 넷이 같이 가서 물건들도 넣고 하였읍니다. 혈압이 아직 좀 높은 편이여서 당신 말씀하신 호흡법을 이야기하였다 합니다.

조금 두꺼운 내복은 10월부터 받는다고 하니까 그때 보내기로 하죠. 부부일체라고 하는데 저는 당신의 큰 뜻과 경륜을 이해하고 따르지 못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겠지요.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나 봅니다.

마당에 배가 그리 크지는 않아도 제법 많이 열려 삼춘에게도 가저가고 창근이 어제 친구들과 와서 따 먹고 갔다합니다. 포도를 원 선생이 많이 가저와서 할아버님, 아빠 조와하신다고 포도즙을 할머님께서 만들어 감나무 밑에 묻어 놓으셨읍니다.

평풍이 커서 못 보내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이제야 길을 알아서 오늘 가지고 나갑니다. 창, 태근이는 좀 머리가 커서 외가에 갔다 오더니 모- 든 것을 비교하면서 건너갈 생각을 많이 한다니 아빠도 안계신데 엄마가 힘들어 하고 있읍니다. 창근이는 다시 도봉중학교로 전학이 되었는데 태근이는 가을 11월에나 될 것 같읍니다. 그동안 일 년 동안 저를 도와주던 아이가 결혼 준비로 9월 15일까지 하고 고만두겠다고 해서 다시 도와줄 아이를 구해야겠고 연탄 보이라가 녹이 많이 나서 가을에 고치고 온수 장치도 하기로 하였읍니다(이차희 소개하는 사람). 어머님 좀 따뜻하게 지내셔야겠지요.

지난번 편지에 당신이 5, 6세 될 때 아버님 우시는 것을 보고 뒷곁 뽕나무에 기대서 우셨다는 얘기. 어려서부터의 당신의 마음씨를 보는 것 같아 뭉클해 집니다. 오늘 아침 어머님께서는 “팽이”를 태우던 이야기를 하셨읍니다. 무엇에나 예민하고 감수성이 많으신 당신께서 “나에게 관심이 없어" 하시던 말씀 되새겨보고 있읍니다. 너머도 예술적인 데가 없고 매말라 있는 현실적인 자신을 도라보고 있읍니다.

하느님과 교통하는 귀한 시간을 방해하는 편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두서없이 몇 자 적었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도우심을 진심으로 빕니다.

할렐루야.

용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