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의 시작

    1992년 수요시위 톺아보기

    여러분은 ‘수요시위’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노란색? 일본군‘위안부’ 피해당사자? 평화로? 그것이 무엇이든 수요시위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한 켠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함께하기까지 1500번의 수요일을 지나왔습니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수요시위는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하기로 결의한 수요시위는 어느새 1500차를 맞이하였습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한 연대의 장이자, 평화와 여성·인권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한 수요시위의 처음은 어떠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수요시위의 시작을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현장 사진과 성명서를 통해 살펴보며  초창기 수요시위의 기억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 수요일 12시 평화로에서의 약속은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 해외에서 온 할머니

    "수요시위에 가야겠어"

    "수요시위에 가야겠어. 내가 아프다고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일본은 내가 포기한 줄 알 거야. 가야겠어." 우리에게 그림 할머니로 알려진 강덕경할머니는 1995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생활을 하신던 어느 수요일, 가누기 힘든 몸을 일으켜 옷을 입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해방되고서도 아주 긴 세월을 제 과거가 부끄러워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시위에서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제게는 큰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저 아이들 만큼은 내가 겪은 것을 다시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올바르게 밝혀야 합니다. 힘들지만, 제 경험을 통해서 일본이 어떤 일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유럽 의회의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이끌어낸 길원옥(평양출생) 할머니의 연설 중에서 "고향이 그리워도 돌아올수 없었디요"-이옥선 할머니   멀리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다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는 몇분이나 계실까요? 건강상의 이유로 이젠 오고싶어도 올 수 없는 수요시위에 그간 많은 할머니가 자리하셨습니다. 부끄럽다 생각한 과거, 힘겹게 살아낸 하루하루, 남북으로 갈라져 오갈 수 없는...이러저러한 이유로 할머니들은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끌려간 그 곳에 남아 오늘의 삶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용기내어 찾아온 고국의 수요시위에서의 그녀들의 목소리는 그 어떤 군중의 무게보다도 우리에게 깊고 큰 울림을 줍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할머니들은 때론 쌓였던 울분을 표출하기도하고 때론 함께하고 반기는 마음을 확인하고 힘을 얻어 갑니다. 비록 언어가 다른지라도 같은 아픔을 가진 해외 피해자 역시 한 마음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녀들은 증거가 되어 스스로의 역사를 써 내려갑니다.      

  • 세계의 수요시위

    함께 외치는 평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은 위안부 문제를 넘어서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및 무력 갈등 지역의 여성인권 문제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는 한국 여성운동에서 시작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곧바로 폭넓은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면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위안부 문제의 발굴과정에서부터 한국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일본단체와 협력했으며, 정대협이 발족된 후에는 정대협을 중심으로 아시아 피해국의 연대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2000년에는 전 세계의 국가 성폭력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이 힘을 모아 2000년 법정을 개최하는 성과를 낳았다. 이후 정대협은 해외동포화 연대하여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회에서 위안부 관련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2014,한울아카데미) 중에서]  

  • 0차 수요시위

    정신대-'무관심'서 끌어내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30여년 동안 한주도 빠짐없이 진행된 이 날의 시위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열기와 더불어 한국 여성운동의 성장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19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의 설립은 당시 한국의 거의 모든 여성단체가 함께 했고, 이 문제를 한국과 일본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집회와 기자회견이 수요시위가 시작되기 이전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1991년 12월 정기 수요시위를 결의할 때만 해도 지금에 이를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수요시위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정부를 향한 요구의 장이자 국내외 경과보고의 장, 그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의 함양과 인권교육의 현장 및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치유와 다짐을 실행하는 구심점으로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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