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온 할머니
"수요시위에 가야겠어"
"수요시위에 가야겠어. 내가 아프다고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일본은 내가 포기한 줄 알 거야. 가야겠어." 우리에게 그림 할머니로 알려진 강덕경할머니는 1995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생활을 하신던 어느 수요일, 가누기 힘든 몸을 일으켜 옷을 입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해방되고서도 아주 긴 세월을 제 과거가 부끄러워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시위에서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제게는 큰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저 아이들 만큼은 내가 겪은 것을 다시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올바르게 밝혀야 합니다. 힘들지만, 제 경험을 통해서 일본이 어떤 일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유럽 의회의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이끌어낸 길원옥(평양출생) 할머니의 연설 중에서 "고향이 그리워도 돌아올수 없었디요"-이옥선 할머니 멀리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다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는 몇분이나 계실까요? 건강상의 이유로 이젠 오고싶어도 올 수 없는 수요시위에 그간 많은 할머니가 자리하셨습니다. 부끄럽다 생각한 과거, 힘겹게 살아낸 하루하루, 남북으로 갈라져 오갈 수 없는...이러저러한 이유로 할머니들은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끌려간 그 곳에 남아 오늘의 삶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용기내어 찾아온 고국의 수요시위에서의 그녀들의 목소리는 그 어떤 군중의 무게보다도 우리에게 깊고 큰 울림을 줍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할머니들은 때론 쌓였던 울분을 표출하기도하고 때론 함께하고 반기는 마음을 확인하고 힘을 얻어 갑니다. 비록 언어가 다른지라도 같은 아픔을 가진 해외 피해자 역시 한 마음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녀들은 증거가 되어 스스로의 역사를 써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