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콘텐츠
[지난편지들] 하늘로 보내는 연말 보고서
성모님 전상서 안녕하세요, 성모님!! 이렇게 인사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지금쯤은 만삭의 몸으로 예루살렘 어딘가를 걷고 계실 때를 회상하고 계신 건 아니신가요? 저도 지난 일 년 동안 살아온 것을 기억해내며 하느님과 은인들에게 보고를 하려고 하는데요. 모든 걸 잘 기억해낼지 모르겠지만요. (독감예방접종을 했는데도 감기는 여전히 따라다니고 약기운으로 좀 멍한 상태거든요.) 하여튼 성모님도 아시다시피 매년 연말엔 제가 소식을 전하는 거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빠진 것들은 성모님께서 전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올 1년은 작년보다 좀 더 잘 살아보자 막달레나공동체 식구들 모두가 행복한 한 해가 돼보자, 저 또한 여행도 많이 하고 올해는 기필코 독립도 할 것이다 등등 결심만으로 1월을 보냈구요. 2월엔 강화 보듬네 언니들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콧물 흘리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3월엔 위암 말기였던 조경옥 마리아언니 하느님 곁으로 보내며 그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것 후회하며 보냈구요. 4, 5, 6월은 방염고사다 지도점검 준비며 미숙했던 행정업무 익히며 분주히 보냈고, 7월엔 저희집 창립 22주년 행사하느라 좀 바빴었죠. 맛있는 음식과 축하공연, 후원물품 경매, 벼룩시장 등 막달레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얼마나 흡족해 하셨는지 아시죠? 그리고 성모님, 그날 제가 떡장사 하는 것 보셨죠? 강화에서 직접 뜯은 쑥으로 만든 “큰언니표 쑥떡”.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다 팔려버렸잖아요. 장사는 그렇게 해야 된다니까요. 8, 9, 10월은 여름휴가다 명절이다 또한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아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사실 8월부터는 매월 한 번씩 은인들을 위한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요. 저희와 인연 맺은 신부님들이 오셔서 미사를 봉헌해 주시는데 참석하시는 은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답니다. 성모님 감사드려요. 예수님께도 그렇게 전해주시구요. 다음 달에도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도록 소문 좀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1월엔 김장의 달이었는데요. 올해의 김장은 예년과는 다르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김장이었습니다. 김장 이외에 고추도 삭히고 무말랭이도 해보고 무장아찌도 담고 몇 가지 밑반찬도 준비해보았어요. 어쨌든 김장 첫날과 둘째날엔 알타리, 갓김치, 동치미 한 항아리씩 담아서 땅에 묻고 다른 항아리엔 통무우를 그득 담아 소금을 켜켜이 뿌리고 틈새마다 고추씨를 뿌려 돌로 꾹꾹 눌러 봄에 먹을 짠 무를 담고, 세 번째 날엔 잘 가꾼 배추밭에서 실한 놈으로 260포기 골라 뽑고, 나중에 70포기마저 뽑아 보탰습니다. 4쪽으로 갈라 절인 배추를 다섯 번씩 씻어 건져놓고, 쪽파, 대파, 마늘, 생강, 찹쌀죽, 청각, 생새우, 멸치젓, 새우젓을 고춧가루 섞어 놓은 무채에 소금 적당히 넣어 보기만 해도 맛깔스러운 김치 속을 버무려놓고, 물이 쭉 빠진 1320쪽의 배추 꽁지를 예쁘게 다듬어 놓은 다음, 햇살 따뜻한 장독대 옆에 돗자리를 깔고 널찍이 자리를 만들어 놓았지요. (올해엔 날씨가 너무 좋아 뒷마당에서 김장을 했습니다) 물빠진 배추를 날라다 주는 사람, 엉덩이 보호한다고 빈 박스를 깔고 앉아 속을 넣는 사람, 속넣은 배추를 김치광에 날라다 주는 사람, 굵직하게 썰어놓은 무를 켜켜히 넣어가며 묻어놓은 항아리에 담는 사람, 산처럼 쌓였던 배추가 바닥을 보이고 김치 냉장고들와 항아리가 하나씩 채워지며, 아무도 못 말리는 막달레나공동체의 억척스러운 대표주자들 6명이서 1320쪽의 어마어마한 김장행사를 6일 끝냈습니다. 소쿠리와 고무통을 씻어 엎어놓고, 장독대의 물청소와 마지막으로 고무장갑과 신었던 장화를 씻어 엎어놓는 등 김장 뒷설거지까지 끝내고 났는데, 하느님 어떻게 해요. 허리가 뻣뻣하니 펴지질 않고 말을 안 듣네요. 이제 저도 나이 먹은 티를 내나 봐요. “얘들아 나도 늙었나보다. 힘들어서 이제 김장 못하겠다. 내년부턴 우리도 김치 그냥 사서 먹자.” “허이구, 큰언니가 잘도 그러겠다.” “그 말은 몇 년 전부터 했는데요.” “그러지 말고 내년부턴 그냥 조금씩만 담가요.” “그려 그럴게. 이제부터 쬐금만 담가서 우리만 먹자.” “과연 그럴까요.” “하여튼 누구든 나보고 김치 한 포기만 달라고 해봐. 그냥 주둥이를 잡아 째자. 알았지?” “과연........?” 무를 빚어 넣어 끓인 생태국에다 동충하초 먹여 키웠다는 돼지목살을 한 덩어리 떼어 푹 삶고, 통깨와 생굴을 듬뿍 넣어 무친 겉절이에 배추 속쌈으로 밥 두 공기씩을 뚝딱 했는데요. 그득그득 채워진 김치항아리 뚜껑과 김치냉장고를 바라보며 먹는 그 밥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며칠 동안 힘들었던 것은 금새 다 잊어버렸습니다. “뭐 하세요?” “응, 김장.” “강화예요?” “응” “맛있겠다, 나도 가서 거들 걸. 몇 포기 했는데요?” “서른 포기.” “정말?” “삼백 서른포기.” “내 꺼도 있겠네요.” “당연하지. 통 가져와.” 김장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거의 10분 간격으로 걸려오는 전화 내용을 듣던 우리의 김장팀. “저봐, 저봐. 누구 주둥이를 찢어 찢긴, 자기가 더 먼저 준다고 하구선.” “큰언니 주둥이부터 찢어야지~” 하지만 벌써 열닷집을 나눴는데도 제 주둥이는 건재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대푠데 대표 주둥이를 찢는다니요. 이런 버릇없는 직원들을 어찌할까요? 김장 끝내고 난 날 저녁, 앞으로 추워지겠다는 기상청의 예보였습니다. 하느님 만세입니다! 어찌 그리 저희 김장날 좋은 날을 주셨는지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깔스럽게 담근 김치 후원미사 때 오셔서 맛보시고 다음에 김치 장사 할 때 많이 팔아주시도록 성모님께서 여기저기 소문 좀 내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12월은 성모님께서 아시다시피 저희집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모니카, 골롬바, 도로테아, 사비나, 마르타, 가타리나, 앨리사벳, 프란치스카. 누군지 아시죠? 이번에 하느님의 딸로 내어날 친구들이랍니다. 와우, 8명이나 돼요. 막달레나 창립이래로 가장 많은 친구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10개월 동안 교리공부하고, 9일기도, 성서쓰기, 미사참석, 묵주기도, 성지순례 등 얼마나들 열심히 하는지. 성모님 보시기에도 참말로 예쁘죠? 작년에는 입던 츄리닝 한 벌 벗어주고 꼬드기거나, 반강제적으로 입교시킨 친구가 있기도 했지만, 올핸 정말 아니었거든요? 이 모두가 성모님의 보살핌과 은인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봅니다. 이제는 힘들었던 삶은 뒤로 하고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된 우리 친구들. 어떤 어려움도 견디어낼 수 있는 용기를 주시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려주세요. 그럼 일년 동안 있었던 커다란 일들은 다 보고 드렸죠? 저희 기도를 얼마나 많이 들어주셨는지, 너무 감사합니다. 근데요, 성모님. 한 가지 안 들어주신 기도,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올 초에 제가 독립을 선포했었는데 그냥 내년으로 넘어가야 하나요. 큰소리 빵빵 쳤는데, 제 체면이 왕창 구겨져서요. 그래도 괜찮아요. 독립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닌데요, 뭐! 어쨌든 우리 공동체 식구들 일 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신 것 너무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꾸벅. 꼭 전해주세요. 아기예수님 만세 만만세! 2007년 12월에 사) 막달레나공동체 대표 이옥정 콘세크라타 올림 이글은 2008년 1월에 작성되어 홈페이지에 수록된 지난편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