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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부문(密陽府門) - 밀양읍성 남문 공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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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조선총독부 철도국(朝鮮總督府 鐵道局)이 발행한 사진그림엽서로, 1902년 철거되기 이전의 밀양읍성 남문 공해루(拱海樓)와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도판번호 (9), 영문으로 THE GATE LEADING TO THE TOWN MITYANG., 한문으로 密陽府門이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다. 영문표제는 이 문을 ‘밀양 읍내로 들어가는 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도상의 중층 문루와 현판, 밀양읍성 관련 기록을 종합하면 밀양읍성의 정문이었던 남문 공해루를 촬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석축에 홍예식 통로를 낸 성문과 그 위에 세운 대형 중층 문루가 화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문루에는 공해루로 보이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성문 아래와 전면에는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다. 한복과 갓을 착용한 남성들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이 성문을 통과하거나 그 앞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나타나, 성문이 방어시설에 그치지 않고 밀양 읍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주요 통행로로 기능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성문 좌우에는 경사진 성벽과 민가 또는 가설 구조물로 보이는 시설이 이어져 있어 구한말 밀양읍성 주변의 생활경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밀양읍성은 1479년 처음 석축으로 축조되었으며, 이후 임진왜란으로 크게 파괴된 뒤 복구되었다. 후대 기록에는 동·서·남·북의 네 성문과 동·서 야문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이 가운데 남문은 **공해루(拱海樓)**라 불린 읍성의 정문으로 중층 3칸의 규모를 갖추어 네 성문 중 가장 컸다. 공해루를 포함한 밀양읍성의 사대문과 상당 부분의 성벽은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과정에서 철거되었고, 성돌 일부는 철도공사에 이용된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본 자료의 도상은 1902년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확정할 수 있으며, 오늘날 남아 있지 않은 밀양읍성 남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반면 사진그림엽서 자체의 발행은 그보다 뒤이다. 조선총독부철도국은 1910년 설치되었으므로, 본 자료는 철거되기 전의 사진 원판을 총독부철도국이 후대에 다시 활용하여 제작한 사진그림엽서로 판단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자료는 구한말 밀양의 사라진 도시경관을 식민지기 철도관광 홍보매체가 다시 선택·편집하여 유통한 사례이기도 하다. 조선총독부철도국은 철도망뿐 아니라 각지의 명승·고적·도시경관을 사진그림엽서와 관광안내물로 제작하여 철도여행의 목적지로 소개하였다. 1928년 여행안내서에서도 총독부철도국이 철도와 조선 각지에 관한 관광 인쇄물을 적극 배포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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