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와 ITF 양측이 1994년 파리 약속에 이르는 과정과 IOC가 태권도를 2000년 정식종목으로 결정한 내용이다.
요약 : 남한의 WTF 태권도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자 태권도를 둘러싼 남북의 경쟁도 심화되었다. 1991년 IOC 총회에서 WTF태권도가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 채택되지 못하자 북한이 주도하는 ITF측이 WTF-ITF의 통합이 되지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남한의 대한태권도협회에 두 조직의 통합 문제를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다루자고 제안했으나, 1990년대 장관급회담에서 주요 의제가 되지 못했다. 1994년 남한은 그해 9월 파리 IOC 총회에서 WTF태권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자 북한이 주도하는 ITF는 올림픽 종목 채택에 앞서 WTF와 ITF 두 단체의 통합이 필요하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1994년 9월 5일 IOC는 파리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승인했다. 당시 WTF태권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주도한 김운용 전 총재는 2012년 기고문에서 “IOC는 두 개 세계연맹을 통합해야만 올림픽 종목으로 넣어 주겠다고 했지만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고 난 뒤 통합하겠다고 밀어부쳤다” 고 회고했다. 북한이 주도하는 ITF는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유지를 위해 두 단체가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WT와 ITF 양측이 2002~03년 부산에 이어 대구 합의에 이르는 과정과 2002년 IOC가 태권도를 2008년 정식종목으로 결정한 내용이다.
요약 :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태권도는 남과 북이 직접 교류하는 사례가 많아졌다.40 올림픽 참가를 위한 두 연맹 사이의 국제교류도 활발해졌다. 2002년 최홍희 사망 이후 북한은 ITF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북한은 남북의 직접적인 교류와 두 연맹의 국제교류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달리 남한에서는 2004년 김운용의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직 사임으로 태권도계 리더십이 국내외 단체로 분산되어 북한이 제기한 교류와 통합 논의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WTF ITF IOC 로잔 합의,
2005년 IOC 2012년 정식종목 결정
WT와 ITF 양측이 2005년 로잔 합의에 이르는 과정과 2005년 IOC가 태권도를 2012년 정식종목으로 결정한 내용이다.
요약 : 김운용 위원의 구속으로 북한의 장웅 위원과의 IOC 채널이 단절되자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를 위한 새로운 라인이 가동됐다. 당시 남한의 대한올림픽위원회(NOC)와 새로 선출된 조정원 WTF총재 측은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가 낙관적이라고 보고 남북이 주도하는 두 연맹의 협력보다 WTF의 내부 개혁에 더 집중했다. 그러나 2005년 7월 IOC 총회에서 태권도는 1~2표 차이로 간신히 통과되어 종목 탈락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었다.
2006년 WTF ITF 도하 합의,
2009년 IOC 2016년 핵심종목 결정
WT와 ITF 양측이 2006년 도하 합의에 이르는 과정과 2009년 IOC가 태권도를 2016년 핵심종목으로 결정한 내용이다.
요약 : 2005년 12월 13~16일 제주에서 열린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태권도의 통일적 발전을 위해 WTF와 ITF간의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2006년 9월 20일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IOC 위원장인 자크 로게, WTF 조정원 총재 그리고 ITF 장웅 총재가 양 단체의 통합 문제를 논의했다. 2006년 12월 3일(한국시간) 하계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카타르 도하에서 남북이 주도하는 WTF와 ITF가 태권도 기술통합문제를 다룰 ‘태권도통합조정위원회’ 구성에 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2007년 10월 24일 WTF와 ITF는 공동보도문을 통해 “22일과 23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태권도통합조정위 제3차 회의를 개최, 통합조정위 산하에 품새와 겨루기 분과위원회를 설치해 태권도의 기술 통합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 측의 만남은 구체적인 통합안을 내놓지 못한 채, 남북교류에 소극적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9월 제5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2013년 WTF ITF 독일 합의,
2013년 IOC 2020년 핵심종목 결정
WT와 ITF 양측이 2013년 독일 합의에 이르는 과정과 2013년 IOC가 태권도를 2020년 핵심종목으로 결정한 내용이다.
요약 : 2010년 1월 7일에도 WTF 조정원 총재는 스포츠와 무도를 분리하는 입장을 밝혔다. 국기원이 해외지부를 설치하면 WTF와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기자 질문에 “국기원은 무도로서 태권도를 발전시켜야 하고, WTF는 올림픽 스포츠로서 태권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고 설명했다. 2011년 9월 8일 북한의 장웅 IOC 위원 겸 ITF 총재가 남북 체육교류와 태권도 통합 협상의 재개를 희망했다. 2013년 3월 한반도가 급격하게 긴장 상태로 빠져든 가운데 두 연맹의 총재는 태권도를 올림픽에 계속 잔류시키기 위해 WTF와 ITF가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9월로 예정된 IOC 총회의 종목 결정을 앞두고 두 연맹이 상호존중의 원칙에서 북한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돕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두 연맹은 참가 방안을 두고 기존의 ‘WTF’ 방식과 ‘다른 방식’ 사이에서 논쟁을 계속했다.
2014년 WTF ITF 난징 합의,
2017년 IOC 2024년 핵심종목 결정
WT와 ITF 양측이 2014년 난징 합의에 이르는 과정과 2017년 IOC가 태권도를 2024년 핵심종목으로 결정한 내용이다.
요약 : 2014년 8월 21일 중국 난징에서 조정원 WTF 총재와 장웅 ITF 총재가 발전적 협력을 약속한 합의 의정서에 서명했다. 이 의정서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함께 서명했다.총 4개 항으로 이뤄진 의정서에는 상호 인정과 존중, 상대방 대회 교차출전, ITF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추진, 다국적 시범단 구성 등의 합의 사안이 담겼다. 그러나 ITF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방식에서는 명확한 합의가 없어 논의를 계속 하기로 했다. 합의에 따라 2015년 5월 12일 ITF시범단이 러시아 첼랴빈스크 트락토르 아레나에서 WTF가 주관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합께 시범 공연을 했다. 2017년 6월 24일에도 ITF와 WT(WTF에서 변경) 시범단이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합동 시범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두 연맹은 난징에서 합의한 올림픽 참가 방법을 두고 기존의 WTF방식과 다른(ITF) 방식 사이에서 논쟁을 계속했다. 그런 가운데 2017년 9월15일 IOC는 페루 리마에서 열린 총회에서 태권도를 20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의 핵심종목으로 확정했다.
2018년 WTF ITF 평양 합의,
IOC 2028년 핵심종목 결정 전망
WT와 ITF 양측이 2018년 평양 합의에 이르는 과정과 2020년 이후 IOC가 태권도를 2028년 핵심종목으로 결정하는데 영향을 준 내용이다.
요약 :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식전행사에서 ITF와 WT 시범단이 합동 시범공연을 펼쳤다. ITF 시범단이 WT 행사에서 시범을 보인 적은 있으나 올림픽 무대에서 한 자리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WT 시범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4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기에도 WT시범단의 방북 공연이 있었다. 11월 2일 WT와 ITF가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에서 태권도 통합 및 발전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 내용은 'WT와 ITF의 통합을 준비할 공동 기구를 발족하고, 양측 태권도 시범단이 합동시범단을 구성해 월드 투어를 진행하고, 국제대회를 공동 개최하고, 서로 다른 규칙과 용어를 통일하기 위해 남ㆍ북 선수들의 합동 훈련을 진행한다' 등이다. 두 단체는 서로의 단증과 심판자격증을 상호 인정하고, 태권도를 유네스코(UNESCO)에 등재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고, 여러 합의 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향후 매달 한 번씩 실무회의도 열기로 했다. 평양 합의는 2014년 난징에서 합의한 협력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좀 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은 것이었다.
출처: 홍성보(2021).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교보문고, 24-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