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구 합의, 2002년 IOC 2008년 정식종목 결정

WT와 ITF 양측이 2002~03년 부산에 이어 대구 합의에 이르는 과정과 2002년 IOC가 태권도를 2008년 정식종목으로 결정한 내용을 정리했다. 요약 :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태권도는 남과 북이 직접 교류하는 사례가 많아졌다.40 올림픽 참가를 위한 두 연맹 사이의 국제교류도 활 발해졌다. 2002년 최홍희 사망 이후 북한은 ITF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북한은 남북의 직접적인 교류와 두 연맹의 국제교류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달리 남한에서는 2004년 김운용의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직 사임으로 태권도계 리더십이 국내외 단체로 분산되어 북한이 제기한 교류와 통합 논의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출처: 홍성보(2021).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교보문고, 3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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