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2월 <인간적인 문익환>

[이달의 기억, 기록] 1976년 59세 때 3.1민주구국선언문 작성

[2월의 문익환]   

▲ 1899년
늦봄의 증조부가 함경북도 종성, 회령의 네 가문 140여 명과 함께 두만강 건너 북간도 명동 지역으로 이주

▲ 1937년(20세)
만주 용정 광명학교 졸업
 

◇ 광명학교 졸업사진(맨 오른쪽, 1937. 5. 5)  

▲ 1941년(24세)
도쿄에서 유학 중 일본 군국주의 강화 분위기에 서울로 돌아옴. 폐병 치료차 금강산에 휴양할 계획

▲ 1945년(28세)
만주 신경 중앙교회에서 목회 활동 중, 윤동주의 죽음(2월 16일)을 전해 들음

▲ 1955년(38세)
부친 문재린 목사 인도로 서울중앙교회 창립. 초기에는 실향민들이 많이 모였고, 모친 김신묵과 아내 박용길이 헌신적으로 봉사. 1965년 한빛교회로 재탄생

▲ 1976년(59세)
‘3·1민주구국선언’을 준비. 3.1절을 앞두고 장준하의 사진을 바라보며 생각했고, 백기완의 요청도 받은 상황에서 성명서를 작성. 장남 호근이 타자하고, 아내 박용길이 낭독용 큰 글씨로 정서, 이해동 목사가 등사함
 
◇ '3.1민주구국선언' 문익환 목사 친필 원고. 당시 맡고 있던 신구교 『공동번역 성서』의 구약번역을 완수하기 위해 본인의 이름은 포함하지 않았다. 

▲ 1989년(72세)
9일, 유원호가 도쿄에 가서 정경모로부터 김일성 주석의 방북 초청장 복사본을 받아 옴. 2월 정주영이 방북하고 전민련의 판문점행이 저지당하는 등 여러 상황에 따라 방북 결심도 변동을 겪었지만 결국 3월 말 방북 결행

▲ 2005년
금강산에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출범. 문익환 목사가 방북 시 제안한 사업이었음


월간 문익환_2월 <인간적인 문익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