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차라리 절구통에 쿵쿵 이마를 찧었다”

이우정 장로께





『사회와 사상』의 대담 잘 읽었습니다. 이젠 누가 뭐래도 여성 운동권의 대모(代母)가 되셨군요. 대담 다 좋았고 전적으로 동감이었지만, 이 땅의 70년대의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발화점이 여성이었다는 게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좀 불만입니다. 70년대에 동일방직 해직 근로자들의 복직 운동을 좀 거들 때 나는 정말 남자라는 게 부끄럽고 창피했었다구요. 여성 근로자들은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데 남성 근로자라는 것들은 회사의 앞잡이가 되어 여성 근로자들에게 똥을 퍼먹이고, 두들겨 패는 깡패들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87년 이후 노동운동을 남성들이 주도하게 되었다지만, 투쟁의 강도에 있어서는 아직도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을 못 따른다는 게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고백이거든요. 5가의 민주화운동의 발화점은 301호실 아닙니까? 양심수 석방 운동은 민가협만큼 뜨거운 데가 없는 거구요. 



여연 이우정 회장!! 남자들에게 밀려나지 말라구요. 알겠습니까? 사실 오래전부터 이 장로에게 차정미 여성 문제 시집 『눈물의 옷고름 깃발 삼아』 출판 축하회를 여연에서 여는 게 어떠냐고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고정희의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출판 축하를 같이해도 좋겠지요. 차정미 씨 시집 출판 축하회는 민가협에서 주최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민가협 어머니들의 아픔을 많이 노래하고 있으니까요.





할머니 눈물 깊은 주름살 속



장강처럼 흐르던 눈물



어머니 무명 옷고름



촉촉이 적시고도 흘러



밤마다 나의 베갯잇 흥건히 고였어요



할머니 소리 없는 울음



가슴속엔 천둥 우레가 울고



어머니 



내색하지 않는 아픔



대못 박힌 마음속엔 피멍 들어



난 차라리



절구통에



쿵쿵 이마를 찧었어요





「어머니의 가슴」 중에서





어때요? “난 차라리 절구통에 쿵쿵 이마를 찧었다”는 말, 이런 저항의 언어를 일찍이 이 땅 어느 여성의 시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까? 할머니, 어머니를 옥죄던 아픔, 절망, 서러움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 아니 앞으로 언제 가서나 걷힐지 몰라 울부짖는 차 시인을 모시고 한마당 벌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발굽 소리에



어머니



풀잎처럼 짓밟히셨지요



탱크 발아래



어머니



꽃잎처럼 이지러지셨지요



눈멀고 귀먼 채



수천 번 헐벗은 겨울나무로 서서



벌목의 붉은 민둥산이신 어머니



비무장 지대 녹슨 철조망이신 어머니



학살의 불춤 훨훨 타올라



온몸 사르시는 어머니



두 동강 난 한반도



몸뚱이신 어머니





「어머니, 최후의 식민지 1」 중에서





분단된 조국, 그 아픔이 그대로 어머니라는군요.



“프라이팬 위에서 지지직 생선 타들어 가는 걸 보며 제 가슴 한 조각 노릿노릿 지져지는 것 같고, 주전자 속 서둘러 더글더글 끓이는 것이 볶은 보리가 아니라 제 속인 것 같은 여인들의 일과”(「나의 일과 I」) 중에서 차 시인은 쓰러짐이 일어섬보다 더욱 어렵다는군요. 지는 것이 이기는 것 보다, 눈감아 버리기가 새롭게 눈뜨기보다 어렵다는군요. 여인들의 삶은 마구 파괴만 당하는 것, 그러나 쓰러져 주는 것이 차라리 더 어렵다는군요(「오늘」). 한마디로 처절하고 비장한 인생이라는군요. 이 시집은 여성의 수난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사회 전반에 걸친 모순과 비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군요. 이 시집 꼭 사서 읽으시고 많이 읽히도록 하십시오. 감옥의 겨울은 11월에서 3월까지 다섯 달인데, 금년은 아직 전연 겨울을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그만큼 건강해진 거지요. 건투, 건투, 건투.





문익환





당신께





사흘을 못 만났는데, 한 열흘은 못 만난 것 같은 느낌이군요. 당신의 몫도 늘어난 데다가 내 몫까지 감당해야 하는 분주한 몸, 한 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죠. 다섯 번째 옥바라진데, 요새 당신은 어느 때보다도 눈이 빛나고 있어요. 나는 당신의 빛나는 눈에서 겨레의 밝은 내일을 보아요. 나의 하루하루의 문을 열어주는 꿈도 대체로 밝은 꿈들이거든요. 오늘 아침에는 기장 총회가 주최하는 평화와 통일 기도회에 내가 설교하기로 되어 어느 교회로 갔는데, 목사들은 모여들고, 성가대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성가를 부르는 꿈과 함께 눈을 떴거든요. 뚜렷이 기억되는 얼굴은 정하은 박사의 얼굴이었어요. 정하은 박사가 그렇게 건강한 얼굴로 그렇게 시원스레 웃는 얼굴을 일찍이 보인 일이 없어요. 평화와 통일에 대한 확신에 찬 얼굴이었고 웃음이었어요. 그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주구료. 평화와 통일이 이제 곧 온다는 하늘의 소식을 가지고 나에게 넋으로 왔었나 보군요.





영미야





네 눈은 그동안 늘 피곤해 보였거든. 그런데 어제의 네 눈은 맑고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어제도 말했지만, 그림을 그려라. 펄쩍펄쩍 뛰는 힘, 치솟는 율동, 겨레의 아름다운 정신이 네 붓끝에서 살아나는 걸 보고 싶구나.





1989. 11. 1.






잡지에 실린 이우정 장로의 대담을 읽고 그를 격려하며 여성 시인들의 출판기념회를 열어줄 것을 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