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나 비록 생명의 본질, 인생의 본질은 기쁨이라고 믿고 하루하루 기쁨으로 살아가지만, 여기 들어와서는 웃을 일이 별로 없거든요. 사람의 얼굴 근육은 웃을 때 제일 많이 운동하는데, 웃을 일이 없으니까 얼굴 근육이 피지를 못하고 근엄해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오늘 아침에 앙천대소할 유쾌한 일이 있었어요. 담당 부장이 아침에 나와서 묻더군요. “계관 교수가 뭡니까?” “그거 아마 영국에 있는 제도일 텐데, 특출한 교수에게 주는 명예 칭호일 겁니다.” 이 대답을 듣고는 어디 가서 국어사전을 뒤져 보고 와서 왈 “본 대학 교수가 아닌 사람으로 초청되어 와서 교수하는 사람을 말하는데요.” ‘계관 교수’가 아니라 ‘객원 교수’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이 경상도 사람들 ‘에’와 ‘애’를 분간 못 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지요.
오늘 이기형 선생과 박용수 동지, 정말 반가웠군요. 인간 진국들이지요. 그런 이들과 같이 사귈 수 있다는 게 행복이지, 뭐가 행복이리오.
민주구국선언 사건 2심 증인으로 우리와 변호인단이 요청해서 채택된 분이 지금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정치 분야에서는 연대의 오세응 교수,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장×× 교수(이름이 생각나지 않음), 노동 관계는 탁희준 교수, 언론 관계는 천관우 씨, 문정현 신부의 활동에 관해서 전주 은명기 목사 정도라고 생각되네요. 피고들도 증인들에게 물을 수 있다는 재판 절차도 그때 비로소 알았죠.
그때 우리에게 충격을 준 것은 장×× 교수의 경제 문제에 관한 증언이었지요. 경제 문제에 관해서 우리와 같은 견해를 늘 표명해 오던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요청했는데, 전연 반대되는 증언을 하는데 우리는 그냥 어이없었고 장 교수 심문을 맡았던 이돈명 변호사가 당황한 건 말할 것도 없었죠. 아침에 법정에 나갔더니 장 교수는 안 나올 거라고 변호사들이 말했는데, 안 나온다던 사람이 나와서 우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으니, 그가 얼마나 심한 압력을 받고 나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지요.
오세응 교수의 정치 문제에 관한 증언도 좋았지만, 탁희준 교수의 증언 자세는 성실 그것이었지요. 카드 상자까지 가지고 나와서 증언해 주었으니까요. 그의 심문을 맡은 것이 황인철 변호사. 그도 육법전서를 펼쳐 법조문을 읽어 가면서 성실한 변호사의 자세를 보였구요. 그 자리는 김대중 씨의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를 100% 과시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지요. 노동법 몇 조 몇 항 하며 법조문을 외면서 질문하는데, 변호사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 같더군요.
이렇게 해서 모든 재판 절차가 끝나고 선고 공판이 열렸지요. 선고 공판정의 분위기는 어제 이야기를 했으니까 더 쓸 것 없구요. 아무튼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문익환 넷이 5년 형을 선고받았지요. 윤보선 씨와 함석헌 옹은 고령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내려졌지만요. 정일형 의원 내외가 그때 고민이 많았지요. 의원직, 변호사직을 박탈당해야 할 처지였으니까요.
1992. 4. 8.
2심 재판에 나온
피고인측 증인들에 대한 여러가지 기억을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