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에게서 나에게 없는 남성적인 면을 본다

 호근에게

 

토요일에는 뜻밖에 반가웠다. 그전 같으면 ‘반가웠었다’라고 썼을 텐데, 왜 오늘은 그렇게 안 썼느냐고 묻고 싶겠지. 이오덕 선생에게서 배운 거다. 우리말에는 본래 ‘었었다’식 대과거란 시제는 없다는구나. 이 한 점에 관해서만 나는 이 선생의 주장에 동조할 수 없다. 말이란 변하고 발전하는 건데, 외국어의 영향으로 시제가 분화되어 대과거형이 무리 없이 생긴 건데, 그리고 이것은 바람직한 발전이라고 생각되거든.

‘영금이 어제 왔다’는 어제 와서 지금은 그대로 있는 걸 말하지. 소위 현재완료형 아니겠니? ‘영금이 어제 왔었다’는 왔다 갔다는 걸 말하고. 그러니 ‘반가웠다’는 그 반가운 심정이 아직도 계속되는 걸 말하는 거 아니겠니? 그런데 이런 때는 ‘반가웠었다’로 쓰고 싶어지는 거야. 이오덕 선생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지적을 받고 보니 우리가 대과거형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지.

공휴일에 접견은 처음이었구나. 바우가 올 수 있어서 공휴일을 택한 건데, 특별 접견이 안 돼서 손은 못 잡아 보아 유감이었지만, 그렇게 얼굴이라도 보고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은숙이 진단을 내가 잘못 내린 걸 알았다. 은숙이 손이 아픈데 하나는 삼초경인 것이 틀림없지만, 손바닥 쪽 아픈 것은 비장이 아니고 간 쪽이다. 노태훈의 소개를 받아서 부항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부항 치료로 간도 잘 낫는다는데…….

방제명이라는 사람, 언제 보아도 배맛처럼 시원하다고 생각지 않니? 방제명이나 백기완 같은 사람을 내가 좋아하는 까닭을 알겠니? 그들에게 있는 남성적인 면일 거다. 나에게는 너무나 결여되어 있는 남성적인 면, 내가 그리도 갖추어 갖고 싶으면서도 없는 남성적인 면을 그들에게서 보거든. 그리고 그게 그렇게 좋고.

그러고 보면 난 어쩔 수 없이 여성적인 면이 강한 게 아닐까 싶구나. 너희 눈엔 내가 어떻게 비치지? 내가 도달한 경지 ─ 평화 곧 생명 사랑은 어느 편이냐고 하면 여성적인 세계관이거든. 앞으로 또 어떤 경지에 이를지는 몰라도, 아마 이게 내가 도달한 마지막 경지가 아닐까 싶구나.

엄마가 28일에 파리*를 떠났다면, 상당한 시일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는 건 그냥 심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걱정이 되는구나. 번번이 지나고 보면 괜한 걱정을 했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일 영금에게 별일 없이 잘 지낸다는 소식 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느님은 나에게 너무 잘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언짢은 일이라고 해서 왜 이러시느냐고 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 오늘 이만.  아비 씀

 

 1992. 6. 8.

박용길 여사는 이때 일본에서 열린 한국 양심수 서예전에 참석한 후에 파리에 있는 조카사위 정명훈 씨를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