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탐색
목포명소 - 목포의 전경 01
  • 0


1930년대 초반경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가 제작한 목포명소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목포 시가지 배후의 고지대에서 항구와 시가지를 내려다본 전경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에는 영문으로 GREAT MOPPO CITY SEEN AT BACK-HILL. PART 1., 일본어로 (木浦名所)米と棉花の港市、木浦の全景(其一)이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으며, 목포를 ‘쌀과 면화의 항구도시’로 직접 소개하고 있다. 엽서 전면에는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목포의 밀집된 시가지와 항구, 바다 건너의 산지와 도서가 넓게 펼쳐져 있다. 화면 전경과 중경에는 기와지붕의 주택과 일본식·근대식 건축물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고, 시가지 사이로 비교적 규모가 큰 관공서·학교 등의 시설과 넓은 공지가 확인된다. 해안 가까이에는 창고와 항만 관련 시설이 이어지며, 바다에는 선박이 떠 있다. 이러한 구성은 특정 건축물 하나보다 목포의 도시 전체와 항구의 공간적 관계를 한 화면에서 보여주는 전경 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대규모 장방형 건물은 위치와 건축형태상 1929년 건립된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강당과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 해당 강당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건물로, 2층에 좁고 높은 아치형 창을 연속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시설의 식별이 맞다면 본 도상의 촬영시기는 적어도 1929년 이후로 한정할 수 있다. 다만 본 자료에는 개별 건물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당 시설의 식별은 추정으로 남긴다.
표제의 米と棉花の港市는 목포의 도시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표현이다. 1897년 개항 이후 목포는 전라남도에서 생산된 쌀과 면화를 집산하여 외부로 반출하는 항구로 성장하였다. 1914년 『木浦誌』에서도 각각 「米の木浦」와 「綿の木浦」를 독립된 편으로 설정하여 쌀의 이출과 면화의 생산·거래·조면업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두 상품이 목포 경제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보여준다. 1920년대에는 면화가격 상승과 관련 산업의 성장으로 목포항과 해안통의 상업·공업활동이 더욱 확대되었고, 1927년에는 조선면업공진회까지 개최되었다.  따라서 본 자료는 단순히 목포의 아름다운 전경을 소개하는 관광 사진그림엽서에 그치지 않고, 쌀과 면화를 집산·반출하는 식민지 항구도시라는 목포의 경제적 성격을 도시의 전경과 결합하여 시각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항구·시가지·근대적 공공시설을 하나의 화면에 배치하고 ‘쌀과 면화의 항구도시’라는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당시 목포의 성장과 번영을 관광객에게 전달하는 도시 이미지로 재구성하였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