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0416 수난 주간에 생각하는 민족의 수난과 어머니의 수난

어머님





4월 편지는 부활절 전에 나가도록 썼었는데, 부활절이 지난 오늘 또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유감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잘 되었다 싶군요. 수난 주간과 부활절 명상을 몇 자 적을 수 있게 되어서요.



금년 수난 주간에는 80여 성상, 거의 한 세기에 걸치는 어머님의 피어린 수난의 역정에 초점을 맞추고 민족의 수난, 인류의 수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의 수감 생활은 고생이라는 말조차 붙일 수 없는 편한 생활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지금까지 저희 가운데서 드나드신다는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이냐는 것을 눈시울로 화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민족의 수난이 한일합방이라는 국치의 역사, 대동아전쟁, 국토분단, 6·25의 비극 등으로 이어지는 순하디 순한 이 민족의 피눈물 나는 쓰라림이 종로 바닥을 우리와 함께 거니시는구나. 우리와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잡수시고, 같이 눕고, 같이 울고 웃고, 그러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그렇게 80여 성상을 하루 같이 걸어오신 어머님, 우리는 어머님에게서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 민족 수난의 걸음을 확인하는 거다’ 그런 것이 이번 수난 주간 명상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예수의 절규의 뜻을 뜻밖에 깨치게 된 것 같습니다. 나가는 날 안(병무) 박사의 지도를 받아 신약 논문 하나 써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부활절 아침기도에서 – 여기까지 쓰고 나가 30분을 뛰고 들어와 냉수마찰을 한 다음 빵과 사과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나와서 다시 씁니다. – 드러난 것은 모든 참된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 크든 작든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 그 온갖 것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며 찬양하는 하루하루 1년 365일이 모두 부활절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루하루는 그대로 축제일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4월5일 어머님 생신은 마침 공휴일이어서 팥이 듬뿍 든 찰밥을 사서 어머님 생신을 잘 먹으며 지냈습니다. 어제도 찰밥으로 갈릴리교회 성찬식에 함께 했었지요. 저번 접견때 깜빡 잊었는데, 맏아들이 대접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종로에 있는 함경도 순댓집에 가셔서 순댓국에 곁들여서 거기서 내놓는 순대를 잡수세요. 그것 잡수시기까지 어머님 금년 생신을 아직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부디 건강한 가운데 오래 사세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살아있는 민족수난사로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꺼지지 않는 희망을 주시면서.



큰 아들 





봄길에게





가을에 피는 청초한 코스모스보다는 희망찬 봄의 신선한 길이 훨씬 좋은 거 같군요. 가을이 봄이 되었으니 새로워지고 젊어진 거 아니겠오? 아주 아주 좋았어. 우선 종로 함경도 순댓집 가는 길. 청계천 3가에서 31로 쪽으로 가다가 31로 못 미쳐서 마지막 골목으로 종로 쪽으로 들어가면 알라스카라는 아크릴 간판이 보일 거요.  어머니를 자주 모시고 가서 대접해 드리시오. 지난 토요일 아침에 당신의 10일 편지에 영금의 편지, 호근의 파리에서 두 번째로 보낸 카드를 받았지요. 얼마나 기뻤는지. 더군다나 영금의 편지에는 문칠의 돌에 세 식구가 ‘사람의 노래’ 병풍 앞에 돌상을 마주하고 찍은 예쁜 사진이 들어 있어서 나를 정말 기쁘게 해 주었오. 지금도 그 사진을 앞에 놓고 보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오. 문칠이는 영락없는 친할머니 얼굴이군요.



내 건강은 그동안 좀 차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좋은 편이에요. 오늘도 30분을 뛰고 난 다음 운동 담당이 “숨도 안 차시네요”하고 감탄하는 것이었오. 저번 접견 때 건강이 좀 차질이 생겨 조절하는 때였죠. 무어나 과욕은 금물. 건강 회복도 예외는 아니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면 거기 심판자 예수가 거의 깡패처럼 우악스럽고 억세게 그려져 있지요. 미켈란젤로가 예수를 정말 바로 그려주었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수만 명 군중을 앞에 놓고 스피커도 없이 종일 날마다 가르치며 부대끼면서도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기쁨과 희망으로 부추겨 올리셨으니 예수가 얼마나 건장한 사나이였겠오? 그래서 나도 단순히 건강한 정도가 아니라 예수처럼 억센 사나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콩밥 세끼에 우유를 셋씩이나 먹어댔더니 지나쳤던 거죠. 그래서 우유도, 콩밥도 끊고 사식으로 위 조절을 해서 지금은 콩밥 아침저녁으로 먹고 점심에는 빵과 과일, 달걀 노른자위 하나로 가볍게 먹고 있어요. 내주쯤부터는 우유를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여기 마당에 핀 개나리가 지기 시작한 걸 보니 슬슬 봄이 중반으로 접어드나 보죠? 저번에 목욕하러 가다가 진달래가 져 가고 벚꽃이 핀 것을 보았군요. 그만하면 1979년 봄을 볼 만큼 본 셈이죠. 목련꽃은 바우의 웃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 되는 거구. 바우의 목련꽃 웃음을 보면서 사람은 역시 기뻐하도록, 행복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오. 아기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 품에 안겨 있으면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마냥 웃으며 좋아하게 되어 있거든요.



밖에서 금년 수난절과 부활절을 어떻게 뜻있게 지냈는지 궁금하군요. 3~4일 안으로 편지들이 들어오면 알게 되겠지요. 금년 수난 주간 독서와 명상을 위해서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을 주문했던 건데, 어찌나 힘든지 그야말로 그걸 읽고 이해하느라고 꽤나 고생하고 있어요. 아직도 떼지를 못하고 있으니까요.



어젯밤에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예수의 절망에 관한 대목을 읽었는데, 몰트만은 예수와 백성과의 관계를 전연 못 보았군요. 역시 유럽의 긴 신학적 전통의 틀을 벗어나기란 그렇게 어려운가 보죠. 짙은 신학적 독단, 형이상학적인 사변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드는군요. 다 읽은 다음에라야 마지막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아버님, 어머님 전기 건은 전(택부) 형에게 부탁해서 자료를 정리하고 조사 보충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거요. 그러노라면 아버님도 나오시게 될지도 모르죠. 안되면 편지로 연락하면서 준비해야죠. 쓰기 시작하기까지 전 형이 읽고 조사할 것이 많을 테니까요.



내가 연행되던 날 오전에 홍성우 변호사에게 만원을 꾼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어제야 생각이 나지 않겠오. 그리고 보니 출판축하회에 못 오신 변호사님들에게 시집을 증정하는 것을 잊은 것도 생각이 났오. 광주, 부산에는 보내면서. 오영석, 전하은, 과천수녀원에도 보내드려야지요. 



곽(노순) 군 목회하면서도 학문을 계속하면서 돌아올 날을 기다리라고 편지하시오. 곽 군이 없는 한국의 구약 학계는 중요한 한구석이 비게 될 테니까. 



조갑손 집사가 복수가 차서 단단한 배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한 나의 기도의 열도가 확 뜨거워졌오. 양같이 순한 두 분. 세상에 태어날 때 받아 가지고 온 착한 성품이 별로 때 묻지 않고 그대로 있는 분들. 정말 ‘누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 그 좋은 분들에게 그런 시련이 오다니. 하느님은 그들의 믿음을 굉장히 크게 알아주시나 보아요. 그렇지 않고야 그렇듯 무거운 시련을 주시겠오?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는 투병으로 시련을 이기시도록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기도로 그의 병상을 찾아가고 있오. 잘 말씀드려 주시오. 



큰이모님께도 내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기도로 병상을 찾아간다고 말씀드려 주시오. 나는 때때로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하다 보면 이모님이 조용조용 나를 위해서 기도드리는 소리를 듣거든요. 너무 실감이 나서 와락 손을 붙잡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기도의 자리야말로 모든 장벽을 넘어서 영으로 사귀는 자리라는 것을 이렇게 실감하는 거죠. 이모님도 기도하는 가운데 현 목사님의 기도, 나의 기도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1963년 내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을 때 온전히 남의 사랑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사랑으로 보살피는 그 손길들이 그대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병석은 완전히 하느님의 은총에 자신을 내맡기는 때이죠. 그리고 그 은총에 보답하는 길은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길밖에 없는 거죠.



이모님도 지금의 병석이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싶다고 말씀드려 주시오. 현 목사님과 같이 아들, 딸, 손자들의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 밖에도 동생들, 조카들, 교회 목사님, 친구들, 교회, 나라를 생각하면서 기도로 병석을 차 넘치게 하시라고. 하늘의 축복, 기쁨, 영광이 이모님의 병상을 빛나게 감싸 주실 거라고 믿어요. 평생을 주의 종의 내조자로서 직접 주의 종으로 사신,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사신 시간이 별로 없으신 이모님의 병상이 찬양으로 넘치는 병상이 되기를 빌 뿐. 다시 뵈올 날을 기다리면서…….



강(찬순) 집사는 좀 차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하느님이 사랑의 줄을 늦추지 마시고 계속 잡아당기셔서 완전한 사람으로 일어설 날이 오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인간으로서도 신앙으로서도 그런 대장부는 정말 드물다고 해야지요. ‘하느님, 강 집사는 나의 믿음의 딸입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그를 살려주시는 것이 좋다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다가도 나의 인간, 나의 믿음이 도저히 그에게 못 미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의 앞에 가면 마음 쓰는 것, 생각하는 것, 어려움에 대처해 나가는 일에 있어서 나는 퍽 작고 어리게 느껴지거든요. 철이 결혼식에는 내가 여기서 기도로 복을 빌어 준다고 전해 주시오. 강 집사 파이팅.



Richard Wright의 ‘Native Son’을 Faye에게 부탁해서 구해주고. 金東里의 ‘乙火’도.  집에 있는 책으로는 네루다의 시집과 李貞桓의 ‘까치房’도 읽고 싶군요. 창비사에서 펴낸 시집들은 대강 다 집에 있는데, 또 읽어보고 싶군요. 함혜련의 시집들 너무 한꺼번에 많이 들여보내지는 말고.



이만 총총 늦봄






안병무 박사, 홍성우 변호사, 오영석, 전하은, 곽노순 박사 (성서 공동 번역위원), 병환 중인 큰 이모님 (아내 박용길의 큰 언니인 박갑길), 조갑손 집사와 강찬순 집사 (한빛교회),



수난 주간을 맞아 민족의 수난과 어머니의 수난을 생각하고 병환 중에 있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림. 어머니에게 함경도 순대를 대접할 것을 아내에게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며 당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