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내 얼굴도 많이 탔는지 모르지만, 당신도 얼굴이 많이 탔군요. 아무튼, 건강 색이어서 보기가 매우 좋소. 난 요새 성경은 열심히 읽지만, 성경에 관한 책은 읽히지 않는군요. 서구의 성서 연구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감 같은 게 있지 않은지 모르겠군요.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야 좋지만 편견에 사로잡혀서 생리적인 거부감으로 나타난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닌데 어쩔 길이 없군요.
그 대신 다윈 전기는 몸이 고되게 느껴질 정도로 빠져들어 읽고 있어요. 내 앞마당의 비둘기나 참새들은 본래는 생 낟알을 먹던 생식 동물일 터인데, 지금은 거의 사람과 같은 火食 동물이 되어 가고 있지 않아요? 어제는 다윈 전기를 읽다가, 다윈 같으면 저 비둘기와 참새의 먹이가 달라지면서 그 생리가 어떻게 달라져 가고 있을까, 과학적인 호기심이 생겨서 해부해 보고 싶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소. 에스키모들이 생식할 때는 그냥 앉아서 몇십 리, 몇백 리 밖의 일을 알았는데, 화식을 하면서 깜깜해졌다는 것 아니오. 그런 변화가 저 비둘기나 참새들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지지고 볶고 맛있게 끓여 먹는다는 것이 자연 속에 있는 참 생명, 신비한 생명의 힘을 죽여서 먹고 있는 거 아니겠소? 당신만 원한다면 앞으로 같이 생식을 했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오. 그러나 아무리 생식이 좋아도 한집에서 살면서 한 사람은 끓여 먹고 한 사람은 날로 먹는 생활이야 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소?
오늘 접견장에서 이철, (민)향숙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정말 가슴이 아팠소. 그러지 않아도 요 며칠 향숙의 기다림이 가슴이 메이게 느껴져서 기다림이 무엇이냐는 것을 생각해 오던 참이었는데. 기다림……. 사과나무 밑에 누워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도 기다림일까요? 그런 입에는 똥이나 처넣어야지. 아니 똥도 아깝지. 코나 풀어 넣어야지요. 지구가 해를 열두 바퀴 도는 만큼 깊고 깊고 또 깊은 어두움, 향숙의 가슴에 앙금으로 앉은 그 어두움……. 그게 기다림 아니겠소? 그 깜깜한 어두움을 할퀸 수도 없는 손톱자국들, 거기서 스며 나오는 붉은 피가 기다림인 거죠. 앞으로 땅이 해를 여덟 번 더 돌더라도 그 어두움에 묻혀 버릴 수 없는 빛나는 눈빛이 기다림의 뜻인 거군요. 닭이 울지 않아도 동터 오는 아침을 기다리는 기다림 같은 건 참새들의 기다림이 아닐까요? 새벽 3~4시에 돌아와 쓰러져 버린 공순이들의 기다림은 24시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아침일 수는 없는 거죠. 아침마다 3백~4백 척 땅 밑으로 석탄을 캐러 들어가는 남편을 기다리는 광부 부인들의 기다림은 또 어떤 걸까요?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황금 물결 이는 가을을 기다리는 농부들의 기다림은 깊어 가는 주름, 늘어만 가는 빚더미 그 무엇일까요? 기다림이 무엇인지 향숙에게 물어보고 싶군요. 우리 모두의 기다림을 한꺼번에 이루어 줄 기다림, 큰 기다림을 우리는 지금 모두 끙끙 앓고 있는 것 아니겠소? 기다림, 그건 지쳐 버리지 않는 일이지요. 기다림에 져버리지 않아야죠. 향숙에게, 그리고 그날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격려를!!
지금 막 31일 편지가 들어왔소.
1986. 8. 4. 당신의 늦봄
다윈의 傳記를 읽으며 生食에 대한 생각, 이철 부부를 생각하며 기다림에 대한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