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제1신, 2신이 증발하였다고 해도 세 번째로 쓰는 것이라, 그대로 제3신이라고 적었어요. 오늘 아침을 받아 보았더니, 흰밥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아, 오늘이 석가 탄신일이구나’하는 걸 알고, ‘부처님을 인류의 큰 스승으로 보내주신 것 감사합니다’로 식기도를 드렸어요. 부처님 보내 주신 건 고마운데, 흰밥은 별로 고마운 생각이 안 들었소. 오랜만에 여기 와서야 흰밥 아닌 보리밥을 먹고 있었거든요. 어제는 당신의 6일, 7일 편지가 들어와서 반가웠어요. 이제 날마다 당신의 자상한 사랑의 글월 받는 즐거움이 다시 시작되었군요.
나의 편지는 지난번보다 가벼운 글로 채워지겠지요. 집필 허가가 곧 나올 테니까, 체계 있고 무거운 글들은 시간 나는 대로 써 두었다가 나갈 때 가지고 나가게 될 테니까요. 지난번 옥중서간집을 안기부에서 읽으면서, 이 책 하나로 내가 마르크스 사상의 극복을 위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했는지 좋은 증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유시춘 씨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유시춘 씨 만만찮은 소설가로군요. 만나면 그렇게 전해 주시오. 당분간 소설을 많이 읽을 생각이에요. 오래오래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작품을 집필이 허락되면 슬슬 써보고 싶으니까요. 생활성서사에 전화를 걸고 미안하게 되었다고 하고 여기 출입하는 수녀님이나 신부님을 통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원고를 써서 내보내는 교섭을 해보라고 하시오. 생활성서 4월호를 들여보내 주면 좋겠군요. 문 박사에게 부탁해서 Zimmerli의 Ezekiel을 들여보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에레미야를 썼으니까, 다음은 에스겔일 테니까요.
이번 살고 나가면, 나의 건강법은 또 한 단계 높아지겠지요. 어제는 검사실에서 갑자기 혈압이 올랐었는데, 내 치료법을 써 보았더니, 한 10분쯤 해서 혈압이 내리고 머리가 맑아졌소. 모리시다 게이찌의 ‘자연식 건강법’을 읽고 나니 계란을 먹을 생각이 없어졌군요. 그래서 저번에 성근이가 드려 보낸 계란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군요.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고기, 계란, 우유를 먹는 건데, 사람은 곡식, 채소로 살게 되어 있어서 함수탄소가 그대로 몸의 단백질로 변화 흡수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고기, 계란, 우유의 단백질은 함수탄소로 바뀌었다가 다시 몸의 단백질로 바뀌기 때문에 소화기의 부담이 그만큼 커질 뿐 아니라 해롭다는 거군요. 그 사람은 현미에 검정콩과 율무를 두어 먹으라는군요. 율무와 팥을 교대로 해서 먹는 것도 좋고, 굵은 소금으로 검정깨를 볶아 깨소금을 만들어두고 먹는 것도 아주 좋다는 거고.
내일도 하루 종일 검찰에 나가 있을 참이요. 모레(일요일)도 강행하고 싶어 하는 걸 쉬겠다고 했어요. 감사실 직원들, 교도소 직원들의 하루를 나 때문에 희생시키는 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야 빨리 끝내면 그만큼 좋은 거지만. 당국이 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서두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에요.
오늘 신문을 보니까 한겨레 100억 주 모집이 성공적이어서 “만세”. 송건호 씨에게 축하 전화를 해드리고, 우리도 다만 얼마라도 어머니 이름으로 청약하면 어떨지? 이번 나를 위해서 너무너무 잘해 준 답례로라도. 마감 날짜가 5월15일이군요.
오늘은 절에서 가져온 떡국대가 두 가락 들어와서 하나 먹었고, 점심에 들어온 상추와 돼지고기 한 점해서 저녁을 상추쌈으로 맛있게 먹겠어요. 당신은 날 만나는 꿈을 꾸었다는데, 오늘 저녁에 당신을 꿈에라도 만나야겠구만. 이만 총총.
당신의 사랑
바우야,
네게 쓴 편지가 나가지 못하고 말았구나. 네가 자동차에 다치고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다는 소식에 할아버지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제 다 나아서 집에 왔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구나. 이제 학교에는 가는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다오. 볼에 대고 비비고 가슴에 품고 잘게. 건강해라.
할아버지 씀
한 단계 높아질 건강법에 대한 생각, 한겨레신문 주식 모집이 목표달성한 것을 기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