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한겨레신문에 난 어머님 사진을 보니까, 어머니는 투지만만이시군 그래. 그 투지면 됐어요. 어머님의 생명이, 꺼져가는 듯하던 생명이 힘으로 솟아나는군요. 생명이 힘이라는 게 옳은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투지로 나타날 때 드러난다는 걸 알 수 있군요. 옳은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투지가 생명을 힘으로 분출시킨다는 말이군요.
기다리던 비가 쏟아지고 있군요. 엎친 데 덮친다고 비까지 안 와서 농민들의 자살 소동이 잇달아 일어났었는데, 비라도 와서 농민들의 마음에 위안이라도 될는지? 생명은 위에서 내리는 비, 하늘의 은총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군요.
선희에게
발바닥 치료를 함과 동시에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게 머리에 좋다. 무릎을 꿇고 마음을 모아 명상을 하다가 엎드려 기도하고, 또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명상하다가 엎드려 기도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게 정말 좋다.
계훈제 선생님
안기부에 있을 때 선생님이 병원에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매우 걱정이 되었습니다. 요새는 어떠신지요?
가지 말라는 길을 갔다 왔습니다. 잘한 일이든 잘못한 일이든, 그 일이 통일에 이바지하도록 역사를 밀고 나가는 게 역사를 바로 사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평양 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작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연대 마당에서 판문점으로 떠나는 학생들의 비장한 모습이 최루탄과 곤봉으로 깨지는 걸 보면서,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일을 학생들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 7·7 선언이 발표되자 저는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8월 15 일 학생들의 판문점행이 또 좌절되는 걸 보고 다시 결심했습니다. 금년 들어 또다시 제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가 북방 정책을 적극 추진하려는 기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정주영마저 갔다 오는 판이었거든요. 그러다가 또다시 강경 선회하는 걸 보면서, 학생들의 예비회담,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막히는 걸 보면서 또다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간 평가를 앞에 놓고 떠날 수 없다는 동지들의 의견을 따라 일단 연기하기로 했었는데, 20일 중간 평가가 연기되는 걸 알고 떠났던 겁니다. 물론 젊은 학생들, 노동자들이 그 젊음을 민족 제단에 희생 제물로 바치는 걸 보면서, 나이 먹었다는 것들이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막으려면 그들의 뜻을 이루는 일에 무언가 결정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평양 행이 된 것이 6월 10일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차분히 법정에 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통일 문제를 전국민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 아닙니까? 이 문제를 영등포 을구 재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은 너무 서두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 목사, 백 형에게도 편지를 쓰겠습니다만, 문안을 전해주십시오. 부디 건강하십시오. 정신만으로 사시는…..
동지 익환 드림
김봉우 씨
어머님의 병환이 어떠신지요? 효부가 보살피니까 그만큼이라도 버티시는 거겠지만요. 난 요새 뇌경락을 찾은 것 같습니다. 뇌경락은 가운뎃발가락에서 시작해서 가운뎃발가락과 넷째 발가락 사이로 해서 복사뼈의 구허혈 (담경락)을 안쪽으로 약간 비껴서 담경락과 위경락 사이로 좌골까지 올라옵니다. 거기서 독맥과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독맥-임맥이 그대로 뇌경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경락은 가운뎃발가락에서 시작해서 독맥을 거쳐 百會에 이르렀다가 임맥을 거쳐 회음에서 끝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어머니의 머리병을 치료해 보세요. 한 가지 부탁: 발바닥 경락혈도를 구해 보내주십시오. 머릿속의 병과 긴장은 발바닥으로 빼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이건 내가 이미 집으로 편지에 써 내보냈으니까 참고하십시오.
1989. 6. 4.
평양 행을 결정한 동기를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