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0614 젊은 죽음들을 헛되게 되지 않게 하는 길

문숙아 





(6월14일) 할아버지는 정말 기쁘구나.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문숙의 마음이 그리도 안타깝고 그리도 아름다울 수가 없구나. 시도 좋고 그림도 정말 좋구나. 그러나 할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쌍하지는 않단다. 우선 문숙의 사랑이 담뿍 담긴 편지를 받을 수 있는데 뭐가 불쌍하니? 그리고 할아버진 오랜만에 푹 쉴 수 있고 고요히 기도할 수도 있고 느긋이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는데 뭐가 불쌍하겠니? 시도 쓰고 건강에 관한 책도 완성해야지. 감옥이라는 게 사람 못 살 곳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런 게 아니란다. 여섯 번째니까 난 이제 아주 익숙해져서 올 데 왔다는 생각마저 들거든.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단다. 사랑하는 식구들, 친구들이야 눈만 감으면 언제나 볼 수 있구.



영등포 교도소는 사실 방이 너무 작아서 답답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안 좋았던 건, 공기가 나빠서 기침이 계속 나는데 어쩔 길이 없었거든. 영등포구치소는 구로구에 있는데, 구로구는 공장들이 많아서 공기가 나쁘기로는 전국에서도 제일가는 곳이거든. 그런데 한 주일 만에 공기 좋고 물 좋기로는 전국에서도 으뜸가는 안동으로 왔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여기 도착하는 길로 기침이 멎는 것 아니겠니? 하룻밤 자고 났더니 오늘은 가래도 없어졌구나. 내가 지금 쓰는 방은 2.5평, 네 방만큼 되지 않을까?



전주 교도소 물도 좋았지만 여기 수돗물은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자랑할 정도란다. 사람 몸의 7할이 물 아니니? 그런데 그 7할은 끓이지 않은 물, 생수로 채워져야 하거든. 그리고 그리만 되면 건강 문제의 7할이 해결된다 이거야. 알겠지? 난 지금 너희가 길어다 먹는 할아버지네 약수보다도 더 좋은 물을 마음껏 마시게 되었다 이거야.



“할아버진 그렇게 행복한 거야? 우릴 안아 줄 수도 쓰다듬어 줄 수도 없는데.” 세상에 행복이란 그렇게 완전한 게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너희를 안아 줄 수 없다는 건 분명 행복일 수 없지.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다가 여기 들어왔으니, 얼마나 행복하니? 저만 잘살겠다고 나쁜 짓 하다가 여기 들어온 사람들이 많은데, 난 그게 아니잖아? 네 동무들도 내가 여기 들어와서 “안됐다”고 말하는 것 아니니?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사는 세상 만들려고 애쓰다가 감옥에 여섯 번이나 간 사람이 있다면서 사람들은 이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이 할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거든. 그런 사람이 어찌 한두 사람이겠니? 꽤 많은 거 아니겠니? 그러니 난 행복할밖에. 그리고 외롭지 않단다. 과분하게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그리고 날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나쁜 사람이 없거든. 다들 좋은 사람이야. 착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겠니?



난 지금 염치도 없이 행복을 말하고 있구나. “할아버지, 그렇게 행복한 거야?” 이 네 질문이 내 귀청을 때렸기 때문에 행복 이야기를 하게 된 거지. 난 이번 다시 감옥에 들어오기까지 한 마흔 날 동안 행복과는 거리가 먼 슬픈 나날을 보냈다는 거 너 잘 알지? 어쩌면 한 달 동안에 열한 사람이나 맞아 죽고 몸에 불질러 죽고 할 수 있니? 그 장례식을 치러 주느라고 난 정신이 없었다. 그 슬픈 아버지, 어머니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붙들어 주느라고 난 제정신이 아니었단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까운 열한 목숨도, 그 가슴 미어지는 슬픔도 모두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슬픔을 쓸어 내고,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애타는 희생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구나. 그러니 너도 동무들에게 들려줘야 해.



“그 죽음들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힘을 모아 노력해야 한다”고. 알았지? 꼭꼭 부탁이다. 또 편지를 보내다오. 좋은 시, 좋은 그림도.



 할아버지는 이만. 







당신께





(6월15일) 어제 새벽에 문을 따고 담당이 나타나기에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의정부로 이감 간다는 것 아니겠어요? 물 좋고 공기 좋고 집이 가까운 곳으로 가게 되어 잘 됐구나 싶어 서둘러 짐을 챙겨서 나왔지요. 수정을 두 개나 채우고, 꽁꽁 묶여 앰블란스를 탔거든요. 죄수를 이송하다가 놓친 다음부터 수정을 두 개나 채운다는 거였소. 의정부까지니까 하고 참고 차에 올랐는데, 차가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는 것 아니겠어요? 알고 보니 안동이라는 거였소. “이 사람들이 기소하려던 걸 그만두었구나”하는 게 나의 첫 반응이었죠. “안동이 멀기는 해도 진주보다야 낫겠지”하는 게 둘째 반응. “나의 방북에 대해서 첫 지지 성명을 내준 것이 가톨릭 안동 교구 신부님들이었지” 하는 게 셋째 반응이었구요. 꽁꽁 묶인 몸으로 세 시간 반을 차에 휘둘려 오느라고 좀 피곤했지만,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왔다는 안도감만이 아니었죠. 방에 들어와 한 10분 심호흡을 했더니, 온몸의 세포들이 좋아서 죽겠다는 것 아니겠어요? 단 10분에 모든 피곤이 다 풀렸다니까요.



내려오면서 보니까, 논 모내기는 다 끝났더군요. 말로만 듣던 문경새재를 넘은 셈. 새재에는 자동차 길이 안 나 있고 바로 가까이 난 이화령을 넘었는데, 수목이 울창한 숲속을 뚫고 오는 동안 눈 속, 폐 속이 모두 푸른 물감이 드는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을 만끽한 셈.



내일은 한빛교회 어머님 자리, 당신 옆에 가 있을게요.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사랑



1991. 6. 14-06.15.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의 기도와 사랑을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안동으로 이감와서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