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동주가 살아 있었으면. 아! 준하가 살아 있었으면

당신께

 

어제 동지들 기념 행사가 어떠했는지 궁금하군요. 분단을 슬퍼하는 기념 행사가 아니라 통일을 축하하는 기념 행사가 되는 날은 그 언제일는지? 왜 내가 이렇게 어정쩡한 소리를 하죠? 1995년 8월 15일은 통일 축제가 될 것을 확신하는 사람으로서. 박순경 박사, 그 약한 몸으로 징역을 살게 되다니. 재판을 받아 봐야 알겠지만, 재판이야 받아 보나마나한 거겠지만, 박 박사가 벌써 예순여덟이라니 세월이 무상하다고나 할는지.

46년 전 8월 15일 아침, 나는 은행으로 달려갔었죠. 신경 중앙교회 건축기금을 찾으려고. 물론 허탕이었지요. 은행에는 행여나 하고 찾아온 일본 사람들이 무거운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었고. 빈손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진지를 구축하는 공사에 붙들려 두어 시간을 보냈지요. 일하는 시늉뿐이었지만 입을 여는 사람 하나 없고 납처럼 무거운, 아니 침통한 분위기였지요. 교회 전도사인데 교인들 집을 찾아볼 일이 있다고 했더니, 가라고 해서 서둘러 돌아오다가 도중에 일본왕 유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 선언을 하는 걸 들었지요. 그걸 들으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동주의 환상. ‘네가 살았더라면…….’ 이 안타까운 탄식이 해방의 소식을 들으면서 내 가슴에서 솟아올랐어요. 그 다음은 ‘아, 이제 나는 거짓말을 안 하고 살아도 되는구나’ 였어요. 분명 나는 조선 사람인데 맨날 “나는 대일본제국 신민이다”고 말해야 하는 내 자신이 퍽도 서러웠던가 보죠.

그러나 그 후로 나는 많은 사람의 회고담을 듣기도 하고 읽기도 하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 꽤나 여유가 있는 사람의 반응이었다는 걸 알고 정말 부끄러워졌어요. 곳곳에 갇혀 있던 애국 지사들에게 그것은 “아 ─, 이제 우리는 살아났구나” 하는 것이겠지요. 징용으로 끌려갔던 사람들, 군대로 끌려갔던 사람들도 다 같았을 거구요. 정신대로 끌려갔던 여성들은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장준하의 『돌베개』나 김준엽의 『장정』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절박감 같은 게 덜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국내에 있다는 것과 국외에 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싶군요. 나는 학병을 거부하고 동경에서 만주로 갈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장준하나 김준엽씨는 그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피할 길이 없는 그 궁지에서 학병을 일본군을 탈영해서 광복군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로 삼기로 애당초 마음을 단단히 도사려 먹고 적극적으로 징병에 응모했더군요.

김준엽 씨는 장준하보다는 더 철저하게 탈출을 준비해 가지고 갔더군요. 나침반을 준비해 가지고 갔고, 탈출했다가 중국 사람에게 붙잡혔을 때에 자기가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한복을 입은 어머니의 사진을 찍은 걸 가지고 갔고 등등. 그들에 비하면 학병을 거부하고 만주로 가버린 나의 행동은 소극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준하는 동환이와 한반이어서 나한테는 동생이죠. 학생 시절에는 착실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는데, 그의 어디에 그런 용기와 뜻이 있었던지 해방 후 서울에서 만났더니, 그는 동경에서 보던 준하가 아니었어요. 거목(巨木)이 되어 버티고 서 있는 느낌에 나는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지요. 6천 리 장정에서 시작되는 그의 투쟁이 그를 그런 거목으로 만들었죠.

46년 전 8월 15일에는 ‘아 ─ 동주가 살아 있었으면’ 하던 탄식이 1995년 8월 15일에는 ‘아! 준하가 살아 있었으면’ 하는 탄식이 될 것 같군요.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저께 뭐 먹을 걸 많이 넣어주고 갔군요. 19일을 기다리면서. 오늘을 이만. 

당신의 사랑

 

 

성수 어머님께

 

저를 생각하며 여러가지로 마음 쓰신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아니 일흔이 넘도록 살아 있다는 게 부끄러울 뿐입니다. 성수 어머님이 꿋꿋하게 서 계시는 모습이 늘 흐뭇하고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줍니다.

성수야 만고에 푸르른 동해 바다 맑은 마음 아닙니까? 눈부신 백옥으로 부서지는 사랑, 깊이 모를 겨레 사랑 아닙니까? 길이길이 우리의 정신, 우리의 자랑 아닙니까?

통일 염원 47년 8월16일 늦봄 문익환

 

1991.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