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상은 김창필을 대신해서 받은 것

호근에게

 

요새는 네 편지를 받아 읽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될까? 부자간에 이렇게 매일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일이 어찌 예삿일이겠니? 가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되겠지.

4.19상을 받고도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해서 하일민 소장께 편지를 써야겠다. 전해다오. 아비 씀

 

 

 하일민 소장님 (6월17일자로 잘못 표시되어 있음)

 

너무나 빛나는 상을 주셔서 황송할 따름입니다. 제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진대도 올해에 제가 받은 사월혁명상만큼 값이 있고 빛나는 것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노벨은 화약을 개발한 것으로 돈을 벌어 놓고 보니 제가 한 일이 인류를 집단 학살하는 데 한몫한 것이 괴로워서, 세계에 평화를 신장하기 위해서 평화상을 제정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거기서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의 양심을 볼 수 있습니다.

4·19의 역사에는 그런 어두운 면이 없습니다. 오로지 민주화를 위해서 폭발한 순수한 민의 뜻과 힘이 있을 뿐이니까요. 민이 제소리를 내게 되자마자 터져 나온 것이 통일의 함성이었구요. 통일의 함성 또한 순수한 민의 목소리였죠.

작년에는 이수병 선생에게 사월혁명상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축사를 하게 된 일 만도 과분한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수병 선생이야말로 그 상을 받고도 남을 분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저는 4·19에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겨우 『기독교 사상』 사설에 「이 나라는 경찰국가가 될 것인가」라고 3·15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목회하던 교회 주일학교 부장이 제게 유언장을 써놓고 나가서 경무대 앞에서 총을 가슴에 맞고 죽었습니다. 그의 이름 ‘김창필’입니다. 그를 대신해서 상을 받는다는 심정입니다.

4·19와 함께 민이 제소리를 내게 되자 터져 나온 ‘통일의 함성’을 계속 외친 것을 크게 생각해서 제게 상을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통일운동을 하라는 격려로 알고 사양하지 않고 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통일운동을 계속해서 하리라는 것을 자신을 가지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대신 답사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니, 이게 영 사람 도리가 아닌 것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고마운 마음 올리는 것을 너그러이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사월혁명상의 수상자로서 그 상에 흠이 가지 않도록 열심히 양심껏 살 걸 다짐합니다.

동지들의 건투를 빌면서. 안동에서 문익환 올림

 

1992.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