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상호작용 관점에서
현재까지 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Korea 360’이 자카르타에 있다는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한류는 역전 불가능한 문화현상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현상을 중요한 산업적 매개로 선택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인도네시아 한류는 약 20년 여년을 지나오면서 ‘디지털 세대’를 형성했다.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구학적 요소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의 한류는 수많은 해외 문화콘텐츠의 하나이면서, 그러면서도 인기 있는 해외 문화콘텐츠의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풍요한 문화현상의 하나로서 한류가 어떻게 수용되고 해석되고 이해되고 있는지를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꾸닝안(Kiningan)에 위치한 롯데몰(Lotte Mall)에는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Korea 360’이라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필자는 2022년 10월쯤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 자카르타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로부터 이 구상을 처음 듣고 매우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얼마나 뜨거운지 한 번 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두 번 정도 더 자카르타를 다녀왔지만, 2024년 2월에서야 ‘Korea 360’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Korea 360’은 어떤 공간일까? 영문 홈페이지 제목 바로 옆에 적혀있는 ‘K-Content Pavilion’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즉 ‘Korea 360’은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22년 11월 1일 개점 후 현재까지 약 17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만큼 상당한 유입 요인을 갖추고 있다. 약 1년 4개월 동안 119개의 이벤트를 진행했고, SNS 구독자 수도 약 7만 명에 이른다. 이런 이벤트뿐만 아니라 케이팝, 드라마,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뷰티, 디자인, 음식, 문화, 관광 등 ‘360’이 의미하는 것처럼, ‘K-콘텐츠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플랫폼이다.

(사진출처: ‘Korea 360’ 인스타그램(@korea_360))
‘Korea 360’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도하고 한국문화원, 한국관광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무역협회 자카르타센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디자인진흥원,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등이 협력해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한국의 역량을 투여해 ‘Korea 360’이라는 놀라운 실험을 한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의 공공기관이 인도네시아 내 한류의 인기를 실감하고 그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한류를 통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전기자동차, 천연가스, 석유화학, 배터리, 바이오 등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미래지향적 비즈니스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 양국 간의 긍정적인 문화적 토양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한국 정부의 판단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한류는 ‘세대’를 형성할 만큼 역사성을 함축한 문화현상이다. 2024년 2월, 자카르타를 방문하는 동안 자카르타 한국문화원 관계자 한 분을 만났다. 그녀는 필자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려줬다. “이제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려서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케이팝을 들으며 한류 환경에서 성장해 한국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젊은 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 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인도네시아 주요 대학에 있는 한국어과 교수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기존 학과에서 이들의 한국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일종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즉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인기는 한국어와 한국 사회에 대한 많은 관심을 유발하고 있지만, 기존 대학의 한국어과는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인도네시아 한류 세대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조건과 상황을 체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젊은 층은 인터넷 미디어 세계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다. 2024년 2월 14일, 전 세계가 주목했던 인도네시아의 제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이날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지역 대표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을 한꺼번에 뽑는 날이었는데, 선거를 위해 2023년 11월 28일부터 2024년 2월 10일까지 약 세 달간 유세 캠페인이 진행됐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변화는 ‘거리 유세’보다는 ‘디지털 유세’가 훨씬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인도네시아는 빠르게 디지털 사회로 전환됐고, 이러한 변화는 이번 선거 캠페인 과정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인도네시아에서 투표가 허용된 나이는 17세부터이다. 이번 선거에 처음으로 투표하는 연령층은 2007년쯤에 태어난 세대다. 이 세대의 성장 시기는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계속 활성화되던 때와 맞물려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 분포로 보면 2013년 이후 태어난 포스트 Z(Post Z)세대는 10.88%이고, 1981년에서 1996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25.87%, 1997년에서 2012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는 27.94%로, 이 세 세대를 합치면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64.69%이다(BPS-Statistics Indonesia, 2021). 그리고 2000년대 이후 한류와 디지털을 함께 경험한 Z세대와 포스트 Z세대는 약 35%다. 이들이 모두 한류에 대해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팬을 형성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세대가 형성됐고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지속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오징어 게임>은 2021년 한국 드라마 중 가장 인기가 높았다. 이 인기 현상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계속 영감을 주고 있다. 2009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한 이후, 한국 문화산업의 전 지구적 성장에 주목하면서 인도네시아 문화콘텐츠 산업 성장의 여망을 말하곤 했다. 현 조코위 정부 산디아가 우노(Sandiaga Uno) 관광창조경제부(Ministry of Tourism and Creative Economy) 장관은 GDP 대비 창조경제 분야 비율 수준이 미국이 1위, 한국이 2위, 인도네시아가 3위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 창조경제는 패션, 음식, 수공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이 부분에서는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능가하고 있으며, 향후 음악과 영화에서는 한국을 앞서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Bhwana, 2023. 10. 9.). 산디아가 우노 장관이 직접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K-콘텐츠’만큼 ‘I-콘텐츠(인도네시아 콘텐츠)’를 사랑해 달라고 말할 정도로 인도네시아 내 한국 콘텐츠에 대한 인기가 상당하지만, 동시에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창조경제 산업을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함을 알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스쿼드 게임 인도네시아 2023(Squad Game Indonesia 2023)’이라는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다(Redaksi, 2023. 11. 28.). 16세에서 40세의 인도네시아 시민 누구나 팀을 꾸려 참여해 체력·지력·협동심을 겨루는 단체 게임 행사로, 상금 2억 5,600만 루피아를 걸고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가 주최했다. 2023년 11월 30일 참가 단체 공모 이후 본 게임은 12월 9일 시작했다. 첫 번째 게임으로 <오징어 게임>의 주제곡과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진행됐다(Itsnaini & Prasetya, 2023. 11. 28.). ‘스쿼드 게임 인도네시아 2023’ 자체가 문화산업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오징어 게임>이 인기가 있었다는 점과 인도네시아 젊은이에게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고자 한 관광창조경제부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에는 ‘빠수뜨리 가제(Pasutri Gaje)’라는 단어가 있다. 인도네시아 로맨틱 코미디의 핵심적인 소재인 그것은 ‘Pasangan Suami IsTRi Gak Jelas’의 합성어로, ‘황당한 커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단어를 제목으로 딴 라인 웹툰 원작의 영화 <빠수뜨리 가제(Pasutri Gaje)>는 신혼부부의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이다(Heriani, 2023. 6. 25.). 이 영화에서는 한류의 영향이 엿보인다. 영화 속 한 커플의 대화에서 ‘오빠’, ‘좋아해’ 등 한국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사진출처: 구글 검색 이미지 캡처)
다만 <빠수뜨리 가제>에서 나타난 결혼에 대한 이해는 지금의 한국과 매우 다르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고 결혼하면 의문의 여지 없이 바로 2세를 가져야 한다는 설정은 지금의 한국 사회와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학술적으로 지적한 이연의 논문 「인도네시아 칙릿(Chick-lit)에 나타난 여성의 독신과 미(美)에 대한 담론 연구」는 이를 설명할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 칙릿 작품들이 등장했다. ‘칙릿’이란 글로벌 차원에서는 1990년대 등장한 문학 장르로, 2∼30대 젊은 여성들을 주된 독자층으로 하며 대도시의 젊은 독신 직장 여성에 대한 대중적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다른 국가의 칙릿과 인도네시아의 칙릿에서 여성의 결혼과 독신, 임신과 출산, 몸과 육체성 등을 서술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2000년대 등장한 인도네시아 칙릿 작품은 여성 혹은 여성성을 중점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전통적 가부장 사회의 젠더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여주인공에 의해 여성의 독신과 미의 기준이 표현되며 기존의 젠더 관계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여성은 독신을 남성에 의해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면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여기며 자책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미(美)의 개념 역시 남성에 의해 정의되고 평가받는 성차별적인 의미에 국한된다(이연, 2018).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내고 있는 성과 사랑, 결혼과 연애, 임신과 육아 등에 대해 인도네시아 여성 또는 남성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더 심층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드라마가 최초로 방영된 2002년보다 1년 전 대만의 드라마가 먼저 수용돼 인기를 끌었다. 일본 만화 <꽃보다 남자(花より男子)>를 원작으로 대만에서 제작한
최근 케이팝을 크게 4세대로 구분하는데(김영대, 2023), 인도네시아에서 케이팝은 2000년대 2세대인 동방신기, 슈퍼주니어부터 현재 4세대 아이돌 그룹 NCT, 뉴진스, 르세라핌, 아이브에 이르기까지 그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자카르타는 케이팝 공연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됐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케이팝 가수들이 신곡을 출시하자마자 인도네시아 케이팝 팬들도 즉각적으로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자카르타에서 펼쳐지는 케이팝 공연으로 서울과 자카르타 사이의 거리감도 상당히 사라졌다. 특히 2023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수교 수립 50주년을 맞아 개최된 각종 기념행사에서 케이팝은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케이팝 연수를 받은 인도네시아 걸그룹 ‘스타비(Starbe)’도 두각을 나타냈다.
앞에서 언급했던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인도네시아에서의 한류는 상당히 심층적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신호만이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우려하는 요인은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적 상황이다. 2024년 2월 14일에 있었던 인도네시아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캠페인 과정에 대해서 현재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체제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비판적인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다. 현직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 부통령으로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조코위 대통령이 본인의 아들이 있었던 기호 2번을 위한 관권 선거를 치렀다고 지적한다. 올해 10월부터 집권을 시작하는 새 정부가 자원민족주의로 경도된다거나 상대적으로 덜 개방적인 정책을 선택한다면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현상은 어디로 나아갈지 다소 예측하기 어렵다. 향후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인도네시아 한류 수용 현상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해야 봐야 할 것이다.
